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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으로 공부하러 온지 2년 반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애초부터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어서 졸업하기 전에는 갈 일이 없을 거라 단념하며 살았습니다. 빠듯한 유학생 살림에 비행기 값도 만만치 않고 어차피 돌아갈 나라이니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두고온 그리움이야 적지 않았지만. 방학 때면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 다녀오는 유학생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그 단념의 정도가 조금 덜했기 때문인지 때론 부러운 눈빛을 보이곤 했지만, 그런 아내를 저는 애써 모른 척 했었지요.

그러다 지난 연말에 형님 결혼식이 있어서 한달 남짓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하지 않던 차에 갑작스레 온 기회여서 그랬는지 마음이 분주해서 기말시험을 어떻게 치뤘는지도 모르게 마치고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탓에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처음 느낌은 마치 군대에서 첫 휴가나온 기분이었습니다. 가족들과 가까운 친척 분들이 함께 모여 식사도 하고,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들 혹은 떨어져 있어서 소식이 끊겼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비슷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하루는 친구 몇과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 늦어 한 친구의 자취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불을 끄고 누으려는데 친구가 대뜸 "가끔 유학중인 친구들이나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미국은 한국에 비해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이야기하는데, 진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지만, 피곤함과 힘겨움이 묻어있는 친구의 모습 때문에 누워서도 곤혹스러운 마음이 가시지는 않더군요.

2.

ⓒ 조명신
미국에 처음와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미국에는 'A4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렸을 때 쓰던 '16절지'가 어느 때부턴가 A4지로 대체되면서부터 자연스레 표준규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름 탓인지 무의식적으로 A4지가 세계화된(?) 규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A4지 대신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바로 '레터(Letter)지'라는 규격의 용지입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레터지는 A4지에 비해 길이가 약간 짧고 폭이 약간 넓습니다. 사용하는 도량형이 다르기 때문에 단위가 다르지만 굳이 수치로 비교해 보자면 A4지는 '210×297밀리미터'이고 레터지는 '8.5×11인치'입니다.

기본 규격용지가 레터지인 관계로 복사기나 프린터 혹은 파일이나 노트까지 그 크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본적인 문서나 기타 서류철들이 A4지 규격에 맞추어져 있는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가끔은 한국에서 유학오시는 분들 가운데 A4지나 혹은 A4지에 맞추어진 규격의 파일이나 서류철을 가져오시는 분들이 계신데 수고스럽게 가져왔으면서도 이곳에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종이가 좋고 어떤 종이는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종이의 크기가 다를 뿐이지요. A4지를 사용하는 곳에서 레터지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고, 레터지를 사용하는 곳에서 굳이 A4지를 사용하겠다는 것도 어거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3.

마침 제가 이곳으로 돌아오자마자, 북한이 핵문제와 연관해서 여러 가지 파격적인 선언을 하는 바람에 이곳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한국에 다녀온 줄 아는 미국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 묻는 바람에 대답하느라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없는 저에게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곤란한 문제를 들이대며 어설픈 전문가적 견해를 묻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한국에서는 미국에 대한 질문으로 불편했는데, 이곳에 오니 한국에 대한 질문 때문에 곤란한 기분입니다.

ⓒ 스타-텔레그램
지난 주말, 제가 살고있는 텍사스의 지역 일간지인 "스타-텔레그램(Star-Telegram)"에 '그들과 미국(Them vs. U.S.)'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반미주의에 대한 논평기사였는데, 그 섹션 첫 면의 커다란 네 개의 사진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어서 눈에 띄었습니다.

정작 기사 속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 없이 사진설명에 '대형 성조기를 찢고 있는 한국인들'이라고 달아놓았습니다. 주로 캐나다를 다루기는 했지만 지구촌 곳곳의 반미주의를 소개한 기사에서, 반미주의자들이 과거 미국이 행했던 좋은 일들을 다 잊었다는 볼멘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정리되지 않는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기분이 지난 한 달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느꼈던 복잡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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