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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dian Road - Best Of Native American Flute Music Vol.1
The Indian Road - Best Of Native American Flute Music Vol.1 ⓒ 배성록
그런 의미에서 월드뮤직과 시에스타 레이블 소속 뮤지션 소개에 앞장섰던 알레스 뮤직이 새로 선보인 이 편집음반 [The Indian Road] 시리즈는 일청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간 영화와 서적을 통해 인디언의 이미지와 생활 풍습은 어렴풋이 소개가 되었다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디언 음악을 들어봐야 하는 이유는, 남미의 누에바 깐시온이나 꾸바의 누에바 뜨로바를 알아봐야 하는 이유와 상통한다. 우선 음악에 담긴 메시지가 민중들의 애환, 분노 등을 전달할 것이고, 사용된 악기나 선법 등을 통해서는 생활 문화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가령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곡을 통해 칠레 민중들의 정서를 접하고, 그 나라 고유 음악의 요소를 추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디언 음악의 소개는 늦었지만 의미 깊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장황했던 앞의 사설들에 비해, 정작 소개된 첫 음반은 다소 예상을 빗나간 내용물을 담고 있다. 앞으로 두 장의 시리즈가 더 발매될 예정이라니 지켜봐야겠지만, 이 1번 시디만으로는 인디언 음악과 그들의 정서에 대해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하다. 철저히 정적인, 뉴에이지에 가까운 음악들 위주로 선곡되었고, 그에 더해 구슬픈 플루트 선율 위주로 구성되어 마치 ‘한국인이 좋아할 법한 인디언 음악’이 기획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꾸바 음악처럼 속시원히 미제에 일갈하고, 리드미컬한 퍼커션 난타와 황홀한 가창이 이어지는 음악이 아니다. 어찌보면 청승맞다고 할 수도 있을법한 팬플룻 선율은 안데스 음악을 연상케 하고, 인생의 지혜를 담은 노랫말은 박노해 선생 마냥 ‘도사’가 된 듯 밍숭맹숭하고, 이래저래 기대와는 틀리다. 아마도 필자는 꾸바 뮤지션들처럼 혁명적이고 강렬한 음악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세 장의 시리즈 가운데 첫 음반이라 ‘안전빵’만 모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메리 영블루드(Mary Youngblood), 조안 셰난도(Joanne Shenandoah)를 비롯해 현재까지 인디언 문화를 고수해온 이들, 다시 말해 인간 문화재나 진배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수록곡 역시 5음계나 6음계를 중심으로 안데스 음악과 상통하는 ‘단순’하고 구슬픈 플룻 선율, 거기에 이따금 북이나 막대기와 같은 인디언의 전통 퍼커션이 얹어지는 식이 대부분이다. 또한 ‘휘슬(Whistle)’이라 해서 새의 뼈로 만든 악기도 종종 등장하는데,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물론 리듬감과는 거리가 멀고 새 울음 소리와 같은 효과를 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음반 전체가 별다른 리듬 파트 없이 단조의 절절한 선율로 메워져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극소수 보컬 곡의 메시지 역시 “인생에는 너 홀로 넘어야 하는 많은 언덕들이 있단다” 내지는 “사람은 홀로 인생에서 숙고하여 선택한 하나의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진정 끝없는 원이다” 따위의 ‘잠언’과 인디언 전통의 자장가 위주이다. 억눌린 민족 특유의 전투적이고 강성을 띄는 메시지를 기대했던 필자로서는 한방 먹은 셈이다.

어이없는 것은 기타나 피아노와 같은 서구의 악기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세 번째 트랙인 부터 느닷없이 기타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곡 에서는 첼로가, 백인들로부터의 탈주를 노래하는 에서는 피아노가 사용되어 맥을 빠지게 만든다. 음악 팬으로서도 해독 불가능할 전통 음악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음반 내 수록곡 대부분에 이런 서구 악기가 동원됐다는 사실에 김이 빠지는 것이다. ‘뭐야, 타협했잖아’ 하는 기분 있잖은가.

이런 이유로, 이 인디언 음악 시리즈는 계속되는 후속작을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본작은 처음 소개된 음반이라 그런지 한국적 정서와 상업성을 고려하느라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쏙 빼놓은 것만 같다. 이는 단순히 미국에 침략당한 이들의 한과 분노어린 노래를 기대해서도 아니고, 아메리카 전통 음악 특유의 격렬한 리듬감을 기대해서도 아니다. 그저, 여기 실린 것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란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필자는 예전에 모 교수의 사이트에서 접했던, 동물 뼈로 만든 퍼커션과 동물 가죽으로 만든 리드 악기가 어우러진 흥겹고 들썩들썩 요란한 북미 전통 음악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계속 발매될 이 시리즈의 2번째, 그리고 3번째 시리즈를 기대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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