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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에 실린 편지글 원본
국방일보에 실린 편지글 원본 ⓒ 조수일
한 신문사에서 장병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주관한, 편지글 공모에서 대상을 차지해 받은 상금을 자신이 입대전 교사로 봉사했던 야학에 기증한 병사의 미담이 뒤늦게 밝혀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태청야학은요...

ⓒ태청야학 제공

91년 1월 '작은사랑을 이루려는 이들'이라는 모임 발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작은사랑 태청야학'은 서울시 중랑구 묵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경제적 문제나 가정환경, 사회구조, 기타 개인적인 여건 등의 여러가지 제약으로 인해 제도교육으로부터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물론 한글을 모르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여 가능한 최선의 교육의 장을 마련해서 그들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데 필요한, 기초교육인 한글 및 초중고등 교과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펴는 사회교육 실천자들의 모임입니다.
현재 교사 및 학생수는 100여 명에 이르며 소외된 이웃들에게 작은 희망을 나누고자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asmalllove.com.ne.kr/

주인공인 박수호(23, 육군 53사단 본부근무대)상병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국방홍보원과 (주)국방홍보미디어가 공모한 '사랑의 편지쓰기'에서 자신이 입대전 4년동안 자원봉사했던 태청야학(서울 중랑구 묵동)의 제자들이 늦은 나이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들을 떠올리며 썼던 '천근 만근 눈꺼풀과 씨름해도 행복하다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 11월 최우수상과 올해 1월 종합대상을 받았다.

박상병은 지난해 11월 받은 상금 20만원과 종합대상으로 받은 50만원 중 일부를 편지의 소재가 되었던 야학 운영비로 써 달라며 기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상병은 2001년 11월 입대 후에도 야학의 후원자로 가입해 매월 자신의 용돈을 아껴 꼬박 후원금으로 보태고 있다.

나눌 수 있어 기쁘다는 박수호 상병
나눌 수 있어 기쁘다는 박수호 상병 ⓒ 조수일
지난 1998년부터 야학에서 박상병을 곁에서 지켜봐왔던 태청야학 박승일(41) 교장은 "야학교사로 일할 때도 학생들의 어려움에 늘 도움을 줬던 박상병이 입대해서도 매달 후원금은 물론 적지않은 금액을 선뜻 내놓아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53사단 정훈공보부에서 정훈병으로 복무하고있는 박상병은 평소 뛰어난 업무능력과 성실한 생활태도로 병영 안팎에서 칭송이 자자한 모범병사로서 선행이 주위에 알려지자 박상병은 "문예대회에서 상을 받은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과 같이 내가 쓴 글로 크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천근만근 눈꺼풀과 씨름해도 행복하다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국방홍보원 주최 '사랑의 편지' 대상작

낙엽 드리운 가을 정취 한 번 제대로 느껴볼 새도 없이 성큼 다가온 겨울 날씨에 아마도 각 교실에는 난로가 놓아졌겠지요. 분필쥐던 손, 제법 묵직한 소총으로 바꿔쥔 지도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작년 이맘때 '선생님, 잘 다녀오라'시며 끝내 손을 놓지 못하던 어머니 같은 학생분들, 그 걱정스런 눈빛이 아직도 제 마음에 서려 있습니다.

야학 식구들, 잘 지내시죠? '달맞이고개'로 어느덧 제법 매서운 바닷바람 보듬은 아침해가 고개를 슬며시 드노라면 저는 장병들의 단잠을 깨우기 위해 이미 기상 방송기기 위에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생활하면서 그렇게 그리던 바다를 앞에 두고 늘 부대의 아침을 열어주는 정훈병의 새벽은 참으로 복되고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곳 부산에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들지만 장병들의 일과를 가리켜주는 나침반이란 생각에 별로 힘든 줄도 모르겠습니다. 쓸모없이 옹이지고 뒤틀린 나무라도 여름이면 그 어느 곳보다도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법입니다. 저 역시 이렇게 '쓸모'있음에 감사드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간 경계근무를 서면서 야학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이제 은행 지로 용지에다가 이름을 써넣을 수 있게 됐는데도 어디다 내놓고 자랑할 수 없어 화장실에서 가슴 씀벅해지도록 울었다는 아주머니 이야기며, 늘 딸이 적어주는 번호대로 버스를 탔던 것을 이제는 혼자서도 잘 타신다는 야채가게 아저씨, 온종일 공장일로 시달리다가 뒤늦게 수업에 들어와서 천근만근 눈꺼풀과 씨름해도 행복하다는 아주머니의 모습들이 눈에 선하군요. 하찮은 존재이지만 더불어 함께한다면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곳 병영에서도 행군하면서 옆전우를 부축해주었던 일이며, 내무실 분대원 생일파티한답시고 초코파이에 양초 꽂고 축하노래 부르며 마냥 신났던 일 등 작지만 살가운 추억들을 쌓아가고 있지요.
떨어져 있어보니 더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이사를 가게 돼서 더 이상 야학을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아주머니 한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제대하면 꼭 찾아오겠다는 말을 잊지않으셨지요. 사람 귀하게 여기는 야학 식구 여러분의 작지만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오래 꿈꾸는 사람은 꿈꾸는 모습을 닮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학구열에 후끈후끈할 교실 떠올리며 제대하는 그날까지 건강히 저마다의 꿈을 이루길 기원합니다.
/ 박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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