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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개발구. 광저우는 상업적 능력이 뛰어난 광둥인들을 바탕으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광저우 개발구. 광저우는 상업적 능력이 뛰어난 광둥인들을 바탕으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 조창완
한국과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외자기업 정책에서 나온다. 한국은 산업화 초기 서구기업들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정책에 질려 외자기업을 기피하고 국내 재벌키우기에 치중한다. 당연히 외자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한 개발구는 마산이나 군산 등 자유수출공단과 같은 극히 한정된 곳에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재벌을 대신해 폭스바겐, 모토로라, 삼성, LG, 에릭슨 등 첨단분야는 물론이고 KFC,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까지 외자기업을 받아들여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중국 경제발전의 전반에는 외자기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모든 요소를 간과한 체 이렇게 단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지나칠 수 있으나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외자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중국과 외자기업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덩샤오핑은 76년 마오가 사망한 후 마오의 후계자로서 마오의 유산만을 집착하던 화궈펑과 5년여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여 81년에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강화했다. 하지만 중국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 것은 92년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중국 남방을 순시하면서, 개혁개방을 독려한 이후다. 이 남순강화(南巡講話)이후 나온 것이 급속한 외자유치다. 92년부터 3년만에 8백39억 달러의 투자를 받는 등 중국의 외자유치는 급속히 진전됐다. 이때부터 중국은 정부뿐만 아니라 시, 현(縣)은 물론이고 구(區) 정부까지도 외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각 지역 성장은 대부분 외자기업에서 시작됐고, 이 열기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 발전의 산파가 된 외자기업

덩샤오핑이 톈진 타이다에 남긴, '희망가득한 개발지역'을 쓴 기념비
덩샤오핑이 톈진 타이다에 남긴, '희망가득한 개발지역'을 쓴 기념비 ⓒ 조창완
2002년 2월까지 중국에 투자된 외국기업의 수는 39만4천여개에 달하고, 금액은 7567억4천만 달러로 대외경제무역부는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실제로 이용된 금액은 4011억 달러 정도다. 2002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1조 3천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에서 외자기업의 위상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외자기업의 역할은 중국 전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각 도시별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 성장의 상징인 선전(深?)이나 상하이 푸동(浦東)의 발전은 대부분 외자기업에 의한 것이다. 홍콩자본이 집중적으로 들어와 베드타운까지 겸한 선전은 물론이고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푸동의 발전도 대부분 외자기업이 이룩한 것이다. 2002년 4월까지 푸동에 투자된 외국자본은 39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고, 푸동 총생산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외자기업은 50% 이상의 재정수입과 대외무역수출을 담당하고 있으며, 하이테크분야 생산액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외자기업이 없다면 푸동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푸동 뿐만 아니라 개방이후 매년 상하이 전체 수출액의 50% 이상을 외자기업이 차지할 만큼 외자기업의 역할을 지배적이었다.

현재 매년 12억 달러 정도씩 직접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은 타이완, 홍콩, 일본 등을 이어 4위권의 투자국이었지만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이 커지면서 그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산둥반도의 칭다오, 웨이하이, 옌타이 등은 중소기업이, 톈진이나 쑤저우 등지는 대기업이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특히 삼성, LG, 대우, 현대 등이 대규모로 투자를 단행한 톈진의 경우 도시 총생산의 15~20%(시 정부 발표는 10% 가량)를 생산하고 있을 만큼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 6월까지 톈진의 외자기업은 1만5천여개로 협의된 외국인투자액은 3백80여억달러에 달한다.

선양개발구. 따리엔등 연해지역보다 조금 늦게 시작됐다.
선양개발구. 따리엔등 연해지역보다 조금 늦게 시작됐다.
상하이 푸둥이 장쩌민, 주룽지로 이어지는 화려한 정치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화려한 발전이라면 톈진의 발전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외양속에 실속있게 발전을 추진했다. 1986년 덩샤오핑이 방문해 ‘희망 가득한 개발지역’이라는 표어를 내린 이후 톈진시는 시장과 당서기를 같이 지낸 리루이환(李瑞環)의 후광하에서 모토로라, 삼성, LG 등 외자기업을 급속히 유치하면서 발판을 다졌다. 캉스푸(康師搏) 등 음료 업계도 있었지만, 이동통신 등 주로 첨단산업를 중점적으로 투자 유치했다. 중국 3대 도시에 위상에 맞지 않게 남루하던 톈진은 최근 급속히 면모를 일신하면서 베이징을 닮아간다.

