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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한 선비, 지훈 조동탁 선생
ⓒ 박도
청록파 시인 지훈(芝薰) 조동탁 선생은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48세에 이슬처럼 떠났다. 하지만 짧은 생애임에도 주옥같은 글과 제자들의 마음속에‘참 선비 상’을 남겼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중략 -


고등학교 때〈승무〉를 배우면서 경이로움에 빠졌다. 이렇게 우리말이 아름다울 수 있으랴. 시선(詩仙)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시를 토해낼 수 있으랴. 마치 그윽한 한 편의 승무를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그 때 조지훈 선생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런 중 내가 선생을 처음 뵌 것은 고2 가을이었다.

그 무렵 학교 문예반에서 문학 특강을 열었는데 시인 조지훈, 소설가 오영수 선생을 모셨다. 그때 지훈 선생은〈승무〉시작 과정을 말씀했다.

선생은 이 한 편을 쓰기 위해 2년여 시유(詩?: 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앓는 병)를 앓으면서 최승희 춤과 김은호 화백의〈승무도〉를 감상하고, 수원 용주사로 달려가서 달밤에 승무를 보고서도 완성치 못하다가 마침내 구황실 아악부의〈영산회상〉가락을 듣고야 한 편이 시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때 선생의 훤칠한 용모와 시원한 음성, 진지한 모습이 굵은 테 안경과 함께 또렷이 남아 있다. 학(鶴)처럼 우아하고 고고(孤高)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지훈 선생을 자주 뵐 수 있었다. 구자균 선생 묘소 참배 겸 신입생 환영회 때, 지훈 선생이 먼저 막걸리 한 바가지를 들이킨 다음 신입생 모두에게 돌렸다.

나는 그 바가지의 막걸리를 호기 있게 마신 후, 눈을 떠보니 서울로 돌아오는 학교 버스 안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선생의 멋들어진 농무(農舞) 춤사위를 평생에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선생이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한 까닭 중에 하나도 자주 제자들과 밤새워 마신 술 탓이라고 할 만큼 당신은 술과 제자를 좋아하였다.

1학년 때는 교양 국어와 작문을 맡았다. 강의 시간 중 때때로 당신 시집을 펼치시고는 굵은 저음으로 낭독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


선생 강의는 선사(禪師)의 설법이었다. 동서고금의 이야기가 산만한 듯하면서도 조리가 있고, 우스개 소리임에도 해학과 지혜로움이 있었다. 음담패설도 자주 등장했다.

“내 호가 처음에는 지타(芝陀)였지. 마침 여학교 훈장(필자 주: 경기여고)으로 갔는데, 내 호를 말했더니 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더군. ‘조지타’라는 발음이 걔네들에게 다른 무엇을 연상케 했나 봐. 그래 할 수 없이 지훈으로 고쳤어.”

옛날에 장님 영감과 벙어리 할멈이 부부로 살았는데, 마침 이웃집에서 불이 났어. 할멈이 화들짝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영감이 “무슨 화급한 일이냐?”라고 물었어.

할멈은 영감의 두 손으로 자기 젖무덤을 만지게 한 후, 가슴에다 사람 인(人) 자를 그었대. 그러자 영감이 “불났군?”하면서 “뉘 집이야?”라고 다급하게 물었어.

그러자 할멈은 영감에게 입맞춤을 했대. 그러자 영감은 “뭐, 여(呂)씨 집이!”라고 하면서 놀란 후, “그래, 어느 정도 탔나?”라고 물었어. 할멈은 영감의 남근(男根)을 꽉 잡았대. 그러자 영감은 “아이고, 다 타고 기둥만 남았군.”했다더군.

“달밤에 개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글자는?”
“그럴 ‘연(然)’자입니다.”
“나무 위에서 ‘또 또 또’ 나팔부는 글자는?”
“뽕나무 ‘상(桑)’자입니다.”

“그럼, 사람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글자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말이야 한글 ‘스’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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