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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상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대자연의 섭리이니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이다.

공초 오상순 선생은 곁에서 임종하는 혈육 하나 없이 가셨다. 평생을 떠돌이 삶을 살다간 '폐허'의 최후 동인이었다.

1962년 6월 3일, 오랫동안 병상에서 투병하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는 비보는 공초 선생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출가와 환속을 거듭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담배 연기와 더불어 산 시인이다. 하루에 열 갑이나 태웠다는 골초 애연가로, 신문기자들이 담배 값이 오를 때마다 공초 선생의 담배 값을 대신 걱정하는 기사를 썼다.

내가 공초 선생을 처음 뵙게 된 날은 1961년 어느 여름날 오후, 명동 유네스코회관 뒷골목 청동 다방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 습작 노트를 보시고서는 평소 안면이 있었던 공초 선생을 사사하라고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선생의 첫 인상은 이 세상의 모든 물욕과 번뇌를 초탈한 살아 있는 부처님처럼 보였다. 삭발을 하셨고, 소문대로 입에는 파이프를 잠시도 떼지 않았다.

그 날 습작 노트를 선생에게 드린 후, 여러 차례 청동 다방을 찾았다. 언제나 뵐 때면 파이프를 물고 있었고, 차상 위에는 '청동산맥(靑銅山脈)'이란 사인북을 두었다.

"한 십 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괘 여러 권 돼. 이게 내 전 재산이야"하면서 사인북을 펼쳐 보였다. 까만 표지에 흰 모조지를 100장쯤 묶은 것으로 거기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유명 문우들의 글, 무명 문학도의 시화, 어느 화백의 공초 캐리커처, 여성 독자의 사랑 고백 등.

"선생님이 젊다면 프로포즈를 할 텐데……."

이젠 그 사인북이 선생의 유일한 유산이라니 그때의 말씀이 새삼스럽다. 입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내뿜는 담배 연기는 당신의 호 '공초(空超)'란 말대로 공허를 초월한 독백이랄까?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문학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 이 세상 삼라만상, 특히 자연 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써 봐. 평생을 바친다는 각오로."

여러 말씀 중에 남아 있는 말씀이다. 나에게 '싹이 노랗다, 파랗다'라는 말씀은 한 마디 없이 만날 때마다 계속 쓰라고만 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선생이 적십자병원에 입원하다가 퇴원하여 조계사에서 머물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조계사로 찾았더니, 스님 한 분이 건강이 악화돼 다시 입원했다고 했다. 나는 그 길로 곧장 서대문 네거리에 있는 적십자병원으로 향했다.

봄비를 그대로 맞으며 진달래와 개나리가 망울진 꽃다발을 들고서. 병실에 들어서자 선생은 누워 계신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명상을, 아니 참선을 하고 계신지도.

나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침대 곁에서 선생을 지켜보았다.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 - 저녁놀이 물든 대지에 외로이 그늘진 긴 그림자랄까?

"선생님, 학생이 선생님 뵙고자 왔습니다."

곁에서 간호하던 제자가 깨우자 선생은 그제야 눈을 뜬 후, 반가운 눈빛으로 손을 내게 맡겼다. 앙상한 가지처럼 야윈 손이었다. 선생은 다시 눈을 감았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

………………·
………………·.

나그네 마음
오 - 영원한 방랑의 마음
방랑의 품속에
깃들인 나의 마음.

- <방랑의 마음>


그토록 즐겼던 담배도 의사로부터 금연령이 내려 태우지도 못하지만, 그 푸른 연기가 그리워서 파이프를 물지도 않은 채 금붕어처럼 잇달아 길게 빨아들이고 내뿜었다.

"저렇게 담배를 못 잊어 하시는데 의사 몰래 한 개비 드려 보지요."
"그렇게 해 드렸습니다만 한 모금도 태우질 못하시고 그대로 꺼트렸습니다. 어제는 일기를 쓰겠다고 노트를 달라기에 사다 드렸으나 글자 한 자 못 쓰셨어요."

시나브로 꺼져 가는 촛불, 모든 인체 기능이 노화로 서서히 탈진해가고 있었다. 식사라고는 우유 한 잔, 우유를 마시다가 메스꺼워 김치를 찾지만 한 조각도 못 든다고 했다.

그 며칠 뒤 토요일, 마침 석간 배달시간까지 잠시 시간이 있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 날이 선생과 이승에서 마지막 만남이었다. 병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그대로 밀었더니 혼자 누워 계셨다. 인기척에 눈을 떴다. 아주 반가운 표정이었다. 내게 무슨 말씀을 하였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디서 와?"
짐작에는 이런 질문 같았다.
"학교에서 오는 길입니다."
"공부 잘해."

모기소리만큼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신 후 전날처럼 내게 손을 맡긴 채 지긋이 눈을 감았다.

"선생님?"
귀에다 속삭이듯 불렀다.
"외로우시죠?"

나의 질문에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 곁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마침 석간 배달 시간이라 병원을 떠나야 했다.

"선생님 저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시간이 돼서 보급소로 가야 합니다.

못내 서운한 표정이었다. 좀더 머물고 가라는 애절한 눈망울이었다.

"선생님. 빨리 회복하세요."
"……."

대답 대신에 눈빛으로 나를 배웅했다. 밖은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쏟아졌다. 나는 그대로 비를 맞으며 신문보급소로 향했다.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속에
바다를 그려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 <방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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