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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며 양로원. 보육원. 군부대...등 전국을 돌며 힘들고 외로운 이들을 위한 공연을 해 오기까지의 뒤안길에는 드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전의 휴먼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황 화백은 6.25 때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생가는 폭격에 산산이 부서지고, 가난하고 병든 부모가 자꾸만 눈에 밟혀왔기에 탈영, 그는 무기수로 전락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기약 없이 수감생활을 하는 아들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교도소 문전에 셋방을 얻어 떡과 과일 행상을 하며 옥바라지를 시작했다.

황 화백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장롱 밑, 어머니의 버선 속에 숨겨둔 일본 화폐를 그려 엿을 사 먹은 일이 있었다.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야야! 큰일 났데이. 순사가 잡아간다."며 화들짝 놀랐다. 그 길로 엿장수를 찾아 나섰고, 아들을 대신해 용서를 빌었을 정도로 황 화백은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면서도 끼 있는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아 수소문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옥바라지에 그는 타오르는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밴드 장이 되어 취침나팔을 부는데 떡 광주리를 이고 귀가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울컥 이는 가슴을 진정하며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머니 마음' 한 곡을 더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이 지금도 법무부 장관실에 걸려 있다고 한다.

19년만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을 때 그의 그림 수준은 수 차례 '국전' 입상에 이어 '일본 국제 현대미술전'에서까지 금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고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첫 작품 전시회는 교도소 출신이란 특수성 때문인지 화려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하루 인건비가 고작 몇 천 원일 무렵, 전시회 수익금이 기백만 원이 되었다. "어무이~ 이게 1만원 짜리 10장인 10만원 수표입니더" 밤새워 돈을 헤아리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내~ 돈인지 모르는 게 아이다. 얘야! 형무소에서 배고파 봤제. 그들을 위로하고 본보기가 되라고 이 돈은 하나님이 주신 거 데이." 어머니는 냉정하고 단호했다. 그 때부터 전시회 수익금으로 교도소며 양로원. 꽃동네. 논산 훈련소... 등 전국을 돌며 위문을 시작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교도소에서 배운 몇 가지 마술, 시름 등. 유명 국민가수와 함께 음반을 낼만큼 노래와 악기 다루는데도 다재다능한 소질이 있었다. 순회 공연을 하기 위해 외부인사를 초청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족과 함께 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수감 중 교도소에 찬양 나왔다가 인연이 된 부인 이정숙씨와 사이에 3남매는 아버지를 모델 링으로 삼기라도 하듯 다재다능한 끼를 고스란히 대물림을 받았다. 늘, 황 화백의 신비에 쌓인 마술과 그림을 접하며 성장했기에 가족이 팀웍을 이뤄 전국을 돌며 위문공연을 하기엔 최상의 콤비였다.

가족 출연진의 경력도 다양하다. 황 화백은 (magic artist). 아들 황휘(magic, 노래). 큰딸 휘정(대학가요제 금상). 작은딸 휘숙(전국어린이 민요대상) 부인 이정숙(부부노래)씨도 한 몫을 거뜬히 해 낸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많은 전과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수렁에 빠지는 것을, 주변이나 언론을 통해서 우리는 안타깝게 보고 듣는다.

오늘의 황 화백이 있기까지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릴 만큼 훌륭한 어머니의 일화가 세상에 알려지며 어머니 또한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길고 긴 외롭고 괴로운 고통, 그 역경을 딛고 피워낸 예술의 혼이었기에 황 화백의 삶은 더욱 빛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자신처럼 힘든 이들을 위해 우뚝 섰으니 인간 승리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황 화백의 적극적인 내조자이자 버팀목인 부인 이정숙씨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 위문 갔을 때 있었던 실수를 생각하면 저절로 얼굴이 붉어진다."고 한다.

"장애인들을 돌보는 봉사자들을 생각하고 별도로 음식을 준비했지요. 외국 수녀님들이었는데 '우리는 이분(장애자)들이 드시고 남은 음식을 먹어요' 할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구요." 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드라마 주인공이자, 특종 비디오 저널...등 TV의 각 채널을 통해 특수 연예인으로 알려지며, 노래와 춤 마술로써 기업체 초청은 물론, 전국 순회공연과 해외교포 위문공연, 세계FlCC연맹 한국대표 초청공연 등 수 많은 공연 업적을 남겼다.

그 공로로 사회봉사부문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과 보사부 장관 공로패. 김대중 대통령 감사장까지 영광이 이어졌다.

서산을 곱게 물들인 노을처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이웃을 위해 황혼을 불태우는 황찬길 화백의 진솔한 삶을 향해 독자들과 함께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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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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