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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입니다.
서리 내린 들녘, 염소는 무엇이 그리 애 타는 지 가늘고 긴 울음을 웁니다. 군불을 지피고 들어와 아랫목에 눕습니다. 표고버섯 종균 넣을 참나무를 자르느라 종일 톱질을 했더니, 오십도 한참 멀었는데 오십 견이 저리고 쑤셔옵니다.

뜨거운 방구들에 지지면 나아지겠지요.
몸은 고단하고, 방바닥은 따뜻한데,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어느 날처럼 일이 끝나면 마시던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은 탓일까. 시간이 가면서 따뜻한 구들에 몸은 풀어지지만 마음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즈음 나는 다시 돌아감에 대해 생각합니다.
상실에 대해 생각합니다. 댐 건설로 고향마을 부용리의 산과 들과 집들이 사라져 갑니다. 방파제 공사를 위해 선창리 망월산이 뭉턱이로 잘려나갑니다. 완도군에서는 경인 방송과 무인도 기행이라는 관광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완도군 보길도 앞 바다의 무인도 멍 섬은 토석 채취로 영영 사라져 갑니다. 진실로 나는 고향에 돌아온 것일까요.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고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돌아옴으로 돌아갈 곳을 잃었습니다. 정녕 나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요.

어제는 젊은 벗들에게 고향으로 돌아 오라 권유하던 내가 오늘은 고향으로 오지 말라고 주문을 겁니다. 사람이 끝끝내 돌아가야 할 곳은 이따위 고향은 아닌 것을, 능욕 당해 처참한 고향은 아닌 것을, 그리움인 것을. 사람이 끝끝내 지켜야 할 것은 제 한 몸은 아닌 것을, 어머니인 고향의 몸인 것을. 나는 늘 늦게 깨달았으니. 늦게 싸우고자 나섰으니.

고향을 잃고 나는 씁니다.
그리움을 잃고 나는 씁니다.
참담함으로 씁니다.
비통함으로 씁니다.

그대들 돌아가야 한다면 고향으로 가지는 마십시오.
어디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갈 곳은 남겨두십시오.
끝끝내 고향만은 남겨 두십시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참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면 그때는 어디로 갈 것입니까.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들 고향은 더 이상 돌아가 편히 쉴 고향은 아닌 것을.
그러므로 그대들, 지킬 수 없다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래도 기필코 돌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지옥으로 갈지언정 고향으로 가지는 마십시오. 돌아갈 곳이 없는 고통에 비한다면 지옥의 고통도 사소한 것.

지옥의 고통이야 마침내 돌아갈 고향이 있음으로 견디어 낼 수 있을 테지만 돌아갈 곳 없는 고통은 또 무엇으로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까.

덧붙이는 글 | 저는 지금 보길도 댐 공사 백지화를 위한 무기한 단식투쟁 중입니다.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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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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