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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9일(목) 한국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만, 아직도 여의도는 4~5년을 주기로 떠도는 철새들로 붐빈다. 철새들은 신념이나 사상과는 상관없이 그저 온기를 찾아갈 뿐이다.
오는 12월 19일(목) 한국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만, 아직도 여의도는 4~5년을 주기로 떠도는 철새들로 붐빈다. 철새들은 신념이나 사상과는 상관없이 그저 온기를 찾아갈 뿐이다. ⓒ 오마이뉴스
"나는 오직 한 사람, 참으로 완전무결한 배반자를 알았다. 그 사람은 푸셰다!" (세인트 헬레나에서 나폴레옹)

바야흐로 선거 정국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요즈음, 시끌벅적한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2002년 세밑의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한 켠은 심란하기만 하다.

4∼5년을 주기로 날아드는 '여의도 철새' 때문이다. 물론 이전 대통령 선거에 비해 근거 없는 흑색 선전이나 돈 살포, 지역 감정 선동 등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여의도 철새들은 일신의 안녕을 보장해 줄 온기(溫氣)를 찾아 이리저리 당(黨)을 옮긴다. 알다시피 그들에게 있어 정치 도의란 그저 '코에 꿰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혹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자기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수사어구에 불과하다. 당을 옮긴 후 이전에 몸담았던 당과 동지들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는 지난 지방 선거에 이어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 문제로, 얼마 전 당을 옮긴 전○○ 의원은 이미 권력의 이동과 함께 수 차례에 걸쳐 당을 옮긴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정당 내에서도 당권(黨權)의 향배에 따라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몇 차례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가 여기서 하는 말과 저기서 하는 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우리네처럼 상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이런 세태에 아연 실색할 따름이다. 특히 전○○ 의원뿐만 아니라 이미 제3공화국 당시부터 지금까지 권력의 중심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모 정당의 대표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원로(元老) 철새요 장수(長壽) 철새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앞으로 말할 이에 비한다면 이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확고한 무신념을 밀고 나가려는 대담한 용기"

이베리아반도에서 모스크바까지 유럽대륙을 호령했던 천재적 영웅 나폴레옹이지만, 그 역시 한 남자 앞에만 서면 그저 온 신경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모스크바까지 유럽대륙을 호령했던 천재적 영웅 나폴레옹이지만, 그 역시 한 남자 앞에만 서면 그저 온 신경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 권기봉
'전기소설'이라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으로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그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인 1929년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책을 한 권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은 지은이가 태어나기 1세기 전 인물인 조제프 푸셰(Joseph Fouche, 1759∼1820)에 대한 전기 소설로, 푸셰라는 인물에 대한 다층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나폴레옹이나 로베스피에르 등 걸출한 인물들의 그림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앞서 말한 여의도 철새들에 비해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이마에 난 땀이 마를 겨를조차 없었을 조제프 푸셰. 그는 프랑스 혁명과 국민의회, 로베스피에르에 의한 공포 정치,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 그리고 루이 18세까지 파리의 격동을 줄곧 권력 중심부에서 체험한 인물이다. 당시 프랑스는 비슷한 것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극과 극을 오가는 다양한 정치 체제를 거치는 과정에 있었지만, 푸셰에게 있어 그와 같은 사실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고 거의 항상 정치의 중심부에서 권력의 단맛을 고루 맛보고 있었다. 그 비결은 말할 필요도 없이 '따뜻한 남쪽 나라'를 향한 '비행'에 있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고 권력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했던가. 조제프 푸셰는 프랑스혁명기 집정내각과 집정관 정부, 나폴레옹 제국, 루이 18세의 왕정, 그리고 다시 제국, 왕정을 거치는 동안 권력의 2인자로서 프랑스를 좌지우지한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고 권력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했던가. 조제프 푸셰는 프랑스혁명기 집정내각과 집정관 정부, 나폴레옹 제국, 루이 18세의 왕정, 그리고 다시 제국, 왕정을 거치는 동안 권력의 2인자로서 프랑스를 좌지우지한다. ⓒ 권기봉
오라토리오회(會) 교사 출신 푸셰에게 있어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동지라 확언하기 힘들고, 당연히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동지일 지 아닐 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동지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근거는 '그가 지금 최고의 권력을 가졌는가'다. 말하자면 이렇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는 급진적인 노선을 분명히 했던 자코뱅당과 온건한 성향을 보였던 지롱드당이 어느 정도 세력 균형을 이루지만 이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었는데, 푸셰는 주저 없이 한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너무도 솔직했던 것일까. 그가 택한 당은 자코뱅당도 아니고 지롱드당도 아닌 바로 다수당(多數黨)! 결국 푸셰는 온건한 지롱드당이 다수당의 자리를 점할 것으로 판단, 지롱드에 몸을 담게 된다. 그러나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던 당시 프랑스 상황에서 다수당이란 것도 영원 불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다수당이 바뀌면 다수당의 영원한 지지자요 당수인 푸셰도 '당연히' 위치를 바꿔야 하는 법.

