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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토 한인타운에서 촛불 추모 행사에 참가한 유학생과 동포들
ⓒ 김태엽
캐나다 토론토 현지 시각 10일 저녁 7시(한국시간 11일 오전 9시), 한인타운에서 현지 동포들과 유학생 등 7백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여중생 추모 촛불행사가 열렸다.

▲ U.S. Army out of Korea!!
ⓒ 김태엽
저녁 7시 정각에 촛불 점화와 묵념으로 시작된 행사는 추모글 낭독 및 제안자 인사 이후 토론토 주재 한국총영사관까지 행진하고, 영사관 앞에서 다시 한번 추모 묵념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사에는 유학생들과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많았고,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다수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한 동포 중학생은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을 중심으로 벌써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다 퍼졌다"며 "며칠 전부터 미리 얘기된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다"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 추모행사에 참가한 캐나다 현지 동포들
ⓒ 김태엽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추어 계획된 이 추모행사는 7시를 기점으로 12분 10초간의 묵념이 진행되는 가운데 두 여중생의 부친과 친구들이 쓴 편지가 낭독되었다. 묵념 후 간단한 사건 설명이 이어졌고 '미선이 효순이'의 영정과 태극기, 캐나다 국기를 선두로 토론토 주재 한국총영사관까지 행진을 시작되었다.

한인타운을 출발한 대열은 5백미터에 걸쳐 토론토 중심거리인 블루어 거리에 늘어섰으며, 영사관이 위치한 에비뉴 로드(Avenue Road)로 접어들면서 대열은 길 양쪽으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다. 행진 중에는 토론토 시민들에게 추모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 토론토 주재 한국영사관으로 행진하는 추모행렬
ⓒ 김태엽
행진 대열에는 한인들과 함께 많은 토론토 시민들이 참가했다. 한국에서 여중생 추모 집회와 49재 행사에 참가했다는 토론토대학 사회학과 학생 걸프리트 씽(26)씨는 "한국의 반미 정서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주변 시민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행진의 뒤쪽에서는 한국 내 미군의 반인권 행위에 대한 조사 및 국제 여론 형성을 위한 활동을 하는 캐나다인들의 모임인 한국신뢰위원회(Korea Trust Commission) 소속 활동가들이 행사 참가자들과 거리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중생 압사사건의 재조사와 재판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위원회 측은 이 서명용지를 곧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 추모행사가 끝난 후 영사관 앞에서
ⓒ 아이코리안
"미국은 세계 곳곳에 적을 만들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사전 집회 신고 없이 진행되었으나 현지 경찰 측과 별다른 마찰없이 이루어졌다.
"지난 월드컵 당시 이 거리를 가득 메웠던 붉은 악마를 떠올리며 행사에 참여했다"는 유학생 정주연(22)씨는 "수천명이 모였던 그 때 거리 행진도 너무나 질서 정연해 놀라웠다"며 "한국인들이 해외에서도 이렇게 뭉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행진에 파견된 경찰 데이비스(Davis)씨는 "캐나다 정부는 지난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군의 오발로 죽은 4명의 캐나다 군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항의를 못하는 형편"이라며 "한국 내의 억울한 죽음을 해외에서도 추모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 적을 만들고 있다"며 의사를 밝혔다.

행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주최측의 유학현(29)씨는 "미국 영사관이 아닌 한국 영사관까지의 행진을 결정하는데 의견이 분분했다"며 "그러나 한국 정부는 우리의 적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인타운과 한국 영사관을 잇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는 14일부터 매주 토요일 6시에 토론토 주재 미국 영사관 앞에서 추모와 항의의 집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한국 사람과 소주 너무 좋습니다"
인터뷰 1 - 차량통제 나온 현지 경찰관

▲ 토론토 경찰 아마르씨
아마르 캐토치(Amar Katoch, 43)씨는 행사 내내 시종일관 행진 대열 앞뒤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토론토 경찰국 14구역 소속 자전거 경찰대인 그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이었고 친절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대열의 중반에서 후미까지 200여 미터를 책임지고 신호와 차량관리를 하던 아마르씨는 "신호등을 지켜서 가니 내가 할 일이 없다"고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어린 소녀들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한다"며,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은 월드컵 때에 알았지만 이런 추모 행사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해서 좋고 소주는 아주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아 너무 좋아한다"는 아마르씨.

