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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과 어선
일몰과 어선 ⓒ 김문호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조각배 하나로 칠산, 거제도 앞 거친 바다를 누비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노인이 되어 추억 속에 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어류포 항은 조도의 관문인 만큼 생활물자를 싣고 온 육지 차량과 사람들로 뒤엉켜 생기가 넘쳐난다.

조도에 물건을 팔아 이문을 챙기는 장사꾼은 당연하지만 섬등포 새우와 신전리 삼치 어획고가 뚝 떨어진지 오래된 섬사람들의 풀기 없이 축 늘어진 어깨를 거나한 술기운으로 곧추 세우고 허세를 부린다.

무인등대와 어선
무인등대와 어선 ⓒ 김문호
올해도 새해 아침은 어류포마을 등대 불빛사이로 슬며시 찾아 들었다. 조도 등대는 100년 세월을 견디며 목포에서 제주도를 왕래하는 화물선이나 멀리 공해상으로 떠나는 어선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바다에 까만 어둠이 밀려오면 때를 따라 불을 밝히고 처음 물길에 불안한 키잡이는 등대가 비추는 섬광을 따라 힘찬 물살을 헤치며 목적지로 항해한다.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어둠과 거친 파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희망을 뿌린다.

조도 등대는 1909년 2월 처음 불꽃을 낸 뒤 해방되던 12월 미군정청 운수부 해사국으로 접수되고 1955년 12월 목포지방 해무청으로 이첩되었다. 등대와 등대지기의 외롭고 소외된 이미지를 바꾸고 등대지기의 사기진작을 위해 정부는 1988년 8월 등대를 '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류포 항구에서 바라본 조도등대
어류포 항구에서 바라본 조도등대 ⓒ 김문호
사방 100리를 비추는 섬광을 바다는 뚝하면 밤 안개로 온통 뒤덮어 버린다. 불빛이 안개에 묻히면 종탑에 올라 밤 새워 종을 때려 제 몫을 다한다. 지금은 사이렌으로 항로를 알려주는데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시설이 없어 등대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타종방법으로 위치를 식별하도록 하였다.

조도 등대 아래 해안은 물이 깊고 물살이 어찌나 거센지 불쑥 튀어나온 뿔치바위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곳은 100년 세월만큼 등대지기의 절절한 애환이 전설로 남아있다.

근무시간에 바다 밑을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전복이 나타나고 잡으려 내려가면 어느새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해 근무자를 유혹하여 물 속에 뛰어 든다는 것.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외로움을 경계하여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이곳 조도에서 전복은 사리물 때 바닷가에 나가면 쉽게 잡던 어패류였다.

팽목에서 조도를 왕복하는 철부선
팽목에서 조도를 왕복하는 철부선 ⓒ 김문호
명랑해협 울둘목 보다 센 물살

서해의 겨울바다는 넓고 깊어 조용한 듯 흐르지만 곳곳이 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고 굽이치는 소용돌이가 장관을 연출한다. 길을 잘못 잡으면 위험에 빠진다. 무차별적인 바다모래 채취로 수심이 깊어져 물 흐름이 전체적으로 빨라졌지만 팽목에서 조도를 잇는 바다는 물 빠르기가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이충무공이 조류를 이용하여 일본해군을 일망타진했던 명량대첩 전승지 울둘목이 명함을 꺼내지 못할 정도이다. 울둘목이 급 물살에 반해 사위 삼으려 청을 넣었다가 퇴짜맞고 울고 갔다는 것이다. 바다가 넓어 물살을 느끼지 못할 뿐 방심한 화물선의 조난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섬 남정네들은 삶과 죽음의 접경지대인 바다를 사랑한다. 바다는 어부의 피를 제물 삼아 호흡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섬에 남겨진 여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으랴? 매일 망망 대해를 보며 긴긴 밤을 지새우며 망부석이 됐던 여인들의 소망을 성난 파도는 매몰차게 짓이겨 버렸다.

늘 풍성히 고기를 내던 바다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생채기를 남겨 고기를 생산하지 못한다. 심지어 비땅(부지깽이)에 줄을 메어 바다에 던져도 손바닥만한 돔을 손쉽게 척척 낚아 올리던 1970년대. 풍성히 잡아온 고기를 소금에 저리고 잘 말려 목포나 진도에 팔아 넘기었다.

동력선이 아닌 바람과 조류를 이용한 돗단배로 항해를 계속하다 역풍을 만나 물과 식량이 떨어지면 어느 곳에 든 정박하고 고기와 식량을 교환했다.

잡아온 멸치를 삶아 내는 솥
잡아온 멸치를 삶아 내는 솥 ⓒ 김문호
멸치 말리는 아낙
멸치 말리는 아낙 ⓒ 김문호

세월에 찢기어 무뎌진 사람들은 자연 순응방법을 터득하여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훈훈한 정만은 흘러 넘쳤다. 어려운 생활만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런데 물질이 풍요한 요즈음은 어떠한가.

굳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여 끈끈하게 유지되던 공동체가 급속히 무너지고있다. 먼바다까지 출조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런지 모르겠다.

드럼통 끌어 올리기
드럼통 끌어 올리기 ⓒ 김문호
어획고가 뚝 떨어져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어부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돈을 들여 기르는 양식어업과 톳,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 양식이 주소득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조도는 예나 지금이나 섬이고 그들의 삶의 터전은 역시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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