결과적으로 지롱드는 쓰러졌지만 푸셰는 남았고, 자코뱅도 무너졌지만 푸셰는 용케 살아남았다. 이후 5인 집정내각과 집정관 정부, 나폴레옹 제국, 루이 18세의 왕정, 그리고 다시 제국을 거치는 동안 그는 계속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대한 츠바이크의 평은 간단하다. "확고한 무(無)신념을 밀고 나가려는 대담한 용기 덕분에 단 한 사람, 푸셰는 살아남았다"고.

그는 여느 철새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뚜렷한 이 같은 '소신'을 바탕으로 프랑스를 손에 쥐고 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잠시 다른 사람을 돕기는 하지만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옛 친구도 배반하고 등뒤에서라도 땅에 쓰러뜨리는 기민성과 대담함을 과시하며. 물론 그 과정에서 옛 동지를 단두대에 매달거나 유배를 보내는 등 극단적인 상황도 벌어지지만 양심의 가책이나 연민 등을 느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배반한 대상은 풋내기 정치가가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로베스피에르부터 '하늘의 아들' 나폴레옹까지, '어둠의 아들' 푸셰를 당해낼 자는 없었다.

푸셰는 아직 죽지 않았다

'전기 소설'이라는 독특한 글쓰기 형식으로 이미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시대를 꿰뚫은 혜안과 세밀한 묘사로 패덕자 푸셰의 일상을 추적한다. 작품으로 《광기와 우연의 역사》와 《마젤란》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전기 소설'이라는 독특한 글쓰기 형식으로 이미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시대를 꿰뚫은 혜안과 세밀한 묘사로 패덕자 푸셰의 일상을 추적한다. 작품으로 《광기와 우연의 역사》와 《마젤란》 등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 권기봉
물론 푸셰의 예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저렇게 철면피로 무장한 인간이 있을까' 아연 실색하게 될 정도인데, 아쉽게도 이런 인간 유형은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프랑스의 예를 들 필요는 없다. 멀지 않은 한반도 역사에서도 친일파들은 친미 사대주의자로 안전하게 연착륙한 바 있는데, 그들의 행동 동기는 언제나 원초적인 '힘'이었지 고귀한 사상이나 신념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일부 정치가들의 이 같은 행태가 비단 해방정국 때만의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빠리의 푸셰는 갔어도 서울의 푸셰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제3당(단순히 의석 수를 기준으로 했음을 밝혀둔다)의 지위를 내주기는 했지만 아직도 특정 지역의 맹주라고 자처하고 있는 김○○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권력의 핵심부에서 밀려난 적이 없다. 물론 핵심에서 잠시 멀어진 적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처럼 다시 권력의 중앙부로 진입하곤 했는데, 푸셰와 마찬가지로 1인자의 자리에 선 적은 없어도 항상 2인자나 3인자의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가늘지만 길게' 권세를 누렸다. 지난 14대 대선을 비롯 15대 대선에서도 성공적으로 지위 유지에 성공한 그는,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도 간단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의 포지셔닝(positioning)을 간단히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먼저 그는 특정 정당으로 기우는가 싶더니만 16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갑자기 '엄정 중립'을 선언했다. 어떻게든 캐스팅 보트를 쥐어 자신의 지분을 얻어내려던 이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치밀한 계산의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 푸셰에 대한 츠바이크의 평처럼 김○○씨 역시 힘의 평행사변형을 예리하게 계산한 후에 투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까지도 두 유력 후보간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테고, 노련한 정치가답게 아직 태도를 결정할 때가 아님을 직감했을 것이다. 즉 저울이 결정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선택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츠바이크의 말대로 이런 태도를 취하는 자는 대중들로부터 욕은 먹을지언정 너무 빨리 정력을 낭비하는 일도 없고, 너무 빨리 태도를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영원히 속박되는 일도 없다. 아마도 김○○씨는 싸움의 결과, 즉 당선자가 결정되었을 때야 비로소 최종적으로 마음을 결정할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강희영 옮김)/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리브로/1998 (원제: Bildnis eines politischen menschen)
슈테판 츠바이크(강희영 옮김)/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리브로/1998 (원제: Bildnis eines politischen menschen) ⓒ 권기봉
푸셰, 역사의 저편으로!

