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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농촌만이 그렇겠는가. 보는 이의 마음그릇에 따라 사물은 천태만상이다. 오늘의 농촌 모습은 처방만큼이나 다양하게 보이리라고 본다. 이 글을 읽고 농촌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던 그것 역시 읽는 사람의 몫이다.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빈 들판은 한 폭의 한국화다. 창틀은 순박한 액자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감동의 파노라마다. 타작이 끝난 논이며 아직 가을걷이가 덜 된 콩밭. 노랑과 빨강이 뒤섞인 산등성이 단풍들. 가히 환상적이다.

고개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살아있는 한국화는 내게 말을 건네 오기도 한다.

은행잎은 수직으로 나풀대며 줄줄이 내려앉고 있다. 찰싹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가만히 입 다물고 살라고 한다. 이 대자연에 너 인간도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손짓한다. 자연에 대한 오만과 악행을 이제 중지하라고 충고한다.

오전 내내 비가 뿌리더니 이젠 햇살이다. 꾸지람하고 나서 토닥이는 엄마의 눅은 목소리 같다. 숨이 턱턱 막히고 허리가 휘던 지난 한 여름의 기억이 추억 너머로 아스라하다. 볼 때마다 나를 겁에 질리게 하던 밭의 잡초들도 다 말라버리고 맨땅이 드러나 있다. 현재만이 절박하다. 미래의 불안도 결국은 현재로 귀결된다. 도시를 떠나기로 작정하던 7년 전의 그 설레임과 불안은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절박하지가 않다. 감사한 일이다.

분무기를 지고 당신의 휜 등보다 더 꼬부라진 논둑길을 따라 배춧잎에 비료를 뿌리러 가는 뒷집 할아버지는 올해도 도회의 자식네들이 갖다 주는 온갖 보약으로 겨울을 날 것이다. IMF 때 몰려왔던 귀농자들이 하나 둘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버리고 와야 할 것을 짊어지고 왔기 때문이고 가져 와야 할 것을 놓고 왔기 때문이다.

귀농은 농업으로 자신의 직업을 바꾼다는 것이 아니다. 농민은 농사가 업인 사람이 아니다. 농촌을 이해한다는 것은 수매가가 생산비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그 통계에 있지 않다. 나라가 중국에 핸드폰 팔아먹고 칠레에 자동차 팔려고 마늘밭이랑 포도밭 갈아엎는다고 생각하면 농부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다른 그 무엇을 또 볼 수 있어야 하리라.

농약을 뿌리고 비료를 들이부어서 허우대만 허여멀쑥하고 체력은 곯아빠진 요즘 애들처럼 겉보기 좋은 농산물 만들어내는 사람은 더 이상 농부가 아니다. 땅과 공기와 물에 대한 침략자다.

자기부모 속 썩이는 사람만이 불효자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햄버그가 맛있다고 하면서 성인병과 암에 안 걸리고 싶다면 몰염치한 욕심꾸러기다. 어머니 대지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효다. 오늘도 세상 부모들에 대한 불효자들이 우리 마을에 전원주택을 짓고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마당까지 아스팔트를 깔아대면서 도시를 망쳐먹은 자들이 시골까지도 망치고 있다.

가을의 농촌은 요즘 농민을 닮았다. 노쇠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오가는 우리 마을은 거대한 노인정이다. 노인정에는 더 짙게 가을이 한숨처럼 내려앉아 있다.

가을이 농민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내년 씨나락을 가을에 맨 처음 갈무리한다. 씨감자, 호박씨, 고추모종감도 지금 이때 준비한다. 이처럼 이 가을에 농촌에서 새로이 잉태되는 생명의 기운이 있다. 확연하게 생동하는 생명의 움직임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생명역동농업. 생태농업. 환경농업이라고들 부른다.

무릇 모든 운동은 더 많이 규탄하고 더 많이 비난하여 제 몫을 찾고, 나아가 더 많이 확보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려고 하는 것인지가 이제는 운동에 포함되어야 하리라. 누군가로부터 핍박받고 수탈당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억압하고 누군가를 약탈한다면 결국은 자신을 피폐하게 하는 것이리라.

옆 동네에서 농사짓는 친구네는 일년 전기세가 2만원이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컴퓨터도 없다. 잠시 읍내에 가면 복지회관이건 면사무소건 인터넷이 다 무료다. 나는 얼마 전 일년 내내 한번도 보지 않고 서재를 가득 메웠던 천 권이 넘던 책들을 다 나눠 줘 버렸다. 책도 안 산다. 도서관에 가면 신간서적이 늘려있다.

요즘은 도서관에 CD도 있고 비디오도 있다. 옷을 안 산지는 5-6년이 넘는다. 양말도 기워서 신는다. 바느질이 너무 재밌다. 성당 바자회에 가면 한두 번 입다 만, 흔히 한물 간 스타일이라는 멀쩡한 고급 옷이 단돈 500원이다.

나는 이발관에 안 간지가 4-5년 된다. 거울보고 내가 깎는다. 머리를 깎는다기보다 민다는 말이 맞다. 이발관에 안가기로 작정하면서 지금까지 매달 2만원씩 북한어린이 돕기 기금을 냈다. 얼마 전에 대안학교 기금으로 전환했다.

관행과 남의 시선을 위한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귀농이다. 삶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는 것이 귀농이다. 자동차를 위해, 핸드폰과 최신사양의 컴퓨터를 위해, 비어있는 시간, 비어있는 공간이 더 많은 아파트를 가지기 위해 자기 인생을 소진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귀농한 농부의 삶이어야 하리다.

또 그것이 가능한곳이 농촌이어야 하리라. 그럴 때 우리는 생명의 원천인 농촌. 농업의 경제외적인 가치 즉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외칠 수 있으리라. 그런 농부들이 만드는 생명의 먹을거리들을 덥석 사 먹는 도시인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번달 초에 어느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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