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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만수산의 퇴색한 건물들
이화원 만수산의 퇴색한 건물들 ⓒ 김남희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그런데도 감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는 늘 춥다는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추위와 감기가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고 있다.

오전에는 버스를 갈아타고 이화원에 다녀왔다. 갈 때는 2원과 3원을 낸 버스요금이 올 때는 1.5원과 2원으로 줄다니 어떻게 된 셈인지 모르겠다.

이화원에 들어서서 우선은 뒷길로 가 만수산에 올랐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뒷길은 호젓하고 산책 나온 것으로 보이는 북경 토박이 노인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퇴색하고 쇠락해 가는 기미를 숨길 수 없는 건물들이 쓸쓸히 서 있다. 이미 패망한 왕국의 여름궁전이기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나무도 돌도 다 빛이 바랜 듯하다. 짧은 겨울 햇살은 힘없이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비출 뿐이다. 그래도 호숫가 버드나무에 봄이 와 윤기 잃은 나무들이 어린 새잎을 내달 무렵이면 이곳은 또 다른 생동하는 기운으로 꿈틀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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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희

ⓒ 김남희
이화원은 서태후의 미화 5천만달러짜리 즉흥작이라고 한다. 근대적인 중국 해군을 창설하기 위해 마련된 예산에서 은 2400만 냥을 유용하여 자신을 위한 거대한 유원지를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니 정말 배짱 한 번 크다. 일부에서는 이로 말미암은 대가가 중국 해군이 청일 전쟁에서 참패하여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서태후가 그 자금을 유용하지 않았다 해도 서태후의 수석 대신 리훙장의 착취가 워낙 심해 강력한 해군을 갖지 못했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이화원 타배교 근처를 거닐다가 한 중국인 부부가 내 카메라가 자기 것과 같다며 말을 건다. 남편과 아내가 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지금은 이렇게 공원을 산책하거나 가끔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하나 있는 딸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것만 빼고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는 노부부에게서는 북경 중산층의 여유로움이 쉽게 드러난다. "한국 사람들은 정신력이 대단한 사람들이야"라며 한국의 경제성장 등을 치켜세우던 아저씨가 갑자기 "이화원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볼래?" 물으신다. 싫다고 할 내가 아니지.

ⓒ 김남희

이화원 석방
이화원 석방 ⓒ 김남희
아저씨를 따라 뒷편의 호수쪽으로 가니 정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다. 문제는 이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가야 한다는 거다. 아줌마는 위험하다고 안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아저씨는 몇 발자국 앞에서 망설이는 내게 묻는다.

"우리 집사람은 겁이 너무 많아. 한구어 샤오꾸냥! (한국 아가씨) 어때? 무서워?" 아저씨가 나를 부를 때 "한구어"만 안 붙였다면 내 대답은 "전 안 갈래요"였을 거다.

그런데 아가씨 앞에 그게 붙는 바람에 마치 담력을 시험 당하는 한국 대표선수가 된 것 같아 결국 건너기로 결심. 이 쓸데없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니... 이화원 앞쪽의 호수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걸어다니지만, 이곳으로는 오는 사람이 없는지 적막하기만 하다.

아저씨가 주신 막대기로 여기저기 찔러보며 아저씨 발자국을 따라 한발씩 떼는데 솔직히 너무도 무섭다. 사람도 없는 여기서 물에 빠지면 누가 우리를 구해준담. 게다가 아줌마가 계속 뒤에서 무섭다고 툴툴거리는 소리도 자꾸 신경 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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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의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건너 다니는 사람들
이화원의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건너 다니는 사람들 ⓒ 김남희

사람들이 해지는 이화원의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건너 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해지는 이화원의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건너 다니고 있다. ⓒ 김남희
"자 괜찮으니까 얼른 와요. 얼음이 두껍게 얼어서 안 빠져." 앞쪽에서 아저씨가 재촉을 한다. 내가 얼마나 물과 얼음을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이 겨울에 북경까지 와서 두께도 알 수 없는 얼음 위를 걷다니... 스키도 무서워서 못 타고, 빙벽등반은 행여 꿈도 안 꾸는 사람인데 이게 웬일이람.

천천히, 조심조심 호수를 건너니 작은 섬이다. 중국어로 '수웨이라오'라고 불린다는 그곳은 예전에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섬을 둘러싼 원형의 높다란 흙벽은 이미 절반 이상이 허물어졌다.

무너진 담벽 사이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별로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다. 그래도 외국인에게 나름대로 특별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를 여기로 데려온 아저씨 마음이 고맙다.

"아마 한국사람 중에는 여기 와 본 사람이 거의 없겠지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공손하게 인사를 했더니,
"한국사람? 여긴 중국사람들도 못 와보는 데야."
자못 자랑스레 얘기하시는 아저씨.