그러나 우리 정치에 항상 비관만이 판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를 보자. 상식을 애써 무시하는 몇몇 철새들이 여의도 상공을 헤매고 있긴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깨인 유권자들의 노력으로 한국판 푸셰들의 설 자리는 점차 사라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철새가 날고 푸셰가 그림자 속에서 움직인다고 해서 지역민들의 표가 비례해 따라가는 것도 아니요, 이미 그들의 홈페이지에서는 성난 국민들의 비난글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려는 후보측에서조차 역풍을 두려워 한 나머지 조심스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누구를 단두대에 보냈다거나 유배 보냈다는 기록도 없는 정치가이지만 그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을 듯 하다.

푸셰는 루이18세와 그의 측근, 주변 정세에 의해 사라졌지만, 한국판 푸셰들은 대중의 의지에 의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희망이 있다. 그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한들, 이제 사람들은 푸셰의 음습함을 역겨워 하고 있는 것이다. 빠리의 푸셰는 적당한 때를 놓쳐 결국 오스트리아로 프라하로 떠도는 등 용도폐기 되는 비운의 운명을 걸었지만 아직 한국의 푸셰들은 스스로 떠날 시간이 충분하다. 한국판 푸셰는 이제 스스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갈 시간이다.

이 한마디의 구절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에서


'모든 표면 뒤에 그토록 깊은 심도를 지니고 있어, 그가 행동하는 순간에는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들지만 그의 행동이 끝난 후에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사람' (p. 9, '어둠의 서막' 中 발자크의 조제프 푸셰에 대한 평)

그러나 푸셰는 그의 생애를 통해 그랬던 것처럼, 역사에서도 어디까지나 배후의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얼굴을 내보이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거의 언제나 그는 사건의 내부에 있었고, 각 당파 안에서 자기 관직의 익명의 껍질을 뒤집어 쓴 채로 마치 시계 내부의 기계장치처럼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활동하였다. 사건 소동 중에는 재빨리 사라지는 그의 옆얼굴을 얼른 붙잡으려고 해도 곧 포기해야만 한다. (p. 10, '어둠의 서막' 中)

위인이나 영웅은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써 수십 년,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뿐이다. 실제생활이나 정치라는 힘의 영역에서 그것이 좌우하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정치적 믿음을 경고하기 위해서 강조되어야 한다. 거기서는 뛰어난 인물, 순수한 관념의 인간이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가치는 떨어지지만 교활한 족속의 인간, 즉 흑막의 인간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p. 12, '어둠의 서막' 中)

어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나중에 취소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항상 유지하는 습성이 바로 그것이다. (p. 17,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의 품성을 평한 부분 중 하나)

