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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17일 '4000억 대북 지원설' 등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그동안 각종 의혹제기와 함께 '설'로만 무성하게 나돌던 각종 의혹사건의 진실규명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현 정부에서 발생한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에 대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엄정한 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노무현 정권이 이같은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지도 주목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오전 감기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만나자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서 대표가 특별히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노 당선자-서 대표 회동' 성사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오전 노 당선자가 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빠른 시일 안에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며 "만나서 이런 말을 할 것"고 발표했다.

"지금 한나라당이 제기하고 있는 몇가지 의혹사건들에 대해 검찰이 정치적 고려 없이 공정하게 수사할 것으로 본다. 만약 취임 때까지 수사가 되지 않는다면 취임 이후에 투명한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문제(한나라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혹사건)로 국정수행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도와달라. 최소한 정부 출범이라도 할 수 있게 도와달라. 이런 말을 하고자 했다"

특히 이 대변인은 "인사청문회법이 개정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국회가 검증을 원한다면 그에 해당되는 사람을 국회에 보내 인사도 올리고, 질문도 받고 설명도 드리도록 할 용의가 있다"면서 "국회가 원한다면 그런 과정이 TV로 중계되어도 좋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번 찾아뵙겠습니다"..."좋습니다, 월요일 퇴원한 이후에"
노무현과 서청원 전화통화 1분

▲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의 전화통화는 노 당선자가 먼저 했으며, 공개도 먼저했다.

노 당선자가 서 대표에게 전화를 건 시간은 17일 오전 9시40분. 당시 서 대표는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서 대표는 이날 오전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영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서 대표가 대선 때의 피로가 쌓여서 오전에 건강검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경 이낙연 대변인은 인수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노 당선자의 전화 사실을 알리며 "서 대표에게 자신이 한나라당 당사를 예방해도 좋고, 국회 귀빈식당 등에서 만나 뵈어도 좋다며 좀 뵙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밝힌 '검찰의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 의지'에 대해 "이런 내용을 (전화로) 서 대표에게 말씀드리지는 못했다"면서 "노 당선자는 뵙고 싶다는 말씀을 했고, 서 대표는 사정이 이러하니 조금 시간을 주십시오 하는 데까지만 말씀을 나눴다"고 전했다.

서 대표측은 노 당선자로부터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며 "노 당선자 쪽에서 발표한 내용 그대로"라고 말했다. 박종희 한나라당 대변인에 의하면 서 대표의 보좌관이 노 당선자로부터 걸려온 핸드폰을 서 대표에게 넘기자 이런 대화가 오갔다.

노무현 당선자 "노무현입니다."
서청원 대표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노무현 당선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서청원 대표 "아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월요일까지 병원에 있을 것 같고 나중에 퇴원한 이후에 봅시다." / 이병한 최경준

'노무현-서청원 면담' 성사될까

노 당선자의 전격적인 입장 표명은 무엇보다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는 면에서 향후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과의 관계 설정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줄기차게 현 정부가 가기 전 '7대 의혹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7대 의혹사건은 (1) 4000억원 대북 지원설 (2) 불법도청 의혹 (3) 공적자금 비리 의혹 (4)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의혹 (5)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의혹 (6) 안정남 전 국세청장 비리 의혹 (7) 조풍언 게이트 등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7대 의혹사건 중에 △4000억원 대북 지원설 △불법도청 의혹 △공적자금 비리 의혹을 따로 떼어 '3대 의혹사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 및 특검제를 요구하는 등 강도 높은 공세를 해왔다.

아직 노 당선자가 공정한 수사 의지를 표명하기 전인 17일 오전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이규택 원내총무는 "새 정부가 깨끗하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4000억원 불법지원 등 3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3대 의혹을 청산하지 않으면 노무현 정권이 순탄하게 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 총무는 "국민적 요구 사항인 대북 4000억원 불법지원에 대한 특검제는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영일 사무총장은 "우리가 제시한 7대 의혹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3대 의혹 정도면 민주당이 부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강공 드리이브 속에서 노 당선자가 공정한 수사 의지 표명하고 나오자 한나라당은 당황하면서도 의중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허를 찔렸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또한 서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그것을 20분만에 언론에 발표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노 당선자측의 발표 직후 박종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렇게 대화 제의하는 게 바로 구태정치"라며 "대화하자고 제의하면 우리도 논의해보고 최종 합의했을 때 발표해야지, 대화 제의했다고 전화 통화한 것을 발표하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서 대표는 병원에서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노 당선자의 대화제의를 무조건 거절할 명분은 적어 보인다. 노 당선자측이 한나라당의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한 진실규명' 의지를 표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여전히 '검찰을 통한 조사'(노 당선자)와 '국정조사-특검제'(한나라당)라는 입장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상황이 한나라당측의 주장대로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번 '노-서 회담'이 향후 새 정부와 한나라당과의 관계 설정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노 당선자로서는 한나라당에 협력의 손짓을 보낸 것인데, 이를 무조건 뿌리치고 만나지조차 않는다면 '처음부터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박 대변인은 이번 전화 회담 제의에 대해 "밤새도록 술을 마셔서 아침에 속이 쓰린 사람에게 해장술을 먹으러 가자고 손을 내미는 꼴"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노 당선자의 회담 제의는 한나라당에게 '받기도 좀 그렇고 안 받기는 더욱 그런' 상황이다.

의혹사건 진실규명, 돌파구 마련될까

노 당선자의 검찰의 공정한 수사 의지 표명은 일단 검찰에 당선자의 확고한 의중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의 "4000억원 대북지원설은 현 정권에서 털고 가야 한다"는 발언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과거 정부와 분명한 선긋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 당선자측의 입장은 '검찰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낙연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4000억에 대한 검찰수사를 원하면 노 당선자가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동의 여부의 문제가 아니고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단 검찰의 행보는 한결 가벼워지고 빨라질 전망이다. 비록 노 당선자가 특정 사건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고려없는 공정한 수사를 촉구한 점, 취임 전까지 수사가 안되면 취임 후에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 자칫 잘못할 경우 특검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 여러 여건상 검찰로서는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고,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하나같이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초대형급이라는 점에서 진실규명에 대한 회의론도 크다.

시민사회단체 "특별검사제로 털고 가자"

이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특별검사제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4000억 대북 지원설, 도청문제 등 지금까지 제기됐던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은 그냥 정치공세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지만 검찰이 이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또한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써먹고 선거가 끝나면 폐기처분 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하 처장은 "결국 특검제로 풀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를 할 수도 있다"면서 "사실관계를 명확해 해야만, 만약 거짓이라면 무책임한 정치공방이 사라지고, 만약 사실이라면 정치개혁의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한나라당이 제기한 7대 의혹만이 아니라 안풍, 세풍 등 제대로 풀리지 않은 권력형 비리들이 산재해 있다"면서 "상설적 특검이나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조기에 만들어 권력형 비리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병직 변호사는 "최근 회자되고 있는 문제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제기된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 새 정부 출범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노 정권이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라며 "후자일 경우 '과거 정부에 대한 청산'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정치적 숙청으로 비쳐질 것이고 국민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가급적이면 이번 정부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각오로 조사를 하거나 설명을 해야 한다"며 "아니면 특별검사 도입 등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라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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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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