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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유진오 박사의 헌법강의 시간 동안 들은 말 가운데 지금도 늘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는 분명 사회주의는 영원한 진리라고 설파했었다. 독일 와이말 헌법의 정신을 따라 부의 균형있는 배분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헌법에 경제조항이 따로 들어갔다며 그 점을 강조했었다.

1955년이니 6.25동란이 휴전으로 끝난 다음 다음 해이다. 대한민국 최초 헌법의 기안자이고 당시 고려대학교 총장이던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내가 해석하기로는, 그는 공산주의의 해악은 노동자 농민에 의한 계급 혁명과 독재이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이 ‘인민’이라는 좋은 말을 공산주의들에게 빼았겼다고 아쉬어 했었다. 지난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이 빨간 유니폼을 입고 서울 거리를 누볐던 ‘빨간색’ 신드롬이 생각난다.

영국이나 내가 사는 호주는 자본주의이면서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하는 국가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물과 기름이 아니라는 애기가 된다. 외국 언론들이 공산주의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 (socialist state)로 지칭하는 일이 흔하지만, 이는 개념을 헐렁하게 쓰는 서방 저널리즘의 관례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최근 뉴욕타임즈 보도에 인용된 전경련 김석중 상무 발언이 왜 그렇게 큰 물의를 일으키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김 상무가 정말 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그 발언을 부인하고 뉴욕타임즈에까지 항의를 하게 되고, 또 전경련이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공식 사과까지 해야 하는 지 말이다.

그의 발언은 개인의 명예훼손과도 관게가 없는 공공분야 정책에 대한 의견일 뿐이다. 더욱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내세우는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가 빈부격차의 해소인데, 이 목표를 제대로 실현하자면 더 많은 사회주의 요소의 도입은 필연이다.

현 김대중 정권 아래 과거 같으면 이적행위로 도마에 오를 발언들이 난무해왔다. 모두 언론 자유의 혜택이 아니던가. 김 상무는 왜 같은 언론자유의 헤택을 못누리는 것인가? 더욱 노무현 당선자는 토론문화의 진작을 옹호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국은 아무리 봐도 일관성과 예정성이 없고, 매사가 힘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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