조제프 푸셰는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조차도 일생 동안의 변함없는 충성을 서약하는 의무를 결코 한번도 생각한 일이 없었다. (p. 17,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돕지만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옛날의 친구를 배반하고 등뒤에서라도 땅에 쓰러뜨릴 수 있는 조제프 푸셰다운 행동이었다. (p. 21,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정치가의 경력은 이러한 변론 연습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상례이다. (p. 22,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는 자기의 실력을 놀게 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과실을 응시한다. 타인의 정열이 탈대로 다 타도록 시간을 기다린다. 상대의 정력이 다 소모돼 버리거나 가누지 못해 결점을 드러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사정없이 덤벼든다. 그의 무신경한 인내력의 탁월함은 무서울 정도이다. (p. 24,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푸셰의 보기 드문 천재성은 이토록 차가운 피에 있다. (p. 25,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의 재간은 천재를 능가하고, 그의 냉혈성은 모든 정열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pp. 25~26,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렇다면 조제프 푸셰, 그는 어디에 자리잡고 앉을까? '산악'의 급진당일까, '평온'의 온건당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당은 단 하나! 그가 지금까지 충실하였고 죽을 때까지 충실할 것이 변치 않을 당, 바로 유력 당인 다수당이다. (pp. 28~29,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러나 그의 겸손은 일종의 타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옛날의 '물리학자'는 먼저 힘의 평행사변형을 계산하고 관찰한 후에 균형이 아직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태도를 결정할 때가 아니다. 그는 주저하고 있었다. 저울이 결정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투표를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빨리 정력을 낭비하는 일도 없고, 너무 빨리 태도를 결정하지도 않고, 영원히 속박되는 일도 없다. 혁명이 더 전진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버젓한 선원의 아들로서 그는 파도의 배후에 뛰어들기 위하여 순풍을 기다리면서 항구에 그의 배를 정박시켰다. (p. 30,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너무 빨리 빛에 나가지 말고, 지나치게 빨리 태도를 결정하지도 말고, 먼저 다른 놈들이 피로에 지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혁명이란 혁명을 시작한 최초의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혁명을 끝내고 노획물처럼 자기에게 끌어들이는 최후의 사람의 것이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pp. 30~31,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강인하고 신속한 활동력 때문에 그는 인기를 끌 수 있었고 또한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질시를 받지 않았다. (p. 31,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정열가들이 서로 파멸해 버렸을 때야 비로소 기다리고 있는 사람, 영리한 인간을 위한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제프 푸셰는 언제나 싸움이 결정되었을 때야 비로소 최종적으로 마음을 결정할 것이다. (p. 31,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언제나 일인자의 배후에 숨어 그를 방패로 삼으며 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다가 그 사람이 지나치게 너무 뛰어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p. 32,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는 또한 언제나 최고의 권력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권력의 휘장이나 옷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에겐 권력의 의식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것이 조제프 푸셰의 최후의 비밀이다. (p. 32,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주의 주장과 신념에 묶이고 공연한 말과 제스처에 묶여 있는 동안, 빛을 두려워해 숨어 있는 인물인 그는 언제나 속박 없이 자유롭다. (p. 33,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확고한 무신념을 밀고 나가려는 대담한 용기 덕분에 단 한 사람, 푸셰는 살아남았다. (p. 33,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하나다. 언제나 승리자 편에 있고, 결코 패배자 밑에는 남아 있지 않는 일이다. (p. 38,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는 자기 선거민들이 깊이 생각하거나 주판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재빨리 덤벼드는 잔인성을 발휘해서 그들을 공갈하고 위협하려고 하였다. (p. 39,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스스로는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지만 겁쟁이는 힘없이 질질 끌려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적 순간에 있어서 모든 계산의 결정적인 분모는 대담성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p. 39, '조제프 푸셰, 진출하다' 中)

그러나 이 시대는 프랑스 국민의회의 참된 영웅적 시대이기도 하였다. 난국 극복의 최선의 길은 도전이라는 무서운 운명적인 본능으로 혁명의 지도자들은 샬리에가 죽은 후 샬리에의 처형자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였다. 타협보다는 차라리 몰락을! 약점 잡히듯 한 번의 평화를 체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전을 각오하고 일곱 번 싸우는 것이 낫다. (p. 58, '리옹의 학살자' 中)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가의 죄과는 피에 취한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말에 도취한 일이다. 그들은 다만 국민을 감격시키고 그들의 급진주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은어를 창조하여 끊임없이 배반자와 사형대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p. 65, '리옹의 학살자' 中)

