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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푼이와 덕순이는 해마다 쇠기러기처럼 우리 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창원공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쇠기러기도 팔푼이와 덕순이도 더이상 우리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
팔푼이와 덕순이는 해마다 쇠기러기처럼 우리 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창원공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쇠기러기도 팔푼이와 덕순이도 더이상 우리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 ⓒ 경상남도
"이히히히~"
"불 딜러라~ 불 딜러라 딜러~"
"이히히히~ 이히히히~"
"태백산캉 지리산캉에 사는 호랑이 두 마리 잡아주모 내로(나를) 용서해주나?"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는 늘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두 개 있다. 그 이름들은 내가 요즈음도 딸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때 가끔 써먹는 이름들이기도 하다. 팔푼이와 덕순이, 덕순이와 팔푼이... 팔푼이와 덕순이는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마을 주변을 쇠기러기처럼 맴돌았다. 늘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들을 주절주절 내뱉으며.

팔푼이와 덕순이는 둘 다 정신병자였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정신병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잊을 만하면 우리 마을로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조차도 그저 허허, 하고 헛웃음만 내뱉을 뿐, 팔푼이와 덕순이에 대해서 거울처럼 환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팔푼이와 덕순이의 나이는 둘 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팔푼이는 남자였고, 덕순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 둘은 무슨 부부 사이라거나 형제지간이라거나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또한 동시에 우리 마을에 나타난 적은 몇 번 없었다. 팔푼이와 덕순이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불쑥 각설이처럼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가 쇠기러기처럼 그렇게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그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덕지덕지 걸친 채.

우리는 팔푼이와 덕순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사는지도 잘 몰랐다. 둘의 닮은 점은 그렇게 불쑥 우리 마을에 제각각 나타나 찬밥과 김장김치를 얻어,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볼이 터지도록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또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날이 저물면 팔푼이는 주로 들판에 쌓아둔 짚더미 속에 들어가 잤고, 덕순이는 마당뫼에 있는 고인돌 아래서 버려진 담요나 가마니를 잔뜩 덮고 잤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아~ 절씨구씨구 들어간다아~ 작년에 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와아아~ 또 팔푼이가 나타났다아~"
"기차에 깔려 죽으모 우짤라꼬 저라고 있노?"
"그래도 저기 정신이 조금은 있는 모양인기라. 기차 오는 소리만 들맀다카모 놀란 토끼맨치로 산속으로 마구 달아난다카이."

팔푼이가 주로 돌아다니는 곳은 철길 주변이었다. 그 철길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상남역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진해, 서로는 마산을 이어주는 십이열차가 다니는 철길이었다. 또한 팔푼이는 예전에 누구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나타나기만 하면 늘 그 호랑이 이야기를 고래고래 내지르며 그 철길 주변을 마구 돌아다녔다. 하지만 누구에게 호랑이를 잡아주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인지도 아무도 몰랐다.

"팔~팔~팔푼아~ 오데 갔다 오노 팔푼아~ 호랑이 잡으로 갔다 온다 팔푼아~ 잡은 호랑이는 우쨌노 팔푼아~ 엿 바까(바꿔) 묵었다 팔푼아~"
"호랑이가 아니라 산토끼 한마리라도 잡아오모 용서해준다."
"저 넘의 손이 큰 일을 낼라꼬~ 누가 함부로 그런 말을 해라 카더노. 미친넘이라꼬 함부로 약속했다가 잘못하모 니가 그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 말이다."

우리들은 팔푼이가 나타나면 멀리서 자갈을 집어던지며 그렇게 놀렸다. 하지만 팔푼이는 우리들의 그런 행동과 놀림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팔푼이를 놀리는 우리들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우리는 팔푼이를 종종 놀려먹기는 했지만 산토끼를 잡아오면 용서해준다는 식의 그런 약속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히히히~ 이히히히~"
"덕~덕~덕순아~ 오데 갔다 오노 덕순아~ 친정 갔다 온다 덕순아~ 아(아기) 낳고 오나 덕순아~ 낳은 아는 우쨌노 덕순아~ 밥하고 바까 묵었다 덕순아~"

덕순이가 주로 돌아다니는 곳은 마당뫼 근처였다. 덕순이는 몸집이 무척 컸다. 언뜻 보면 김장독이 걸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옷을 너무나 많이 껴입고 있었다. 대충 살펴보아도 스무 벌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덕순이가 찬밥과 김장김치를 볼 터지게 먹는 것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하루는 나도 슬쩍 집으로 돌아와 덕순이처럼 그렇게 김장김치를 쭈욱쭉 찢어 찬밥에 얹어 먹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덕순이가 배가 동산만하게 부른 채 우리 마을을 찾아들었다. 첫눈에 바라보아도 아기를 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누구의 씨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여기저기 마구 싸돌아다니다가 부랑배들에게 당한 게 분명했다. 그날, 우리 마을에서는 덕순이 때문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저걸 우짠다 말이고. 다른 마을로 후두카(쫓아) 보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네 난감해. 하필 저런 때 저기 우리 마을로 찾아들 거는 또 뭐꼬."
"우짜것노. 일단은 우리가 덕순이 아를 받아주야 할끼 아이가. 저대로 놔두모 저기 아로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다카이. 그라모 또 우짤끼고."

