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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안타까운 두 명의 대학생 소식이 들린다. 3년간의 수배 생활 끝에 결국 심장병으로 쓰러져 입원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윤용조씨, 그리고 지난 8일 국민대 앞에서 연행된 10기 한총련 직무권한대행 윤경회씨에 대한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윤용조씨는 99년 인문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수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단과대 학생회장 이상이면 특별히 '탈퇴'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자동적으로 한총련 대의원에 편입되는 규정으로 인해 그는 한총련 대의원이 되었고, 동시에 '수배자'목록에 포함되었다. 오랜 수배 생활 중에서도 학내 운동을 계속하며 2002년에는 총학생회장의 위치에까지 올랐으나, 병마의 공격 앞에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이다.

윤경회씨는 2002년도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이다. 작년 4월말 10기 한총련 의장인 김형주씨가 연행되면서 그는 직무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수배의 손길로부터 그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결국 '국가보안법 및 불법적인 북측과의 회합 시도'라는 죄목으로 수배되던 중 신호대기에 걸린 택시 안에서 연행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발생시킨 것인가. 알려진 대로 한총련은 지난 97년 '이적단체'로 공식적 낙인을 받았다.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통일 방식을 추종하고 조선노동당을 비롯한 북한의 권력 체계에 찬미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로 인해 이후 한총련 대의원이 된 모든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은 '이적단체에 가입했다는'이유로 수배 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다.

지난 1993년 한총련이 출범한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처벌받은 한총련 대의원 학생들은 1268명(2002년 10월 기준)에 달하며, 작년만 해도 60명을 넘는 학생들이 검거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현상을 가능케 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는 이미 13년전인 1990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한정합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국가의 안전 및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줄 위험성이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되도록 이 법률을 축소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윤용조씨, 윤경회씨, 또 기타 한총련 대의원으로 있는 각 대학의 학생회장들은 '국가의 안전 및 존립'을 위태롭게 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심각한 위해를 주고 있는가?

오히려 지금의 공권력이야말로 김영삼 정권 말기에 사회 기강을 어떻게든 다잡으려던 당시 정부가 과도하게 학생운동을 탄압하며 만들어 낸 '이적판정'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되려 확대하여 적용함으로써 '학생 개개인의 안전 및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사상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보장받아야 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심각한 위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총련 수배자들이 제대로 집에도 가지 못하며 학교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하는 삶을 살고 있음은 <한겨레21> <유뉴스> 등 일부 언론의 노력에 의해 이미 자명히 밝혀졌다. 잠 잘 곳도 마땅치 않아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동아리방이나 학생회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모든 끼니를 학교 내에서 해결하며 부득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할 경우 '변장'급의 위장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현실이야말로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이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는 실로 자명하다.

작년 10월, 광주지법(재판장 선재승 부장판사)은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한총련의 친북성도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10기 한총련 의장인 김형주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북한에 대한 시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직의 강령과 활동 방향을 '남북공동선언'으로 조명하고 연방제 통일 강령도 삭제한 한총련의 혁신 노력은 법정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제 한총련 합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범이었던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한총련 합법화를 이뤄내지 못한 채 임기를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새 정부의 과제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차기 대통령이, 실체가 불분명한 국가보안법에 의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인권마저도 침해받고 있는 한총련 대의원들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대학생들의 대표'를 몇년째 수배자로 내몰고 있는 어이없는 현실을 꼭 바꿔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윤용조씨가 작성한 <노무현 당선자께 드리는 글>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국민의 이름을 도용하여 '정치적 안정'과 '국민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보안법에 칼 하나 대지 못한 현 정부의 우를 되풀이하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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