외자유치 정책의 산파 개발구

톈진의 발전, 아니 급속히 발전하는 중국 도시의 정책에는 언제나 ‘개발구’ 정책이 같이한다. 톈진 발전의 산파도 다름 아닌 ‘타이다(TEDA) 개발구' 등 수없이 건설된 크고 작은 개발구들이다. 타이다는 ’투자자는 왕, 프로젝트는 생명선‘이라는 신조 하에 종합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디지털 정부 및 커뮤니티' 건설을 완료했고 공업과 서비스산업의 동시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 및 IT와 BT(생물의약산업)를 위주로 하는 개발단지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타이다와 같은 대형 개발구도 있지만 톈진만 하더라도 각 구 단위로 크고 작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야후 차이나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카테고리와 메인의 ‘상업과 경제’ 아래에 존재한다. 바로 ‘공업과 경제기술개발구’(工業爲經濟技術開發區)다. 그 아래에 이미 백여개에 달하는 국가급 개발구가 있고, 또 하부메뉴로 성별 카테고리가 있어 낮은 단계로 다시 수백개의 개발구가 존재한다. 중국 도시들이 외자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선전 롱강개발구. 선전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이후 가장 먼저 개발된 곳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됐다
선전 롱강개발구. 선전은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이후 가장 먼저 개발된 곳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됐다
중국 개발구의 역사는 중국 경제 성장의 역사와 같이 한다. 1980년 실권 장악에 거의 도달한 덩샤오핑은 광둥성 선전, 주하이(珠海), 산토우(汕頭) 및 푸젠성 샤먼(厦門), 하이난성 등에 5개 개발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는 문을 더 열었다. 따리엔, 친황다오(秦皇島), 톈진, 옌타이, 칭다오, 롄윈항(連云港), 난통(南通), 상하이, 링보(寧波), 웬저우(溫州), 푸저우, 광저우, 짠지앙(湛江), 베이하이(北海)를 개발구로 발표했다. 동남향에 있는 주요항구를 대부분 개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다. 다음해에는 창지앙 삼각주를 비롯해 주지앙(珠江), 민난(?南) 등 주요강 하구는 물론이고 허베이, 광시 등 연해 지역의 대부분에 개발구 설치를 허용했다.
90년 6월에는 상하이 푸동개발구를 비롯해 지우지앙(九江), 우한, 황스, 웨양, 충칭 등 양쯔강의 중하류 지역 대부분의 개발구를 허용했다. 92년에는 후허하오터 등 내륙지역의 개발구를 추진했다. 2000년 들어 서부대개발을 추진하면서 개방의 문제가 아닌 어디를 집중적으로 육성할 것인가가 될 만큼 개방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외자기업의 유치가 각 도시의 발전을 주도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지도층들은 앞다투어 투자유치회를 열고, 외자기업 끌어들이기에 성을 올린다.

꿩 먹고 알 먹는 개발구 육성 정책

지우지앙 개발구. 지우지앙 등 창지앙 중상류는 연해가 개발된 이후에 개방됐다. 창지앙 수운을 바탕으로 연해에 못지 않은 발전속도를 낸다.
지우지앙 개발구. 지우지앙 등 창지앙 중상류는 연해가 개발된 이후에 개방됐다. 창지앙 수운을 바탕으로 연해에 못지 않은 발전속도를 낸다.
하지만 개발구 정책이 항상 긍정적인 면만이 있을 수는 없다. 인프라의 구축없이 특혜만을 앞세운 개발구에 들어가 전력이나 통신 등 기초적인 문제에까지 골머리를 앓는 기업도 많고, 무리하게 추진한 특혜는 결국 중앙정부의 입장을 이유로 순식간에 전환되어 투자기업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구는 중국에게 실은 거의 없고, 득이 되는 방식의 투자유치였다. 가장 큰 이득은 문혁이후 사실상 기술 개발의 기반이 낙후한 중국에 자본은 물론이고 선진의 기술이 직접적으로 유입하는 더 없는 방식이었다.

대기업의 경우 부품업계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왔다. 중국기업은 차츰차츰 낮은 단계의 부품생산을 시작으로 점차 수준을 높여가면서 외자기업의 세계에 접근했다. 백색가전의 경우 이미 한국이나 일본 등 부품업체는 이미 중국기업에 경쟁할 수 없을 만큼 따라왔고, 이런 상황은 완성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개발구 정책을 통해 고용을 물론이고 기술적인 부족 분까지 채우는데 성공했다.

테다개발구는 최근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정보통신 등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테다개발구는 최근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정보통신 등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또 하나는 개발구에 대한 탄력적인 정책으로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개발구의 보통 길게는 50년에서 적게는 수년 단위로 토지 임대 계약을 맺는다. 임대조건은 대부분 투자기업에게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 될 때까지 갖가지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중국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과 도시계획 등 갖가지 이유로 변화되기 일쑤다. 2002년 9월에는 베이징시가 WTO 규정을 이유로 지금까지 면제하던 토지사용료의 혜택을 폐지나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자신들이 약속한 사한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투자를 완료한 기업을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는 일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 개발구 정책은 어쩔수 없이 중국 정부나 각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에 묶일 수 밖에 없다. 2002년 톈진에 입주한 삼성모방직은 파업으로 인해 적지 않은 곤혹을 겪어야 했다. 대기업이어서 고용보험 등 각종 후생문제를 철저히 해결했다고 자부했지만 파업이 시작됐고, 자신들의 원군이라고 생각했던 시정부도 묵묵부답이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파업은 사실상 시정부가 용인한 것이었다. 처음에 외자유치를 위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장의 입주를 허가했지만 톈진시 전체 개발계획을 위해 공해산업의 도심밖 이주는 필수였고, 이를 위해 톈진시는 교묘하게 파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우리 굴지의 대기업이 이 정도라니,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 가는 외국 중소투자자들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중국내 최고의 외자기업인 모토롤라. 여전히 중국 이동통신시장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내 최고의 외자기업인 모토롤라. 여전히 중국 이동통신시장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외자기업이 국내 시장을 점유할 것에 대한 염려를 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상하이뿐만 아니라 광저우, 베이징, 톈진, 쑤저우 등 대도시 수출의 절반 이상은 외자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록 중국시장이 외국자본에 의해 움직이지만 중국은 그다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부실하게 운영되던 국영기업 등 비효율적인 기업을 외자기업에 매각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강력한 정부의 힘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외자기업도 자국 기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경영호조로 이윤을 추구하는 외자기업들이 자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교묘히 막고, 중국 내에 재투자를 하도록 만들어 중국의 성장 요소로 작용하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자기업들도 그런 정책을 알지만 중국의 생산공장으로서의 가치와 거대한 시장 잠재력을 알기에 진입이 우선이었지, 이윤의 획득은 다음으로 둔 측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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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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