내 기침 소리를 듣고 꼭 약국 가서 약 사먹으라고, 건강하게 여행 잘 하라고 따스한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 부부와 헤어져 장랑을 걷는다. 길이 728m에 달하는 장랑은 서태후가 비나 눈을 피해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세운 지붕이 있는 긴 회랑이다.

이화원은 1860년 영불연합군의 방화로 폐허가 된 원명원과 가까이에 있다. 자기 생전에 원명원과 같은 아름다운 여름궁전을 다시 갖고 싶었던 서태후는 이화원이 완성된 후 너무나 기뻐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오늘 둘러본 이화원과 자금성. 여전히 궁의 황금색 지붕은 빛나고, 이화원 정원의 돌들은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높은 벽과 벽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 긴 회랑과 정자 위로도 세월의 더깨는 두껍게 내려 쌓이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집은 이토록 빨리 쇠락하는 것일까.

이화원 작은 섬안의 폐허가 된 옛 감옥
이화원 작은 섬안의 폐허가 된 옛 감옥 ⓒ 김남희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타배교
낙타의 등을 닮았다는 타배교 ⓒ 김남희
한때 빛나는 영화를 누렸던 옛 건물들. 그 모든 흥망성쇠를 말없이 지켜봤을 정원의 오래된 돌들과 나무들. 도시를 호령하던 영웅은 한 세대가 끝나면 사라져도 도시는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 모든 세월을 말없이 보여준다지. 하지만 이 주인 잃은 과거의 잔영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마침내는 먼지처럼 사라지고만 말 것 같아, 비단치맛자락이 회랑을 쓸고 가는 소리가 불현듯 몹시 그리워진다.

'여전히 어렴풋한 안개의 막 속에 싸인 나라가 깨어난다. 도시가 깨어나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깨어나는 것만큼이나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나는 아침의 작은 비밀들을 보기 위해 일찍 서둘러 거리로 나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천상의 두 나라' 중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갔다가 북경이 아침을 맞는 모습과 마주쳤다. 7시부터 판매하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6시 50분에 집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 마주친 풍경이 마치 꿈인 듯 아련하다.

안개가 걷히지 않은 도로 위로 빈 수레를 끄는 말과 마부들이 연이어 지나간다. 한 두 필의 말이 아니라 수십 마리의 말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빈 수레를 끌고 천천히 도로 위를 걷고 있다. 조용한 도로 위로 말발굽 소리가 환청처럼 달그락거리며 멀어져 간다. 북경에서 짐마차라니...

이화원 장랑
이화원 장랑 ⓒ 김남희

북경의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창 거리의 모습
북경의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창 거리의 모습 ⓒ 김남희
뜻밖의 만남에 기분이 좋아져 기차표 끊는 곳으로 가니 벌써 몇 명의 부지런한 중국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컴퓨터가 부팅이 안 돼 다들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오늘도 표 사기는 글렀나 싶은데 15분쯤 기다리니 한 남자가 들어와 살펴본다.

컴퓨터의 문제가 아닌 플러그의 문제로 문 밖의 다른 플러그에 선을 꽂으니 바로 컴퓨터가 켜진다. 어제도 표가 없다고 되돌아섰던 터라 또 없다면 어쩌나 싶은데 마침내 손에 쥔 기차표! 월요일에 출발하는 성도행 기차표를 들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른 중국의 아침 풍경과 만난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많게는 20-30명이, 적게는 두서너 명씩 모여서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TV에서만 본 중국시민들의 아침운동이다. 조금씩 빠른 몸동작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기공이나 태극권처럼 동작이 느리면서도 부드러운 듯 힘차다. 슬쩍 끼어들어가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오늘따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여름에 다시 중국에 오면 그때는 꼭...'

기약 없는 다짐을 하며 구경만 하다 돌아선다.

유리창 거리의 전봇대에 걸린 새장. 중국사람들에게는 새를 키우는 것이 아주 일반화된 풍습이다.(왼쪽) / 유리창 거리에서 손으로 곤충등을 만들어 파는 아저씨
유리창 거리의 전봇대에 걸린 새장. 중국사람들에게는 새를 키우는 것이 아주 일반화된 풍습이다.(왼쪽) / 유리창 거리에서 손으로 곤충등을 만들어 파는 아저씨 ⓒ 김남희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 ⓒ 김남희
아침을 먹고 선무문 밖의 유리창으로 간다. 유리창 거리는 원래 원, 명 시대에 유리기와를 제조하는 '유리창'이 있던 곳이다. 청나라 강희제 이후 점차 서적, 골동을 비롯하여 문방사보, 인장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북경의 문화거리로 형성됐다. 유리창은 인사동보다 규모는 작지만 길가로 고풍스런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더 운치가 있다.

유리창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길가에 작은 수레를 세워놓고 주전부리며 기념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한 가운데 긴장이 감돌더니 하나둘씩 수레를 끌고 사라진다. 뒤를 돌아보니 완장을 찬 공안이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다.

