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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엄마와 딸이다. 마흔살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하는 늙은 엄마. 딸의 옷이 품위없고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찢어버리고, 딸은 화를 내며 엄마의 머리를 잡아 뜯는다. 그리고는 둘 다 눈물을 흘리며 화해한다. 그러나 엄마가 늦게 귀가한 딸의 뺨을 또 때리면 딸도 맞받아 엄마의 뺨을 친다.

음대 교수이며 피아니스트인 딸 에리카는 엄마의 감시와 간섭에 익숙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억압은 성적 이상 행동으로 나타난다. 섹스숍에 들러 포르노를 보면서 누군가의 정액이 묻은 휴지의 냄새를 맡고, 자동차 극장에서 연인들의 섹스를 훔쳐보다가 오줌을 누면서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성기에 면도칼을 대 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가르칠 때는 더없이 냉정하고 엄격하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모멸감을 줄 때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이런 에리카 앞에 멋진 청년 월터 클레메가 나타난다. 사랑을 고백하는 제자에게 자기 방식의 사랑만을 요구하는 에리카. 두 사람 모두 혼란스럽다. 정말 사랑일까.

결국 자기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대로 클레메에게 폭행을 당하고 상처를 입는 에리카.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이미 늦었다. 클레메의 폭력 아래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는 에리카는 나무 토막이다. 뻣뻣한 막대기일 뿐이다. 클레메가 애를 쓰며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말하지만 공허하다. 이들의 사랑은 여기까지일까.

침대에 나란히 누운 모녀. 상처입은 에리카는 엄마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입을 맞추고 끝내는 짐승같은 울음을 토해낸다. 엄마는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라고 말할 뿐이다. 클레메를 겨눴던 칼날은 결국 에리카 자신에게로 향하고, 에리카는 홀로 거리로 나선다.

에리카와 제자들의 레슨 시간을 보면 피아노 수련 과정이 얼마나 혹독한 지 짐작할 수 있다. 에리카 엄마 역시 늘 딸을 훈련시키며 말했었다. "연주 준비 잘해라. 청중 속에 누가 앉아 있을지 모르잖니."

제자 안나의 엄마가 "우리는 안나를 위해 모두 희생했어요."하니까 에리카는 차갑게 답한다. "안나가 모두를 위해 희생했겠지요." 에리카 엄마 역시 딸을 위한 희생이라 강변하지만, 딸이 원한 것이 진정 그것이었을까.

엄격한 음대 교수의 내면에 숨겨진 이상 행동, 피아노를 다루듯 인간도 자신의 뜻대로 다루려드는 욕망. 이중성이라 이름 붙여도 되겠고 미성숙함이라 불러도 되겠다. 이 뒤틀림 뒤에는 에리카의 엄마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방법도 잘 아는 법.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에리카는 나이 마흔이지만 아직 갓난 아기일 뿐이다. 엄마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에리카 역시 그 엄마의 울타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 속 주름진 엄마의 얼굴은 나이들어가면서 욕망이 말끔히 씻겨나간 흔적도, 품위도, 지혜도, 아름다움도 없다. 클레메의 대사처럼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닌 것, 같이 하는 것이다.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아니면 자신의 아름다운 노년의 얼굴을 위해서라도 진짜 사랑이 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랑 역시 해 본 사람이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La Pianiste / 감독 미하엘 하네케 / 출연 이자벨 위페르, 브누아 마지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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