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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생 우수련은 여름방학 동안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집 바깥에서 뭔가를 하고 싶었다. 엄마의 고함 소리, 아버지의 침묵, 법석을 떠는 어린 동생들 그리고 자궁암으로 앓아 누운 여든한 살의 할머니. 벗어나고 싶었다.

수련은 친구 성재의 선배인 김해경을 소개받아 그가 연출하는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면서, 혼자 지낼 방을 얻게 된다. 사채업자 장모와 전문대 교수 아내 사이에 꽉 끼어 있는 30대 중반의 김해경, 운동권에 몸담고 있는 친구 성재, 연극 연습을 하러 밤마다 모이는 다른 배우들. 수련의 여름방학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러던 중에 성재가 잡혀가고, 수련은 김해경을 상대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들어가지만, 수련은 끝내 집에 머물지는 못한다.

세월이 흘러 이십 년만에 마주 앉은 김해경과 수련. 그들은 성재의 소식을 나누지만, 성재와 수련 사이의 일을 김해경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그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어서였을까, 수련은 집과 아이를 두고 여행 컨설턴트로 세상을 이리 저리 떠돌며 살아간다.

어렸을 때 수련은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수련에게 할머니는 물이나 불, 공기와 햇빛, 맛과 냄새같이 자연적인 존재였다. 누런 무명 치마저고리, 비녀, 고무신. 할머니 등에 업히거나 할머니의 치마 끝을 쥐고 우물가로, 밭두렁으로, 험한 산으로 따라다녔다.

그리고 수련은 기억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쯤 장구를 들고 찾아와 민요를 불러주던 전주 할머니, 속주머니에 숨겨두었던 박하사탕을 꺼내 주거나, 사이다 사먹으라고 돈을 쥐어주며 수련의 얼굴을 쓰다듬던 할머니의 친구들. 그 '꺼칠하고 따뜻한 가죽 같은 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금 사타구니 사이로 피고름을 흘리며 누워 계시다. 엉덩이에 생긴 욕창에는 구더기가 슬고, 피얼룩이 진 누런 기저귀가 널려 있는 집안에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다.

할머니 병 수발은 아내에게 다 맡긴 채, 아침저녁 할머니 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나오는 것이 전부인 아버지는 어떤 간곡함도 없이 '방학 동안 할머니를 맡아라'라고 명령할 뿐이다.

스무 살 수련에게 할머니는 누구일까. 어려서 길러 주시고, 돌봐 주신 분. 그러다 이제는 나이 들고 병들어 꼼짝 못하고 누워, 냄새를 풍기며 가실 날을 기다리시는 그런 분일까.

작가는 "성장과 노화의 거리는 발바닥과 정수리처럼 어떤 접점도 없으며 서로 하소연할 수 없도록 고독하고 비밀스러웠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발바닥과 정수리 모두 우리 몸이 아니던가. 비록 단 한 곳의 접점도 가지지 못했지만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꽁꽁 묶여 있는 한 운명의 존재가 아니던가.

김해경은 수련에게 말한다. "스무 살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말아라. 스무 살은 스무 살일 뿐이야. 삶으로 끌고 가지는 마." 그러나 우수련과 김해경, 성재 모두 그렇게 살지 못했다.

수련의 할머니 역시 스무 살의 다리를 건너 여든한 살에 이르렀을 것이고, 여기에서 비로소 죽음의 강과 맞닥뜨린 것이다. 할머니에게도 스무 살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스무 살 기록 속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피고름을 흘리며 누워 계신다.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장과 노화는 한 뿌리에서 시작된 것, 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 하고 싶어한다. 스무 살 방황의 갈피에서 읽어낸 노년은 그래서 참 아프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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