그는 소주를 'Korean Sake(청주)'로 알고 있었다며 'Soju' 발음을 연습하며 꼭 기억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사전 집회신고(permit)가 아닌 통보(notice)로도 가능할 것"이라며 "14일 6시 미국 영사관 앞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 미영사관 앞에서 만납시다"
인터뷰2 - 추모 행사 제안자 유학현씨

▲ 추모의 글을 낭독하는 유학현씨
이번 추모 행사는 토론토 현지 유학생들이 제안하면서 준비되었다.

지난 11월 말경 한 유학생 인터넷 동호회장을 맡고 있는 유학현(29)씨가 추모 행사를 열자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다른 인터넷 동호회와 현지 언론 등에 참여를 호소하였고, 현지 한인 동포 방송과 일간지 등을 통해 급속히 알려졌다.

유학생들은 이메일과 동호회 게시판, 어학원 등에서 참가를 권유하고,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열흘 남짓 준비해 왔다.

-본 행사를 제안하게 된 취지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언가 조그만 것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추모행사를 기획했고, 너무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일단 홍보가 걱정이었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와 동호회, 한인 타운과 한국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다운타운 도서관 앞에서도 홍보를 진행했다. 날씨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좋았고, 행사 전날인 9일 미국 L.A.에서의 촛불 집회 때문에도 조금 걱정을 했다. 인원을 예상할 수 없는 행사인데다가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학생들이 공부도 바쁜데 수고한다며 격려하는 동포 분들이 많아 큰 힘이 되었다."

-행사 진행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점은 없었나?
"주최 측에서 초를 300개 밖에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한인타운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동포분들이 지원해 주었고, 성금도 전달되어서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음향시설과 무전기 등을 동포 분들이 지원해 주셨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이다 보니 중앙의 낭독이나 방송이 보다 많은 분에게 전달되지 못해 아쉬웠다. 대열 중간중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무전기를 통해 중앙의 안내를 참가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한국 영사관까지의 행진때문에 논란이 있었다는데?
"한마디로 왜 미국 영사관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자리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미국에 대한 항의 이전에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추모로 의견을 모았고, 한인들의 생활터전인 한인 타운과 한국 정부의 파견 기관인 영사관과의 연결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오는 14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토론토 주재 미국 영사관 앞에서 촛불 추모 행사와 함께 사진전을 진행할 것이다. 앞으로 토론토 내의 사람이 많은 주요 지점이나 한인 교회 등에 요청해 순회 사진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토론토의 국내 및 캐네디언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에도 보도 자료와 함께 사건 내용과 우리의 활동을 알려나가며 캐나다 내에서의 여론을 모아나갈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을 통해 퍼진 토론토 행사 제안문

'12분 10초 간의 힘'

우리는 서로 모르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지금만은 묵언과 빛나는 눈으로 
서로의 손을 꼭 한번 잡아보고 싶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보여준 우리의 힘은 세계를 감동시킨 드라마였습니다. 
기쁨과 환호, 때로는 아쉬움과 분노로 붉은 티를 땀으로 흠뻑 적셨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그 드라마를 색다르게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신 효순이와 미선이… 

그들을 위한 간디즘 물결이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의 한인 지역에서 일고 있습니다. 
한번만 그들이 우리의 동생 혹은 딸, 언니, 친구라고 생각해 주십시요. 
눈물과 분개와 비탄과 절망을 넘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넘치는 감정을 주체 못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또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젊은 영혼의 죽음과 불공정, 비 인간적, 참을 수 없는 방관의 이기심에 금을 긋자는 것입니다. 
작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과 분열을 가져오는 작은 도끼질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만 바라볼 뿐입니다. 
어쩌면 이 시위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시나마 우리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것은 자로 잴수 없는 산(山)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마치 경쟁하듯 보여주는 시위는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집에 가야 한다면 가십시요. 밥을 먹어야 한다면 먹으십시요. 
12분 10초가 아까우신 분들은 그렇게,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여러분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마음 바구니입니다. 
영혼을 위한 묵언의 이 의식은 세계 인권 선언 기념일인 12월 10일에 준비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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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퇴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맨발로 땅을 딛고 걷는 날이 올까를 궁금해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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