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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첫날 새벽이다.

어느덧 개천마리네집에(내 홈피) 글을 쓰기 시작한지 햇수로 3년이 되었고, 기간으로 따진다면 1년 반이 지났다. 지금까지 써온 잡문을 보면 그동안 내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우연적이다. 인터넷을 시작하면서 여러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에 재미를 붙여 결국 문예창작 대학원에 들어갔으며, 홈페이지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동기를 우연으로 돌리기엔 무언가 찜찜하다. 글은 써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이 있을 때 비로소 써지고 쓰게된다. 세상을 향해 뱉어내고 토해내고 싶은 마음 속 깊은 울림과 사연이 없으면 글도 없다.

가족을 위해서 무엇하나 잘 한 것 없고, 자식은 네명이나 낳아놓고 이혼해 가장파탄과 결손가정은 무엇이고 그 폐단이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나를 포함한 우리 형제에게 좋은 가르침도 없었으며,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고사하고 채무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 그저 고마운 내 아버지.

금전적 유산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간절히 원했건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다는 듯이 한푼 남기지 않고, 대신 막내아들에게 심하게 작은 키와 심하게 숭덩숭덩 빠지는 대머리 유전을 물려주어 20대말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넓은 이마를 물려주신 내 아버지.

술을 너무도 좋아해 아침 식사전 새벽부터 술 한잔 들이키고서야 하루를 시작하고, 노름은 마니아 수준이라 어린 막내아들 산골 집에 일주일 동안 홀로 남겨두고 화투판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내 아버지.

자식 여럿 달린 여자와 재혼해 내게 두 번째 엄마와 갑자기 불어난 누나들을 선사하구선 1년도 안되 헤어지던 그날 밤 막내아들 부둥켜 안고 엉엉 소리내어 우시던 내 아버지.

오랜 세월 고물 오토바이 타고 온 시골마을 질주 하시고, 운전면허 시험은 보는 족족 떨어져 결국 고심끝에 장만한 고급 승용차는 무면허로 타셨으며, 막내아들 옆좌석에 앉히고 베스트드라이버인척 도심을 질주 했으나 그 막내아들 그야말로 공포에 사로잡혀 심하게 떨고 있었던 사실을 몰랐던 내 아버지.

심장이 안좋으니 입원하라는 의사말을 무시하다 결국,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해 9월초 아무도 없는 산골집에서 홀로 고통에 몸부림 치시다 하늘나라로 냉정하게 떠나신 내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막내아들인 나. 난 어릴적부터 아버지가 좋았다. 친엄마, 누나, 형 모두 아버지를 떠났어도, 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화투판을 떠나지 못해 무시무시한 산골에 어린 나를 홀로 남겨 두는 날이 많아도 아버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런 아버지가 좋았고, 지금도 좋다.

산골마을에서 아버지를 욕하는 아무도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아쉬운 말 했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보신탕집을 했던 우리집에 산골마을 사람들이 자주와서 외상술을 마셨고, 아버지는 언제나 그들을 유쾌하게 대하셨다.

그런 아버지 덕에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공짜로 술을 마셨고, 아버지가 그들에게 돈을 받은 모습은 본적도, 받았다는 소리를 들은적도 없다. 아마도 그 외상값을 다 받으면 오늘날 서울 강남에 적지않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되시는 분은 친일파로 활동해 백억대의 재력가였음에도 아버지는 그 어떤 재산을 물려받지 않으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막내아들을 당신의 고물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워 산골을 질주하며 세상의 아름다움과 누군가의 등에 기대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바보같이 착한 분이셨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아버지는 비루했지만 착하셨다. 아버지에 대해서 난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화려하지만 돼먹지 못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기에 아버지의 삶이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날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얍삽하고 계산에 빠른 사람은 넘치고 넘쳐 인정받고, 멍청하리만큼 착한 사람은 바보 취급하고 무시하는 세상이기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난 그런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고, 세상에 토해내고 싶었다. 아마도 난 아버지 때문에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점점 아버지 같은 분은 만나기 어려워진다. 아버지보다 많이 배우고, 책도 많이 읽은 나는 아버지보다 착하지 못하다.

어느덧 서른 즈음에 접어든 지금,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처럼 착하게 살아가고 싶다. 얍삽하고 계산에 빨라 부와 명예를 누리기 보다는 멍청하게 착해 조금 손해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길인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 삶을 닮은 질척하고 착한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버지 또 한해가 밝아왔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곧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이 세상에 나올겁니다. 기대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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