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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나이들어 고생하는 사람 쪽이다, 나는. 책은 처음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계속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실천하면 나이들어 호강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독려하고 있지만 나의 결론은 고생 쪽으로 기울어져서 영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스물 다섯 평 아파트 사느라 빌린 은행 대출금에 아이들 교육비 이것 저것 제하고 나면, 한 달 살림 꾸려가는 것이 어떨 때는 거의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급해서 다음 달 월급 생각하고 끌어당겨 쓰고 나면 언제나 상여금은 숫자상으로만 존재하는 신기루일 뿐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봐도 이쪽 돌 빼서 저기에 박고, 다시 저쪽 돌 빼다가 여기 막는 생활을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출근하는 남편의 등을 볼 때마다 '혹시 내가 살림을 제대로 못해서 이렇게 쪼들리나?'하는 생각도 하지만, 더 이상 줄일래야 줄일 것 없이 빤한 생활비 내역은 하도 들여다 봐서 종이에 구멍이 뚫릴 지경이다.

그래도 책에서는 당신의 인생 시계는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 "재정의 안정을 이루고 사회적 지위를 다지는 시기"라고 말하며 40대의 투자 전략을 지시하고 있다. "투자에 있어서 자기 중심을 지켜라. 그리고 일과 휴식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건강을 챙겨라."

지금의 노년 세대는 이미 시작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또 노년기를 바로 앞에 두고 있거나 먼 훗날을 내다보며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노년의 그림을 그려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막상 경제적인 노년 준비에 이르면 스스로도 실행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본 원칙 앞에서 위축부터 되고 만다.

오래도록 은행에서 고객 상담을 해오면서 재테크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지출 관리, 여러 종류의 저축 활용법, 투자의 기본과 투자 요령, 세금 절약법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

특히 책의 맨 앞에서 만나게 되는 "당당한 인생을 위한 재테크 10계명"과 연령대별로 나누어 표현한 "지금 내 인생 시계는 몇 시인가?"는 일목요연하게 개개인이 위치해 있는 인생의 단계와 그동안 무심코 넘겨온 경제 생활의 기본 원칙들을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어 유용하다.

그러나〈2부 내가 꿈꿀 수 있는 노후〉에 이르면 우리가 흔히 노후 생활로 그려볼 수 있는 여섯 가지 모습, 즉 전원 생활, 실버타운, 자녀와의 동거, 평생 교육을 통한 새로운 지식 습득의 즐거움,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용기, 봉사 활동의 보람 등을 거론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고 스쳐지나가는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 부담없이 막연하게 나누는 한담 수준으로, 노년의 삶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돈을 잘 모아 현재의 생활을 알차게 꾸려나가면서 넉넉하고 편안한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돈을 벌기에 앞서 "먼저 인생을 재테크하라"고 계속 강조하기는 하지만, 인생 재테크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치 판단과 삶의 중심은 돈을 모으는 일에 밀려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의 나이와 경제 상태를 염두에 두고 메모를 해 나갔다. 보험(노년 준비), 생활 자금(저축 필요), 교육비(아이들 상급학교 진학 고려)…. 한 줄씩 더해지던 메모는 이렇게 끝나고 만다. '채무 상환 먼저!'

노년 준비는 돈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데 어찌 삶의 질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년 준비가 곧 돈은 아니라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저자와 같은 재테크 전문가가 상담자와 고객으로 만난 노년 경험을 넘어서서 노년의 삶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인생 재테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노년의 삶과 노년 준비에 매우 중요한 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사람이 너무도 작게 줄어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서 읽기에는 편했지만, 다른 재테크 책에서 느낀 좌절감과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바로 커다란 돈의 그늘 속에서 사람이 너무 작게 줄어들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나이들어 호강하는 사람 나이들어 고생하는 사람 / 오정선 지음 / 시대의 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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