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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시 원곡동의 시내거리가 외국거리를 연상케 한다.
ⓒ 안영건
"코시안 타운을 혹시 아십니까?"

이는 소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일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을 일컬어 말하는 신조어로, '코리안'과 '아시안' 마을의 합성어이다.

원래 원곡동 지역의 경우 과거에 갯벌로 본래 안산 원주민은 텃밭을 일구며 한가한 어촌주민들은 바다에서 굴을 따거나 작은 고기와 새우, 조개 등의 해산물이나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해내어 소래 혹은 인천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안산은 수도권 공장의 교외 이전의 추진 계획에 따라 갯벌지역에 흙을 매립하여 주택지와 공장부지를 형성하여 반월 공단과 도시 주거지역으로 형성된 것이다.

1980년 이후 안산의 급격한 공단 배후 도시로 자리 잡아감에 따라 안산 인구의 절반 가량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 그리고 공단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되었다.

특히 1990년 이후에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모인 반월 공단 공장들이 3D업종을 기피하면서 심각한 인력난을 맞는 바람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거주하며 살아가는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이렇듯 안산은 수도권 공단의 이주정책으로 급격히 이루어진 공단의 도시로서 안산의 문화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 임금을 받지 못한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 안영건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안산시민은 4천여명에 불과한 데 비해 외국인들은 무려 2만9천여명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중 절반이상이 중국 국적이고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등 동남아계가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이 가운데 2만여명이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곡동은 대다수의 안산시민이라면 범죄의 사각지대로 알고 있다. 여기에는 불문율이 잔존하는데 아무에게나 말을 걸지 말아야 하며 밤에 혼자 돌아다니거나 중국식당에서 자장면을 주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는 외국인 최대 밀집지역인 원곡본동 130번지 일대의 경우 밤이 되면 말 그대로 '무법천지'로 전락, 골목길은 가로등조차 없어 슬럼가를 연상케 하고 놀이터는 술에 만취한 외국인의 차지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원곡동에서 외국인들과 자칫 시비를 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 김모(37)씨는 "심야시간대에는 외국인들에 말을 걸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로 그 정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불법체류자인 이곳 외국인들이 신변에 불안을 느끼다 보니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라는 부언설명이 있어서야 이해가 된다.

▲ 한국노동자에 폭행당한 스리랑카 연수생
ⓒ 안영건
이처럼 범죄사각지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IMF 직후 공장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갈 곳 없어진 외국인들의 경우 소위 '쪽방'이라는 데로 대거 몰려 범죄가 늘기 시작, 지금은 경찰이나 행정관청조차 통제가 어려운 지역으로 전락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의 경우 폭력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중국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중상을 당했고, 길가던 일가족이 영문도 모른 채 중국인 남자 6명으로부터 벽돌로 머리는 맞는 등 집단폭행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범죄도 급증, 이 일대에서만 살인 7건을 비롯해 모두 185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문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수사 및 증거확보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부 차원의 외국인 관리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주민이 속출하는가 하면 외국인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업소가 늘어나는 등 내외국인간 갈등마저 심화되고 있지만 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원곡본동 사무소 관계자조차 "외국인과 주민들과 마찰이 잦지만 대부분 불법체류자여서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이곳에서 9년째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박천응 목사(42)는 "일부 외국인들로 인해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것은 알지만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외국인노동자들이 서로 한데어울려 자신들만의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생활하고 있다.
ⓒ 안영건
이에 앞서 외국인노동자들의 실태를 보면 외국인노동자의 대부분은 모국에서 1~2천만원을 들여 대출 또는 집을 담보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남더라도 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해야 살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과거 7, 80년대 사우디 이란등 중동근로자들이 고생하던 국내실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더욱이 불법체류로 출입국관리소에 잡혀 15일이 넘도록 비행기 표를 구할 비용이 없어 동료들이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 사연도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온다. 이처럼 자진신고 발표에 따른 모순, 미봉책은 이들 외국인 근로자에게 혼란만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정임에도 원곡동 지역도 나름대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골목골목에 자리잡은 중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각국 식료품점에서 그들의 순수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쓰여진 간판이 걸린 음식점에는 방글라데시식 양고기, 카레, 생원두와 우유를 섞어 끓이는 인도네시아식 커피, 스리랑카식 튀김요리 등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안산에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한마당잔치가 자주 열려 화합의 장이 된다.
ⓒ 안영건
원곡본동에서 5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방글라데시인 산투(36)씨는 "주말에 찾아오는 단골만 100여명이 넘는다"면서 "값은 본국보다 20~30%가량 비싸지만 고향의 맛을 찾으려는 동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며 더듬더듬 한국말로 설명했다.

외국인들이 쉽게 국제전화를 걸 수 있도록 국제전화 전용방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이곳만의 진풍경이다. 오후 8시쯤이면 타향살이에 대한 애환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출신인 우바이 딜라 야신(29)씨는 지난 2월 다니던 플라스틱 성형공장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고향의 아내와 딸이 보고 싶었지만 4년째 참고 일하다 결국 사고를 당했다. 매달 50만원씩 고향에 보냈던 그는 "돈을 벌어 고향에 땅을 사 농사를 짓는 게 소원"이라며 울먹였다.

