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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억양에서부터 딱딱한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맥주의 나라, 독일. 우리는 다양한 맥주의 맛을 보기 위해 또한 그 맛에 맘껏 취하기 위해 독일을 찾곤 한다. 하지만 대학의 낭만과 중세의 분위기에 흠뻑 취한 채 그 자취를 따라 비틀거리며 거닐 수 있는 곳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남쪽 100km 지점, 넥카강과 라인강이 합류하는 독일의 서남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 하이델베르크. 인구 13만명의 작은 도시 하이델베르크는 2만7000명 이상의 대학생이 모여있는 대학도시이면서 고풍스런 하이델베르크성과 멋들어진 옛다리를 통해 철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색의 도시이다.

1386년 제국의 7대 선제후 중의 하나였던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젊음의 열기가 넘쳐나는 대학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낮에는 고성의 정취에 빠져 조용하면서도 밤이 되면 청춘의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뿜어나오는 두 얼굴의 표정을 하고 있다.

▲ 하이델베르크 성
ⓒ 홍경선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이델베르크성이 보인다. 높이 200m의 언덕위에 세워진 붉은 고성인 하이델베르크성은 13세기 이 일대를 통치하던 프와르츠공에 의해 지어진 후 오랫동안 고딕·바로크·르네상스 등의 다양한 양식이 복합되어 증축되었다고 한다.

성까지 향하는 길은 과거의 흔적이 베어있는 중세의 옛 건물들로 가득했다. 그 사이로 미로처럼 나있는 골목들을 하나하나 비집고 들어가면 고즈넉한 옛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고풍스런 옛길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니 붉은 성벽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관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고성의 모습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만화 속 로봇괴수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것처럼 부서져버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 정원으로 향하는 길의 부서진 성벽
ⓒ 홍경선
고딕·르네상스·바로크건축양식이 혼합되어 그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높았던 하이델베르크성이 이처럼 황폐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1688년에서 1697년까지 성의 상속권을 놓고 Franco-Palantine 등 제후들간의 후계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때 프랑스군이 하이델베르크성을 점령하여 성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도시를 황폐화시켰다고 한다. 프랑스군의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아름다운 붉은 고성은 성을 사수하던 병사들의 붉은 피로 물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붉은 기운이 감도는 느낌이 왠지 우울해 보였다.

부서진 성벽에선 죽어가던 병사들의 외침소리가 들려나온다. 창에 찔려죽고 성벽에 깔려죽고 무참히 짓밟혀버린 그들의 삶은 그렇게 고스란히 성벽에 남아있었다. 게다가 성벽 위를 감싸고 있는 잡초 또한 역사의 허망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성 바깥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짙은 녹색의 정원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직 파괴와 약탈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성벽을 비집고 자란 잡초들만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성의 비참한 최후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부서진 성벽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했다. 이가 빠진 나사마냥 성벽의 곳곳이 비어있었다. 그 사이로 멀리 넥카강의 거센 물결과 짙은 녹음이 우거진 숲이 바라보인다. 하지만 상당부분 부서져있는 성의 외벽에서 애처로움만이 묻어날 뿐이다.

▲ 부서진 성벽 사이로 넥카강이 흐른다
ⓒ 홍경선
하지만 흉측한 외관과는 달리 성의 내부는 화려했다. 성의 입구는 멋진 갑옷을 입은 중세의 기사상이 양쪽에서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거친 인상과 눈빛 그리고 허리에 찬 길다란 장검에선 왠지 모를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단지 모형에 불과한 그들에 의해 조금은 기죽은 상태로 넓은 문을 통과했다.

성의 내벽엔 멋진 중세 독일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동안의 유럽여행동안 많이도 보아왔던 양식의 건물들이다. 특히 가장 멋진 프리드리히궁의 외벽은 수많은 중세기사상들로 가득했다. 각각 저마다 개성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검을 쥐고 있었다. 검을 통한 명예를 생명처럼 여겼던 중세기사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또한 검을 쥔 손과 노기 어린 얼굴에선 좀전에 문 앞에서 느껴졌던 위압감마저 새어나온다.


▲ 중세건물의 아름다운 모습 프리드리히궁
ⓒ 홍경선
프리드리히궁을 지나 옆에 있는 조그만 건물로 들어서면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통을 만나볼 수 있다. 1756년에 만들어진 이 와인통은 무려 22만 리터의 와인을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원래 전쟁중에 성안에 물이 부족할 것을 염려하여 물 대신 와인을 저장한 것이라 하는데 어쨌거나 그 크기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와인통의 전체적인 모습은 높은 사다리를 올라 그 위에 놓여진 길을 따라 한바퀴를 돌아야 볼 수 있다. 와인통 여기저기엔 세계 각국의 언어들로 가득했다. 이른바 기념낙서라고나 할까? 심지어 와인통에 바짝 달라붙어 매달려야 가능한 낙서조차 보였다. 물론 우리의 한글 역시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다. 와인통을 한바퀴 돌아 내려오니 출구 쪽에서 기념으로 와인을 팔고 있었다. 와인을 한잔 마시면 기념으로 와인잔을 준다고 하는데 맛과 모양이 형편없다.

성내에는 이밖에도 약제기구와 미라의 뼈 등이 전시되어있는 봉건시대 말기에 건축된 약국과 시계탑, 고딕과 르네상스의 과도기에 건축된 도서관, 괴테의 싯구가 남겨져있다는 시문,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된 거울의 방이 있는 건물 등이 있었다.

성의 제일 끝에 있는 대전망탑으로 향하는 길은 과거로의 출발이었다. 적어도 그 길이 끝나는 곳엔 현재의 나는 아니 현재의 하이델베르크는 온데 간데 없다. 오직 중세의 고풍스런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대전망탑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 홍경선
하이델베르크 성의 대전망탑에 서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이델베르크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넥카강을 경계로 하여 안쪽으로는 선제후박물관, 하이델베르크 대학, 하우푸트 거리 등 하이델베르크의 구시가지가 마치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복잡한 미로 속엔 옛 건물들이 고풍스런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성 아래로는 성령교회의 높은 첨탑과 시계탑이 올라와 있다. 성안의 사람들은 교회의 시계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제일 먼저 시간의 흐름을 알았으리라. 높은 첨탑에선 금방이라도 종이 울리려 한다. 오후 4시를 알리며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금방이라도 하이델베르크 전역을 감쌀 듯 했다.

맑은 종소리가 반투명 하늘을 적시며, 그 아래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하이델베르크의 수려한 경치는 과거와 현재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 위에 선 나는 중세의 도시 한복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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