노점상을 몰아내는 데 욕설이나 강제적인 행동은 없다.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으며 노점상 앞에 가서 잠시 서 있으면 알아서 수레를 꾸려 떠나간다. 그렇게 수많은 노점상을 몰아내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니 공안의 위력이 이렇게 세다니?

서울이나 북경이나 이런 일에 대한 처리방법은 강약의 차이만 있지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럽의 도시들 중엔 노점상을 도시의 명물로 만들어버린 곳도 있는데 우리에겐 그런 전략적 사고가 불가능한 것일까?

유리창 가게 곳곳에는 이렇게 사회주의 시대의 포스터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유리창 가게 곳곳에는 이렇게 사회주의 시대의 포스터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 김남희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장이모 감독이 영화화해 유명해진 '인생'에도 등장한다.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장이모 감독이 영화화해 유명해진 '인생'에도 등장한다. ⓒ 김남희

조용히 나타난 공안과 수레를 끌고 사라지는 노점상들
조용히 나타난 공안과 수레를 끌고 사라지는 노점상들 ⓒ 김남희
유리창을 나와 북해공원으로 간다. 북해공원의 인공 섬 경화도의 언덕에 세워진 티베트식 백탑은 황제가 그 위에서 베이징 성을 내려다보던 곳이라고 한다. 백탑은 1652년 만주족 황제인 순치제가 달라이 라마의 베이징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경산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북해와 중해를 분리하는 대리석 홍예교는 예로부터 조공을 바치러 오는 사람들이 황성으로 진입하는 지정 도로였다. 북해공원은 또 단성 안 승광전에 안치된 옥불과 옥병으로 유명하다. 승광전에 1원의 입장료를 다시 내고 들어서니 앞 뜰에 그 유명한 옥병이 유리벽에 감금되어 있다. 높이 60cm 남짓 되는 미얀마산 검은 옥으로 만든 병은 연회 때 술을 담아놓는 용기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옥병에는 파도를 타고 움직이는 용과 해마,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해수들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좀더 가까이서 보고싶은데 유리벽 때문에 다가갈 수가 없다. 임어당이 모나리자의 미소와 같다고 묘사한 승광전 안의 옥불도 주위에 경계선을 쳐 놓아 가까이 다가가 볼 수가 없다. 그래도 그 깨끗하고 단정한 자태는 문외한의 눈에도 쉽게 드러난다.

북해공원을 나와 다시 버스를 갈아타며 산리툰까지 간다. 실정법을 위반하고 암달러상에게 환전을 하기 위해. 하지만 결국 기대했던 이익을 얻는 데는 실패.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겨우 100불당 4원 더 받았으니 가고 오간 교통비며 시간 빼면 오히려 손해다. 게다가 아찔한 일까지 당했다. 환전을 하고 버스 타러 나가는 길이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한국대사관과 영사관이 있다길래 어떻게 생긴 건물인지 좀 보려고 건물들 쪽으로 바싹 다가가서 간판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한 공안이 앞을 막아서더니 다짜고짜 무서운 얼굴로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묻는다. "한국사람인데요. 왜요?" "여기서 뭐하는 거야?" "한국대사관 찾는데요." 인상이 더 험해진 공안,

"여권 있으면 꺼내봐."

그런다. 그 무서운 기세에 질려 지갑에서 여권을 꺼내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네가 왜 내 여권을 보려고 하는데? 나는 관광객인데 왜 그러는 건데?" 되물었더니 "빨리 여권 있으면 꺼내봐." 고압적 자세이다. 더 버티다가는 몇 대 맞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여권을 빼줬더니 꼼꼼히 훑어보고 얼굴을 확인한다.

북해공원
북해공원 ⓒ 김남희
내게 여권을 돌려주며 실례했다는 의례적인 말도 없다. 돌아서다가 억울해서 또 묻고 만다.

"근데 왜 여권 보자고 했는데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얼굴로 대답하는 공안. 너무 빠르고 모르는 단어 투성이라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몇 마디 들리는 단어가 "북조선" "대사관" "경비 철저"인 걸로 미루어 짐작해보니... 여기가 바로 탈북자들이 망명하기 위해 찾아드는 대사관 거리가 아닌가.

갑자기 아찔해진다. 오늘 여권 안 가지고 갔으면 꼼짝없이 탈북자로 몰려 공안으로 끌려가는 일을 당할 뻔했다. 게다가 이 공안이 나한테 "한국대사관은 왜 찾는데?"라고 따져 물었으면 내 궁색한 중국어 실력으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그냥... 구경 하려구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대답 같다. 소심한 나.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반대편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공안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가 가르쳐 준 한국대사관이 있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내가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한 하루다.

북해공원내의 정자에서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공원에 나와 함께 연습을 한다고 한다.
북해공원내의 정자에서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공원에 나와 함께 연습을 한다고 한다. ⓒ 김남희

북해공원의 백탑(왼쪽) / 북해공원의 돌문들
북해공원의 백탑(왼쪽) / 북해공원의 돌문들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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