▲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마을청소.
ⓒ 안영건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받는 돈은 70~80만원선. 100만원 보증금에 월 16만-18만원을 내고 2평 남짓한 벌집에서 지낸다. 3D업종에서 일하고 햇빛도 들지 않는 셋방살이로 고달픈 하루를 보내지만 원곡본동 '코시아타운'은 희망으로 가는 해방구로 그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한양대학교 심원술 교수(경영학)는 "외국인 근로자 4명 중 1명이 직장에서 무시나 거부와 같은 차별을 경험했고 일부 근무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상화되어 있을 정도로 저개발지역 출신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책마련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생산현장에서 땀흘리는 우리 근로자들의 따스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 관계자는 "문화적 이질감과 피부색이 서로 다르다보니 이해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점차 이웃이 되어간다"고 말했다.

매월 한차례씩 지역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리 청소에 나서고 동네체육대회도 열 만큼 간격이 좁아지고 있다. 코시안타운이 다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국경없는 도시'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박천응 목사 '국경없는 마을' 제안

▲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전경.
공단도시문화로 이루어진 안산에 사는 시민들이 생존경쟁을 넘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의 창조'가 중요하게 요청되고 있는 가운데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소장)가 안산시 원곡동의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을 제안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 목사는 "안산에는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소비, 결과물을 둘러싼 소유와 분배,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과정에 대한 통제와 조절과 관계된 생존경쟁만이 만연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더 안산의 문화에 대하여 깊은 통찰과 대안적 문화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안산은 불과 20여년만에 '농어촌 문화'가 변하여 '공단 도시문화'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곳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서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창조'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화는 주어진 자연(自然)이 아니라 인간에 의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서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 모든 이가 차별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 창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안산이 과거에 농어촌 문화였다가 공단 도시문화로 변하였듯이 '생존과 경쟁의 문화'인 오늘의 안산의 문화를 넘어 대안 문화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창조적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이 가능하다고 판단,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에서는 안산시 원곡동을 중심으로 한 국경 없는 마을 설립을 구상 중에 있으며 1차년도 5년 계획을 가지고 공동체 형성을 이뤄나갈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원곡동 일대의 대안문화가 어떻게 꽃피워나갈지,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마련과 생활권, 문화권을 조율할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안산원곡동의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이 실천과 협력을 강력히 요청된다. 이젠 안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게 된 지 10여년이 흘러가고 있다.

초기 안산이라는 도시의 조성 당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낮선 땅에 공단을 찾아 왔듯이 외국인 노동자들도 국경을 넘어 같은 문제로 안산을 찾아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곡동 일대만 하더라도 5천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우리의 친척이자 주민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를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임금 체불과 산재와 인권문제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불쌍한 사람들, 모두가 퇴근한 저녁이나 명절이면 빈 공단을 지키는 갈 곳 없는 사람들로만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생존과 경쟁의 문화'를 넘어서서 우리는 국적의 구별이 없는 함께 사는 주민으로서 '국경없는 마을' 형성에 안산 시민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연대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대안문화로서 국경없는 마을의 형성을 통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문화 형성, 외국인노동자의 사회적 권익 형성, 외국인노동자 사회안전망 구축, 상생적 지역 국제문화 형성, 차별 없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보장, 사랑과 평화, 공동체로 이루어지는 삶의 질 형성, 외국인노동자의 자치 자활 향상, 귀환 외국인 노동자의 재통합 능력 향상 등이 기대되어진다.

특히 불안정한 신분의 상태로 있는 외국인들끼리 자율적인 타운형시의 촌장을 운영, 위원회에서 관리체계를 확립해나가는 등의 개선노력이 선행되야 할 것이며 이는 일산 지역의 타운 형식의 집단주거지역 추진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상통한다.

현재 원곡동의 원주민은 불과3%에 불과해 달라진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데다 옛것만 고집하는 바람에 새로운 변화로 인한 지역경제활성화에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제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서도 원곡동이 빠져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찾아오는 지역문화와 복합문화지역으로서의 환골탈태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박 목사 일문일답.

- 외국인노동자 운동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던 중, 92-93년 경부터 동네 주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미 나 자신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문제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지역에서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서서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에 대처해 나가고 연대하며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일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가난하게 살아왔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목회를 해 오던 중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시면서 갖게 되는 갈등이나 고민은 없었습니까?
"첫번째로 주체의 문제에 대하여 본다면, 처음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앞장서서 해나가면 그들은 따라와 주어야 하는 운동의 대상, 교육의 대상, 동원의 대상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선교의 대상, 교화의 대상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인격체로, 주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로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심한 말로 하면 외국인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의 이용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운동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일체(一體)의 정신'입니다. '나와 그가 하나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외국인 노동자는 90년대에 한국 교회에 찾아오신 예수님'으로서 '섬겨야 할 분'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운동에서 한국인의 위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왜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전체에 도움이 될 때가 더 많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무엇인가 일한다는 것이 오히려 전체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운동의 본질이 무엇인가 ?' '왜 이 일을 하려하지?' 하는 끝없는 질문이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저는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조차 사용해서는 안되고, 지금 하고있는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이 결국 나를 살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위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함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한다면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겸손해야 하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지요." / 안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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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서 사회부 기자로만 17년 근무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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