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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표정이 티 없이 맑다
아이들의 표정이 티 없이 맑다 ⓒ 이국언
광주 송정 중앙초등학교 박병규(62) 교장은 새 학기를 맞아 몇 명만 하는 학급임원 선거 대신 1일 반장제를 통해 모든 학생이 반장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내놨다. 반장선거가 과열로 치닫는 등 폐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새학기마다 학급 임원선거 과열

"벽보선전물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 못지 않게 만들고 심지어 학부형까지 동원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반장에 떨어진 애는 패배감으로 완전히 기가 죽어지내는 것을 보니 차라리 이런 선거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교장은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한 번 나오기 위해 자기 반 친구들에게 볼펜이나 과자를 사주는가 하면 피자가게로 초대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고 한다. 어른들의 과욕이 빚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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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교장
박병규 교장 ⓒ 이국언
그러나 학교로서는 이러한 폐해를 알면서도 막상 1일 반장제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주위 교장선생님들이 반장을 돌아가면서 하게 되면 자모회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만류했기 때문이다.

많은 학교에서는 학급임원을 맡게 된 학생의 부모들로 자모회가 구성되는 것이 보통인데 학급임원이 따로 없다 보면 학부형들의 협조를 구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 학교에 출입하는 학부형의 대다수는 자기 아이들이 학급임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가 이번에 반장이 될 것이라며 1일 반장제에 의아해하는 학부형의 전화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박 교장은 "자모회 도움도 크지만 자모회가 설령 없더라도 애들이 자기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갖는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반장이라면 성적이 상위권이어야 하고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숨은 능력이 있고 나름대로 개성을 발휘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하루에 2명씩 1일 반장제로 하다보니 아이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반장을 하게 된 셈이다. 우려했던 자모회 구성은 임원들 학부형으로만 구성되던 지난해보다 두 배가 많은 430여명의 학부형이 참여해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학교에 대한 문턱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1일 치러진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선거에는 평소 지각이 잦고 성적이 반에서 중위권에 머물렀던 한 여학생이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에 출마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학급임원들만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에 출마자격이 주어졌던 작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이 된 김연지 양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이 된 김연지 양 ⓒ 이국언
"친구들이 수업에 충실하지 않고 지각도 많이 하는데 왜 나가냐고 말리기도 했어요. 나는 공부 더 잘하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지(6년) 양의 야무진 대답이었다.

김 양의 어머니 연경란씨는 "선거 이틀 전에야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며 "학교에 인물이 없느냐.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선거에 나가냐고 만류했다"고 한다.

연지는 몇몇 남자애들이 자신이 회장에 당선되면 학교 망신 당한다고 후보추천을 해주지 않았던 이번 선거에 나가 당당히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김연지 양은 "이번 기회에 학교에 더 충실하고 친구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에 반장은 수요일일 것 같다"

6학년 조용운 군은 "반장하고 싶었는데 떨어진 적도 있었다"며 "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같은 반 서영정 양은 "반장 못 해본 사람도 한번 해볼 수 있게 됐다"며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니까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린이회 담당교사인 이금주 교사는 "처음엔 매일 바뀌는 게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애들이 시샘해서 더 잘 하려고 한다"며 "남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전했다.

2학년에 아이를 둔 홍연화씨는 학교 홈페이지에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해도 안 듣던 아이가 7시부터 일어나 반장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신기했다"며 1일 반장제를 반겼다.

반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26일 이효인(2년) 양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나는 반장이다. 아주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수요일일 것 같다."

효인이는 벌써 다음 날짜를 손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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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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