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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참 힘들게 보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분노와 억울함에 시달렸다. 보통 때는 마음의 평상심을 나름대로 유지하고 스스로를 잘 다스리며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해결되지 못한 눌린 감정들은, 보이지 않는 가는 바람에도 되살아나는 불씨와 같아서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런 내가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이 잘 내다보이는 아파트 1층에 살게 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마른 잔디. 아침마다 눈으로 인사하며 마주하는 나무들. 철따라 색깔을 바꿔가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 나는 이미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다. 얇은 철판처럼 들끓는 내 마음을 붙들어 매줄 것은 나무들 밖에 없다.

책 속에 나오는 치아키 엄마도 역시 정원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포플러 나무에 마음을 빼앗겨 '포플러 장(莊)'으로 이사를 온다. 우리 식으로 하면 '포플러 연립 주택' 정도 될까.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치아키를 데리고.

하루 아침에 이 세상에서 없어져버린 아빠에 이어 엄마도 어느 날 갑자기 뚜껑 열린 맨홀 구멍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치아키는 새로 전학간 학교에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 앓아 눕는다.

출근을 해야만 하는 엄마 대신 아랫 층에 혼자 사시는 주인 할머니께 맡겨진 치아키. 할머니는 귀신같이 생긴데다가 낡은 가구들로 가득 차 있는 집안은 음침해서 무섭기만 하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깊은 주름, 새하얀 머리카락. 그래도 치아키는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서서히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자신를 "저 세상의 우편 배달부"라고 소개하며, 저쪽으로 갈 때 이쪽 편지를 가지고 갈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 세상에 있는 사람하고 마음이 통하려면 편지를 보내야 하며, 이미 사람들이 자기에게 편지를 맡기고 있고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편지들을 몽땅 가져갈 거라고 말씀하신다.

못 믿는 치아키. 그러나 결국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치아키. "아빠, 안녕하세요. 난 잘 지내요. 안녕히 계세요." 첫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지만 그 후 치아키는 누군가에게 야단 맞을 걱정도 없이, 또 걱정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망설일 필요도 없이 마음 속에 든 것을 모두 쏟아내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잠시 다니러 온 옆 방 아저씨의 아들 오사무와 재미있게 지내기도 하고, 포플러 잎이 떨어져 내리는 가을이면 할머니와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 모아 불을 붙이고, 이웃들이 둘러 앉아 그 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으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치아키와 엄마는 엄마의 재혼으로 3년 만에 '포플러 장'을 떠나게 되고, 다 자라서는 자기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여긴 치아키가 새 식구들을 떠나 홀로 살아간다. 그러다 전해 들은 할머니 소식. 아흔여덟로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를 뵈러 치아키는 떠나온 후 처음으로 '포플러 장'을 찾는다.

자녀도 없어 외롭고 조용하게 치러질 줄 알았던 할머니 장례식은 완전히 잔칫집이었다. 장례식에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께 그동안 편지를 가져다 맡겼던 것.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아빠 잃은 어린 아이를 위로하려는 할머니다운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온 치아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딱 한 번 써서 할머니께 맡겨두었던 편지를 읽으며, 오랜 세월 쌓였던 엄마와의 풀리지 않는 문제도 그 해결의 갈피를 잡게 된다. 남편의 죽음으로 큰 상처를 입은 치아키의 엄마가, 엄마의 방식대로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것을 치아키는 전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렇게 사람들 저마다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편지를 통해 풀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죽음이라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맺힌 것들을 '죽은 사람을 향한 편지 쓰기'를 통해 풀어나가도록 도운 것이다.

정말 그러면 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세상을 떠난 사람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그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풀리지 않는 것들, 너무도 단단히 맺혀 있어 풀기 어려운 관계들을 생각하며 한 번 편지를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할머니한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겐가, 어디엔가 맡겨 놓아야겠지만 말이다.

'포플러 장'에서 치아키와 엄마를 품어 안았던 할머니처럼, 나의 슬픔과 고통을 쓰다듬어 줄 할머니는 어디에 계실까. 그 손길을 배워야 나 역시 나이 들어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텐데, 정말 나중에 그 할머니처럼 될 수 있을까?

(포플러의 가을 POPURA NO AKI,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푸른숲,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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