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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 400여 병원노동자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명동성당 들머리 돌계단에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 400여 병원노동자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명동성당 들머리 돌계단에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 ⓒ 석희열
한해의 세월들이 얼어붙은 12월.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려 성탄 대축일 미사준비에 한창인 명동성당. 한편에선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 병원노동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215일째 장기파업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차수련) 가톨릭중앙의료원노조 조합원 400여명은 23일 오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성탄절 전 장기파업 해결을 호소하는 철야노숙농성과 십자가 촛불시위'를 벌였다.

차가운 겨울비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명동성당 구내를 한바퀴 돌면서 진행된 이날 십자가시위에서 병원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간절한 염원을 적은 십자가를 손에 들고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느님께 간구했다.

장기파업사태의 성탄 전 해결을 촉구하며 침묵 십자가시위를 벌이고 있는 병원노동자들
장기파업사태의 성탄 전 해결을 촉구하며 침묵 십자가시위를 벌이고 있는 병원노동자들 ⓒ 석희열
이들은 행진도중 사제관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앞을 지날때면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5분간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남성모병원의 한 노조원은 "정의구현사제단, 인권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등 가톨릭에는 좋은 이름의 조직과 단체가 참 많다"면서 "하지만 그 모든 조직들이 이야기하는 '정의구현과 인권과 평화'는 가톨릭 밖에서의 일일 뿐, 가톨릭 안에서의 노동자를 위한 정의와 인권과 평화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하고 있다"고 가톨릭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장기파업사태가 종교권력의 잘못된 권위를 지키기 위해 노동탄압에 나섰다는 역사적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성탄절 전 해결을 위한 노조측의 대화 요구에 가톨릭과 의료원측이 적극 나서줄 것을 간곡히 요구한다"고 주문했다.

무슨 바람이 있었을까..한 여성조합원이 자신의 염원을 담은 십자가를 소나무에 매달고 있다
무슨 바람이 있었을까..한 여성조합원이 자신의 염원을 담은 십자가를 소나무에 매달고 있다 ⓒ 석희열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파업이 7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동안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선복귀만 주장하면서 조합원 복귀공작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의료원측은 결국 노조에 아무런 성과를 주지 않고 조합원들을 전원 복귀시키는 것이 큰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가톨릭의 진정한 승리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으면서 얻어지는 노조 무력화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고 가톨릭의료원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 정책국장은 또 "외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도 종교의 반민중적 태도로 노조와 종교와의 투쟁이 빈번했다"며 "노조는 결코 굴복하지도 깨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벌어진 출정식에서 최희선 성모병원노조 지부장 직무대행은 "노동자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어떻게 그 입으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승복하기만을 강요하는 가톨릭의 권위주의적인 이중적 태도에 우리는 분노하며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출정식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출정식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석희열
최희선 직무대행은 이어 "우리는 여전히 이번 사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며, 가톨릭이 대화에 나서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대화와 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복귀공작과 강요에는 우리는 절대로 물러서거나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3일 보건의료노조 제3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윤영규 당선자는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전국의 4만 병원노동자들을 만났다"고 밝히고 "그들은 모두 CMC 노동자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줬다"며 "절절한 동지애를 보내준 전국의 병원노동자들과 끝까지 투쟁대오를 지키고 있는 CMC 노동자들이 한없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윤영규 위원장 당선자는 "우리의 대화요구를 끝까지 거부한다면 어떠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며 "이같은 노동자들의 결의를 가톨릭과 의료원측에 똑똑히 알리고 경고하기 위해 오늘부터 2박3일 동안의 철야노숙투쟁에 들어간다"고 결의를 밝혔다.

일본 오사카 위생지부 간부들이 '연대'라고 적힌 천을 내보이며 병원노동자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오사카 위생지부 간부들이 '연대'라고 적힌 천을 내보이며 병원노동자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 석희열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일본지방자치단체노조 오사카 위생지부 다카카주 니시카와 부지부장 등 3명의 일본 병원노조 간부들이 방문해 가톨릭중앙의료원 한용문 지부장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하며 연대를 과시했다.

니시카와 부지부장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상황을 비디오로 보고 너무나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다"며 "나라는 다르지만 병원노동자들과의 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잊어버렸던 투쟁의 열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고 한국을 방문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시게오 가와구치 서기장은 연대사를 통해 "오사카 위생지부와 한국의 보건의료노조는 함께 PSI(국제공공노련)에 가입해 있으며, 특히 전남대병원노조와 몇 년간 줄곧 교류를 해왔다"며 "부당한 탄압에 굴하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400여 병원노동자들이 23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 돌계단에 침낭을 깔고 노숙하고 있다
400여 병원노동자들이 23일 밤 명동성당 들머리 돌계단에 침낭을 깔고 노숙하고 있다 ⓒ 석희열
보건의료노조의 이번 2박3일간의 철야노숙투쟁은 24일 저녁 7시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대위 주최의 '당신들의 크리스마스, 우리들의 성탄절' 행사로 열리는 성탄절 기도회 및 촛불시위, 이어 성당 자정미사에 참가한 뒤 25일 낮 연말 투쟁계획 발표와 함께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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