유감스럽게도 세계 역사는 용기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또한 비겁함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치는 세상 사람들이 믿으려고 하는 것처럼 여론의 인도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고 영향을 주었던 법정 앞에서의 지도자들의 굴복인 것이다. 위험스러운 말을 지껄이고 국민의 열정을 자극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지상에서 어떠한 악덕과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이 없다.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량학살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공화주의적인 열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는 열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잘못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결정되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행동이다. 설사 그가 천 번이나 그 말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리옹의 대량학살자'로서 낙인찍히게 된다. 후일 공작의 외투로도 그의 손에 남아 있는 피의 흔적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pp. 65~66, '리옹의 학살자' 中)

인간대중을 천하게 하는 데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보다 더한 것은 없다. (p. 85,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책임이라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 (p. 87,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완고한 자가 유약한 자를 미워하고, 초지일관한 자가 계략을 꾸며 성공을 거두려고 하는 자를 미워하는 식의 서로 다른 유에 대한 여러 가지 증오와 세속적인 사람에 대해서 종교적인 사람들이 갖는 불신을 품고서 로베스피에르는 푸셰를 멸시하였다. (p. 89,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푸셰처럼 이미 자기 집에서는 편안히 잠들 수 없는 5, 60명의 대의원들은 로베스피에르가 그들 곁을 지나가기만 하면 입술을 깨물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연설에 환호하면서도 등뒤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곤 하였다. 그 청렴거사의 지배가 더욱 완고하면 완고할수록 로베스피에르의 압도적인 의지에 대한 반항은 점점 증대되었다.
공안위원회에게는 그의 의지를 강요하였고, 우익인사들인 지롱드 당원의 목은 단두대에 걸어놓았고, 좌익인사들인 최급진주의자의 머리는 자루 속에 내던졌다. 또한 돈벌이하는 자들의 사업을 위협하였다. 야심가들의 출세길을 막아버렸다. 질투심 강한 자들은 지배하려 하였고 사교적인 사람들은 그들과 못 사귀게 만들어 놓았다. 만일 이 수백 명의 증오를, 이 많은 분산된 겁을 하나의 의지로 모아 로베스피에르의 심장을 찌르는 칼끝으로 변하게만 한다면 그때에는 숨어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정적들이 구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로베스피에르에게 위협받고 있다는 확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공포와 의심의 범위를 넓혀야 하고 로베스피에르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더욱 교묘하게 고조시켜야 한다. 로베스피에르의 어두운 연설에 깃들인 납과 같은 침울한 중압감과 불안한 압박감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경에 더욱더 무겁게 가중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오합지졸도 용기를 낼 것이다. (pp. 99~100,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그는 몇 시간씩 대연설의 초고에 손을 대곤 하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게 그는 그 일을 계속하였고 원고는 수없이 수정되고 보충되곤 하였다. 모든 적을 단번에 섬멸하려는 이 결정적인 대연설은 적의 허를 찔러야 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문구로 생동하여 신기(神氣)로 빛나고, 증오에 의해서 잘 갈고 닦여져 손도끼처럼 예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는 적들이 단결하여 집결하기 전에 이 무기를 들고 불의의 습격을 가해 놀라 눈이 휘둥그래져 있을 자들을 그냥 막 두들겨 부술 작정이었다. 이 무기의 칼날을 예리하게 갈고 치명적인 타격을 주도록 독을 바르는 일은 아무리 애써도 충분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고, 로베스피에르는 이 무시무시한 일을 위해 귀중하고도 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p. 103,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로베스피에르를 평한 부분에서)

권력은 권력을 먹고 자란다. (p. 115, '로베스피에르와의 결전' 中)