덕순이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덕순이는 정신이 영 달아난 것은 아니었다. 덕순이에게는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냇가에서 살얼음을 깨고 세수를 한 뒤, 입술을 제법 빨갛게 칠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어머니들에게 인사를 한 뒤 더듬더듬 말을 걸기도 했다.

덕순이는 그렇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의 도움으로 튼튼한 사내아기를 무사히 낳았다. 하지만 그 아기를 키우는 것도 문제였다. 또 그 아기가 정상적인 아기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덕순이의 그 통통한 젖꼭지를 힘차게 빨고, 제법 세차게 우는 것으로 봐서는 큰 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덕순이에게 그 아기를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덕순이가 그 아기를 품에 꼬옥 안은 채 한번도 떼놓지를 않았다. 마을 어머니들이 아기에게 조금 다가가기만 해도 순식간에 눈을 부라리며 벽을 향해 홱 돌아앉았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뒤부터 덕순이는 정신이 제법 말짱해진 것만 같았다. 맘마, 하면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덕순이를 바라보면 아주 정상적인 산모처럼 보였다.

저무는 겨울강을 바라보면 늘 떠오르는 팔푼이와 덕순이
저무는 겨울강을 바라보면 늘 떠오르는 팔푼이와 덕순이 ⓒ 경상남도
"니 고향이 오데고?"
"북면입니더."
"북면 오데?"
"마금산 신촌리 아입니꺼."
"이 아는 누구 아고?"
"내 아 아인교."
"내 말은 누구 씨냐 이 말이다"
"???"

그렇게 우리 마을에서 사내아기를 낳은 덕순이는 거의 1년간 우리 마을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또 그 동안은 마을 어머니들과 곧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덕순이에게 방을 내주고 먹거리를 나눠주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그해 겨울, 덕순이는 다시 헛소리를 주절대기 시작하더니 아기만 달랑 남겨두고 또 쇠기러기처럼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아기의 이름이 무엇이며, 누구네 집의 아들이 되어 성장했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실만은 밝힐 수가 없다. 또한 그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아직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지금도 그 부모님을 친부모님으로 모시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혹여라도 내가 실수를 하여 그 사실을 밝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큰 누를 끼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푼이는 완전한 정신병자였다. 덕순이가 그렇게 떠난 뒤, 하루는 앞산에서 해괴한 소리가 들렸다. 우워어 우워어, 하는 그 소리는 마치 새끼 잃은 여우가 새끼를 찾아 애타게 부르는 그런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도 장닭이 홰를 치기도 전인 몹시 이른 새벽에 말이다.

"각중에 새벽마다 앞산에서 나는 그 소리가 도대체 무신(무슨) 소리고?"
"나도 그기 궁금해서 어제 곡괭이를 들고 앞산에 올라갔다 아이가. 그랬더마는 갑자기 헛간에서 팔푼이가 푸다닥, 하고 튀어 나오더마는 막 산으로 달아나더라카이."
"오데 헛간 말이고?"
"오씨네 과수원 한귀퉁이에 헛간 하나 안 있더나? 거름더미 쌓아놓은 그 헛간!"
"그래서?"
"팔푼이가 산으로 막 도망을 치면서 그 짐승소리로 내더라카이."

그리고 그 소리는 며칠간 이른 새벽마다 이어졌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난 뒤부터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시끄럽다고 신고를 하는 바람에 팔푼이가 어디론가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팔푼이를 신고한 사람이 누군지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더이상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겠다. 그 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므로.

그해 겨울에 그렇게 사라진 팔푼이와 덕순이는 다시는 우리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듬해 그 이듬해 겨울에도... 그렇게 팔푼이와 덕순이가 통 나타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도 팔푼이와 덕순이가 한번쯤 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남자한테는 팔푼이, 여자한테는 덕순이란 별명까지 붙이며, 팔푼이와 덕순이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전설처럼 주고 받았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팔푼이는 빨치산 출신이었다고 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 팔푼이는 태백산과 지리산 일대를 돌아다니며 맹렬한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또 그 당시 무슨 위원장인가 하는 제법 높은 직함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리산 토벌 때 붙잡힌 팔푼이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그만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또 한동안 정신병동에 갇혀 있었는데, 아마도 팔푼이가 그 정신병동을 탈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덕순이 역시 팔푼이처럼 한국전쟁이 낳은 엄청난 피해자였다. 당시 덕순이는 미군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그것도 집단으로 말이다. 미군 일개 소대가 순식간에 덕순이를 그렇게 강간을 했으니, 덕순이의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또한 그날 이후부터 덕순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결국 덕순이는 꿈에도 원치 않았던 머리가 노란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이후 그 아기는 입양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고, 덕순이는 그때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너거들은 잘 모른다. 전쟁이 울매나 무서번 건지를..."
"인자 전쟁 끝났제?"

그랬다. 얼마 전 이 세상을 버리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전쟁이 울매나 무서번 건지를'이란 그 말씀은 아버지께서 제법 젊으실 때, 술이 거나해지면 우리 형제들에게 넋두리처럼 하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인자 전쟁 끝났제'라고 하신 그 말씀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있을 때, 우리 형제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수없이 물어보시던 말씀이었다.

"인자 전쟁 끝났제?"
"예에~"
"인자 전쟁 끝났제?"
"예."
"인자 전쟁 끝났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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