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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올 한 해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나라 안팎이 그 흔한 상투적인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나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고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을 펴냈고, 무엇보다 그 지긋지긋한 흡연의 마굴에서 벗어났다.

37년 동안 그 끈질긴 니코틴에 중독이 되어 흡연의 굴레에 갇혀 있다가, 지난 3월 2일 개학날부터 독한 마음으로 과감히 빠져나와 마침내 담배로부터 해방된 것은 올해의 가장 큰 소득이다.

고인이 된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무자비하게 학교를 금연지대로 선포한 유인종 서울특별시 교육감에게 큰 절 올리며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에 산다”는 말처럼 이제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이맘 때가 되면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 더 그립고 무척 더 보고 싶어진다.

특히 교실에서 만났던 제자들이 모두 보고 싶지만, 오늘따라 갑자기 신부님이 되었을 그 녀석과 그가 쫓아다녔던 한 여학생이 폭포수처럼 보고 싶다.

▲ 제주 여미지의 수련
ⓒ 박도
우정의 힘은 위대하다. 한 친구를 죽음에로 이끌 수도, 죽음에서 살릴 수도 있다. 고뇌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낼 수도 있다. 여자 친구의 한 마디 격려, 남자 친구의 한 마디 조언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보다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한 장애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한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으로서 한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목발을 의지해서 다녔다.

그에게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책가방을 들어주고 불편함을 보살펴주는 남녀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 장애 학생을 대할 때마다 혹시 자신의 지체 장애를 비관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는 염려와는 달리 오히려 다른 학생 못지 않게 표정이 무척 밝았다.

어느날 특활 시간에 자기가 쓴 작품을 발표할 때 그는 ‘우정’ 이란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의 제재는 자기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보살펴 주었던 한 남자 친구 이야기였다.

그 남학생은 신부님이 되기 위해 그때 이미 우리 학교를 떠났다. 그는 시골에서 서울로 온지 얼마 안 된 경상도 사투리 투성이의 순박한 학생으로 우리 학교의 많은 여학생들을 제쳐 두고 장애 여학생의 향도등이 되고 정신적인 반려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장애 여학생이 그처럼 밝게 생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그 남자 친구의 우정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들에게 사랑이란 낱말을 쓰고 싶지 않다. 사랑이란 낱말은 그들의 우정에 어쩌면 불결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은 신부님이 되고자 신부 예비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예비 신부가 남긴 훈훈한 우정은 장애 여학생의 가슴 속 깊이 고이고이 남아 있었다.

아마 장애 여학생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교 시절 교실에서 맺었던 그 우정을 보석처럼 지니면서 살아가리라.

그들이 모두 떠난지 벌써 20여년, 나는 그들의 뒷이야기를 여태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 기억해도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우정화(友情畵)로 내 살아 생전에 그들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 새해를 맞이하여 독자 여러분에게 이 꽃을 바칩니다. (한국전쟁 당시 경무대였던 전 경남도지사 공관의 철쭉)
ⓒ 박도
내일이면 새해다. <설날 아침에>라는 김종길 선생의 시 한 구절을 독자 여러분께 바치면서 섣달 그믐날 묵은 세배를 드립니다.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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