자연의 리듬은 그러한 강제적인 악절(樂節) 중의 중간 휴지(休止)를 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깊은 바닥을 아는 자만이 생의 전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격을 당해야만 비로소 인간은 돌진하는 자신의 전 역량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창조적인 천재들은 절망의 깊은 바닥에서, 멀리 추방된 처지에서 자기의 참된 사업의 지평과 높이를 재기 위하여 이렇게 일시적으로 강요된 고독을 필요로 한다. 가장 중요한 인류의 사명, 이러한 것들은 유배지에서 생겨났고,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인 모세와 그리스도, 마호메트, 붓다 등도 최후의 결정적인 말을 발설하기 전에 먼저 침묵의 광야로, 인간의 한계를 넘은 무아경에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밀턴의 실명, 베토벤의 귀먹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징역, 세르반테스의 감옥, 루터의 바르트부르크 성 유폐, 단테의 추방 그리고 니체가 자의로 엥가딘의 얼음처럼 찬 지방에 은거한 일 등 이 모두는 인간의 깨어 있는 의지를 단련하기 위하여 그 수호신이 은밀히 원한 요구였던 것이다. (pp. 125~126, '회색의 망명객' 中)

뜻대로 소원대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끊임없이 성공하는 것보다 더 예술가나 장군이나 권세가들을 약화시키는 것은 없다. 실패를 보고서야 비로소 예술가는 작품과 자신의 참된 관계를 배우고, 패배를 한 이후에야 비로소 장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실각의 쓰라림을 체험하고 나서야 정치가는 참된 정치적인 달관을 얻게 된다. 끊임없이 부귀하면 유약해지고, 끊임없이 갈채만 받으면 둔감해진다. 중단은 공전하는 리듬에 새로운 긴장과 창조적인 탄력을 부여한다. 불행은 현실세계에 대한 깊고 폭넓은 관찰능력을 가르친다. 모든 유배는 냉혹한 교훈이지만 학습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연약한 자에게는 의지를 새로이 단련시켜 주고, 우유부단한 자에게는 결단을 내리게 하고, 냉엄한 자는 더욱 냉엄하게 한다. 참으로 강한 자에게 있어 유배는 언제나 그 사람의 힘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힘을 북돋워 더욱 강하게 한다. (pp. 126~127, '회색의 망명객' 中)

이상이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만 필요하다. (p. 133, '회색의 망명객' 中)

사내다운 남자에 대해서는 싸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떠버리들은 단호한 제스처로도 진압할 수 있다는 푸셰의 계산이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홀이 텅 비었을 때, 푸셰는 서서히 문가로 걸어가서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푸셰가 이렇게 열쇠를 잠금과 동시에 프랑스 혁명은 끝난 것이다. (p. 138, '회색의 망명객' 中)

관직이라는 것은 언제나 관직에 있는 자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 (p. 138, '회색의 망명객' 中)

그는 이들의 비밀을 듣고 곧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폭로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되는 순간에야 비로소 털어놓곤 하였다. (p. 142, '회색의 망명객' 中)

국가에 대한 모든 반역을 탄압하기 위하여 발명된 1792년의 단두대도 1799년의 조제프 푸셰가 만들어낸 세련되고 용의주도하게 짜여진 경찰기관과 비교한다면 한갓 둔한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p. 143, '회색의 망명객' 中)

자기들과 말상대도 되어주고, 돈을 벌거나 관직을 매매하는데도 태연하게 방관하거나 혹은 전적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너무 깊이 정치에 참견하지도 않고, 또 그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에게나 겸양하고 냉엄한 눈을 온화하게 감아주는 정치인. (p. 144, '회색의 망명객' 中)

자기의 은인 격인 수반에 대한 나폴레옹의 배은망덕에는 적어도 천재의 특권이란 변명이 통한다. 그의 강력함이 그에게 특별한 권리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별을 목표로 삼고 나가는 천재는 필요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밟고 넘어가도 되고, 역사의 더욱 깊은 뜻,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순간적인 사건들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160, '회색의 망명객' 中)

단 한 가지 바라스가 위안 삼을 것이 있다면 보나파르트가 푸셰를 자기편에 끌어넣은 것이다. (p. 161, '회색의 망명객' 中)

위대하고 유익한 건설사업은 언제나 사람들을 함께 묶어 협력하게 한다. (p. 162, '회색의 망명객' 中)

행복할 때는 신뢰할 수 있고 불행할 때는 신뢰할 수 없다. (p. 164, '회색의 망명객' 中)

전제군주는 자기의 결점과 과오를 지적하고 주의를 환기시켜 준 사람을 결코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p. 172, '회색의 망명객' 中)

