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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대장 '하누만'
ⓒ 홍경선
줄다리기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나라만해도 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태인동 용지마을의 '큰줄다리기'가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밤이면 길이 40m의 줄에 수백명의 인원이 달라붙어 힘차게 줄을 당긴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고유 민속놀이인 줄다리기는 굳이 긴 역사를 따지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대 운동회때만 되면 늘상 하던 놀이였다. 또한 명절 때마다 군대에서 각 중대별로 포상휴가증을 건 최고의 대회이기도 하다.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나무기둥에 줄을 묶어 나무와 인간 모두가 쓰러질 때까지 연습하던 그시절 추억 속의 줄다리기 대회.

하지만 여기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무려 1000년 동안이나 줄다리기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니. 다름 아닌 인도의 창조설화 '바가바타-푸라나'였다.

일명 '유액의 바다 휘젓기(乳海攪拌)'라고도 불리 우는 이 힌두교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악마들과 신들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비슈누신이 싸움을 말리며 젖의 바다를 저어 불로 장수의 약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에 신과 악마들이 죽지도 썩지도 않는 불로장수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1000년 동안 젖의 바다를 휘젓게된다는 내용이다. 악마와 신들의 최초의 교섭이자 부적절한 관계를 묘사한 이 작품을 보게된 건 '사원의 도시'라 불리 우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에서였다.

▲ 사원의 도시 '앙코르왓'
ⓒ 홍경선
현존하는 종교건축물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인 210ha넓이로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건립한 '앙코르왓'은 그 규모는 물론 사원 안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부조물들의 예술성으로 인해 앙코르 유적 중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세계적인 힌두교사원이다.

사원 안의 신화나 민화를 모티브로 한 여러 부조들 중에 가장 유명한 부조인 '유액의 바다젓기'는 사원 남쪽 방면의 동쪽회랑에 무려 50m에 걸쳐 새겨져 있다.

그 구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의 재료는 '바수키'라 불리우는 큰 뱀.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이 뱀은 입에서 내뿜는 독이 너무나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참가인원은 뱀의 머리 쪽에 위치한 악마팀 92명, 꼬리쪽에 위치한 신 팀 88명, 중앙의 심판 한 명, 참관인 두 명 등 총인원이 183명에 달한다.

각 팀의 주장을 살펴보자면 악마팀은 딱히 주장이라 불릴만한 인물은 없다. 그저 92명의 아수라들이 상대팀보다 4명이나 많다는 수적우위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 신 팀의 주장은 원숭이 대장 '하누만'으로서 손오공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의리와 신의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하누만'은 힘이 장사인지라 혼자서 4인 몫을 해내고 있다. 심판의 이력 또한 화려하다. 우주의 유지 및 보존, 진리를 수호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신 비슈누. 그는 언제나 쾌할하고 자애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힌두 3대신(시바, 브라흐마, 비슈누)중의 하나이자 화신의 대명사다.

▲ 뱀의 머리를 잡고 있는 악마팀

드디어 경기는 시작되었고 비슈누의 감독 하에 양팀의 선수들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양팀모두 초반부터 힘을 쓰진 않았다. 탐색전이라도 벌이는 듯이 리듬을 타며 전후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지나치게 탐색전만 벌인 나머지 경기는 무려 1000년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드디어 지루한 소모전이 끝나고 양 팀이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힘의 각축 속에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한 뱀 바수키가 그만 입에서 거품 즉 독을 뿜어내고 말았다. 이 독이 어찌나 강하던지 선수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자 보다못한 참관인 '브라흐마(창조신)'가 또다른 참관인인 '시바(파괴신)'에게 도움을 청하자 시바는 바수키가 뿜어낸 독을 마셨다. 하지만 너무 강한 독성 때문인지 그만 시바의 목이 타들어갔고 그로 인해 목이 파랗게 변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줄이 견디지 못하고 끊어진 결과가 되어버렸으니 경기는 무효처리 되었다.

무려 1000년이란 시간을 끌어온 신들과 악마의 줄다리기 대회는 그렇게 무효로 끝나버렸지만 그렇다고 헛수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 치러진 경기인만큼 긴 시간동안 뱀줄을 휘저었으니 결국 바다는 뭍이 되었고 '압싸라'라 불리는 선녀들과 비슈누의 아내가 될 '락슈미'가 생겨났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불로장수의 영약 '암리타'까지 얻게 되었다니 결국 그들의 경기는 양쪽모두에게 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고한 신들에겐 포상으로 아리따운 선녀들이 제공되었고 차분하게 경기를 진행한 '비슈누'는 천생베필 '락슈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을 들이마신 시바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암리타'를 들이마시자 명약은 곧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고 이에 신들이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 다시금 엄청난 전쟁을 치르게 된다고 한다.

전체넓이 210ha, 높이 213m의 3층짜리 사원 '앙코르왓'

▲ 중앙에 자신의 분신인 거북이 등에 올라탄 비슈누를 기준으로 좌측 악마팀, 우측 신팀. 상단은 압쌀라무리와 락슈미가 생겨나고 있는 모습이며 하단은 바다속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 홍경선
비슈누에게 바쳐진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크메르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인 앙코르왓. 그안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부조물중의 하나인 '유액의 바다 휘젓기(乳海攪拌)' 를 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그 앞에 서서 50m나 되는 정교한 조각들이 묘사하고 있는 장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100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신화를 재현해낸 과거의 흔적은 그렇게 타임머신이 되어 나로 하여금 시공간을 뛰어넘는 환상을 맛보게 하였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1월에 시작한 동남아7개국 여행중 캄보디아 앙코르왓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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