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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종교 관련 글을 쓰는 소치를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관용을 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합장'의 아름다움을 더욱 추구하며 살고 싶은 새해 소망을 피력하고자 하니 부분적으로는 종교가 관련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지난해 말에 쓴 <종교 '합장(合掌)'의 공통점과 의미>를 보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평일미사를 저녁에 지내는 화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오후 4시경 고장의 명산, 백화산을 오른다. 전례봉사 당번이 주일 저녁미사에 걸린 바람에 등산을 하지 못하는 주일도 더러 있지만….

백화산에 오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을 갖곤 한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바쁘게 일하는 이 시간에 한가로이 산을 오르다니…. 내 휘늘어진 팔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산에서 야호! 소리를 지르는 일이 괜히 저어되는 때도 있다.

그래도 실속이야 있든 없든 내 몫의 일에 충실하였으니 건강도 생각해야 한다. 평생 동안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할 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지경이니, 아직 어린 내 자식들도 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으며 사는 사람이니 기도도 해야 한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도 즐거운 일이다. 내게 있어 백화산 등산 시간은 곧 기도를 하는 시간이다. 산을 오르면서 묵주기도를 10단, 내려오면서 10단, 도합 20단은 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참 은혜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재작년 11월에 쓴 <산을 오르며 기도를 하며>라는 글에서 일차 소개를 한 사항이지만 (아, 그때가 벌써 재작년이라니!) 내 묵주기도의 지향들을 다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제1단, 세계 교회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제2단,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제3단, 태안교회공동체와 지역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제4단, 선친 지동환 님과 모든 조상 친척 친지 및 모든 은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제5단, 부모 형제 친척 친지들과 모든 은인들의 가정을 위하여. 제6단, 우리 가정과 가족공동체를 위하여. 제7단, 어머니의 건강 회복과 만수무강을 위하여. 제8단,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제9단, 세상의 온갖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든 불우한 이들을 위하여. 제10단, 내 건강과 근면 성실과 내 문학의 성취를 위하여.

마지막 10단은 산의 정상에 도달할 즈음에 마치게 되거나, 산의 정상을 거닐며 하기도 한다. 산의 정상에서 묵주기도 10단을 마치게 되는 것이 매번 기분 좋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산의 정상에서 맨손체조와 가벼운 운동을 하고 내려가는데, 내려가면서 바치는 묵주기도 10단은 우리 태안교회공동체의 '새 성전 건립을 위한 묵주기도 200만단 봉헌 운동' 동참 기도이다. '기도 실적'과 관련되는 기도이기도 해서, 10단 이상을 하는 날도 많다.

백화산 중턱 너머에는 '태을암'이라는 아담한 사찰이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보물 제432호인 '태안마애삼존불입상'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보려고 일삼아 먼길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

백화산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태을암 사찰 앞으로 이어진 길을 택한다. 그리고 사찰의 대웅전 앞을 지날 때마다 매번 모자를 벗고 깊이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한다. 묵주기도를 하는 중에, 손에 묵주를 쥔 채로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내 모습이 하루는 아들녀석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들녀석이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천주교 신자인 아빠가 부처님헌티 절을 허면 하느님 기분이 헐! 허지 않을까요?"
요즘 아이들이 즐겨 쓰는 '헐!'이라는 말이 '헉!'이라는 소리의 변형이리라는 것을 느끼며 나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느님께서 왜 헉! 허신다니? 하느님은 이런 일에 헐!두, 헉!두 안 허셔, 임마."
"진짜요?"

"하느님을 믿는 내가 절 앞을 지나면서 부처님께 인사를 혔다구 하느님께서 헐! 허신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녀. 그건 사람들이 지들 멋대루 만든 하느님이지, 진짜 하느님은 그러시지를 않는다구."
"증말 그럴라나요?"

"하느님은 내가 부처님께 인사를 헌 것 때문에 기분이 더 좋으셔, 지금. 내가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 앞을 가로질러 가면서 인사를 허지 않는다면, 나의 그 무례 때문에 하느님은 기분이 헐! 허실 겨. 그러니께 나는 부처님뿐만 아니라 내가 믿는 우리 하느님 아버지의 기분두 좋게 헤 드릴라구 부처님께 예의를 지킨 겨."
"그래두 좀 어려운 말인디요."

"쉽게 말해서 우리 하느님은 우리네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째째허구 옹졸허신 분이 아니시라는 얘기여. 인간들이 쉽게 편을 갈라서 서로 미워허구 헐뜯구 싸우는 것을 싫어허셔. 나처럼 이렇게 부처님께 인사두 허면서, 서루서루 존중허면서 사이좋게 사시는 것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시지."
"그럴 것두 같네요. 하느님은 마음이 아주 넓고 크신 분일 테니께요."

"그래서 하느님은 이 세상을 당신의 마음 안에 다 담구 계시는 겨. 하느님을 믿구 사는 내가 절 앞을 지나면서 부처님께 절을 허는 걸 보구 하느님께 노여움을 안겨 드리는 일이라구 생각허는 사람들두 물론 있겄지먼, 그건 하느님을 옹졸허구 째째헌 분으루 맨들구 싶어 안달을 허는 사람들의 짓이여. 옹졸한 사람의 눈으루 하느님의 마음을 지멋대루 재단허는 사람은, 아무리 열성적으루 하느님 아버지를 외치며 사는 사람일지라두 결코 옳음 사람이 아니여. 하느님을 피곤허게 헐뿐인 사람이지. 무슨 말인지, 아빠 말 알어듣겄냐?"

아들녀석은 잘 알아들은 기색으로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들녀석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들녀석은 학교에 가서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부처님께 절을 하는 아빠에 관한 얘기를 아이들에게 한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연유로 또 한 차례 종교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내 아들녀석이 그런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야기는 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녀석의 학급에도 종교를 가진 가정의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또 그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이 내게 이상한 말을 했다.
"우리 반에 교회 다니는 집 애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한 애가 나쁜 말을 해서 싸웠어요. 내가 한 방 갈겨줄라다가 말었지요."

"그 애가 무슨 나쁜 말을 혔는디?"
"걔네 아빠가 그러더래요. 아빠가 지옥에 갈 거라구."
"뭐?"
"한결이, 너 잘 들어.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느이 아빠는 지옥에 갈 거래. 쳇, 그러지 않겠어요."
"우와! 걔네 아빠 참 대단허다인. 자기 맘대루 나를 지옥에 보낼 수두 있으니…."

나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얘기였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냉큼 대책이 서지 않았지만, 나는 잠시 후에 아들녀석에게 물었다.

"넌 워떻게 생각허니? 열심히 하느님을 믿구, 좋은 일 허면서 착허게 살려구 노력허는 아빠가 산에 가서 부처님 앞을 지날 때 부처님께 인사를 허는 것 때미, 아빠가 죽은 다음에 지옥으루 갈 것 같니?"
"아뇨."
아들녀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리질을 했다.

나는 녀석에게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녀석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아빠가 지옥에 가지 않으리라는 녀석의 그 믿음을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키워주고 확인시켜 주는 일은 나의 전체적인 삶에 부과되어 있는 내 몫이고, 그것을 근거로 좀더 명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세우는 일은 녀석의 몫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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