제왕은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의 자기를 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재적인 천성을 타고난 사람들은 누가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 조언자를 싫어하는 것이다. (p. 172, '회색의 망명객' 中)

권력은 메두사의 눈을 갖고 있다! 그놈의 얼굴을 본 자는 그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고, 언제까지나 정신이 홀려 사로잡혀 있게 된다. (p. 181, '황제와 신하' 中)

조제프 푸셰는 다섯 번째로 충성을 맹세하였다. 첫 번째는 당시 아직 왕정 하에 있던 정부에, 두 번째는 공화정부에, 세 번째는 5인 집정내각에, 네 번째는 집정관 정부에 대해서였다. (p. 184, '황제와 신하' 中)


푸셰는 한번도 어느 누구의 신하가 된 일이 없었다. (p. 185, '황제와 신하' 中)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과해진 사명을 능란하게 해결한 후에는 자기자신의 남아도는 힘을 배출할 돌파구로서 더욱 어려운 새로운 사명을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했다. (p. 192, '황제와 신하' 中)

이들은 시대를, 현재를, 프랑스를 생각했지만 나폴레옹은 단지 후세를, 전설을, 역사를 생각했던 것이다. (p. 194, '황제와 신하' 中)

같은 족속이면서 서로 차이가 있는 친구보다 더 격렬하게 서로를 미워하는 자는 없다. (p. 200, '황제와 신하' 中)
걸출한 심리학자로서 나폴레옹은 이 두 대신이 라이벌 사이라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들을 한편에서는 부추겨서 싸움을 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두 사람을 억압하기도 했던 것이다. (p. 201, '황제와 신하' 中)

하나의 위대한 표양은 언제나 한 세대 전체를 결딴나게 하거나 아니면 궐기하게 한다. (p. 217, '권력투쟁' 中)

언제나 그렇지만 격분이 극도에 다다르면 그는 난폭한 장난기를 일으키고, 용기가 솟아나면 사나이답게 호탕한 태도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기괴한 위험천만의 방자한 태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p. 231, '권력투쟁' 中 조제프 푸셰)

비록 그의 아내는 죽었지만 아직도 자기를 도와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언제나 시간이 그를 도와왔고 이번에도 시간이 그를 도울 것이다. (p. 259, '무의식의 간주곡' 中 조제프 푸셰)

언제나 너무 늦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황제나 국왕은 자기들의 마음속에도 민주적인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p. 261, '무의식의 간주곡' 中)

"나는 오직 한 사람, 참으로 완전무결한 배반자를 알았다. 그 사람은 푸셰다!" (p. 286, '백일천하' 中 나폴레옹이 평한 푸셰)

싸움이 한창일 때에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지만 싸움이 끝날 때에는 언제나 승리자 편에 섰다. (p. 287, '백일천하' 中)

"나폴레옹을 배반한 것은 내가 아니라 워털루이다!" (p. 287, '백일천하' 中 푸셰가 나폴레옹을 두고)

이때 터져 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는 나폴레옹에게 자발적으로 퇴위하는 데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권력과 결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세상에 없다. 나폴레옹은 결국 이때 주저함으로써 제국을 잃고 그 자신의 자유마저도 잃었다. (p. 310, '백일천하' 中)

음모는 사상을 이겼고 재주는 천재를 이겼다. (p. 307, '백일천하' 中)

그런데 푸셰는 이렇게 영리한 여러 가지 재치를 구비하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 구비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최후의 현명한 재치가 없었다. 56세의 원숙한 나이에, 절정에 달한 지위에, 백만장자 혹은 천만장자라 할 수 있는 대부호에까지 이른 푸셰였지만 그 시대와 역사에서 존경받는 대업적을 남긴 후 기꺼이 물러나 달관하는 자세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pp. 309~310, '백일천하' 中)

국왕과 정치가와 장군들의 "절대로…없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가는 역사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항복의 서곡과 같은 것이다. (p. 315, '백일천하' 中)

노예근성이란 결코 자유를 이겨낼 수 없는 것이고, 노예근성은 억지로라도 자유에서 도망쳐 나와 다시 새로운 종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pp. 317~318, '백일천하' 中)

/ 권기봉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리브로(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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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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