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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오버도퍼 존스 홉킨스대 교수
돈 오버도퍼 존스 홉킨스대 교수 ⓒ P. Gordon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인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는 전 주한 미대사인 그레그와 함께 지난 달 2일부터 5일까지 켈리를 대표로 한 미 대표단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당시 보고 느낀 점을 11월 10일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이것은 A4용지로 네 장이나 되는 상세한 기록으로서, 그가 개인 자격으로 참관한 평양회담의 상황을 비교적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일보>와 <월간조선>등 '보수'를 표방하는 언론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월간조선> 2001년 9월호는 오버도퍼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돈 오버도퍼는 신문기자답게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자료로 그 책을 썼다. 그의 취재 리스트는 주로 1960년대 이후 미국과 한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과 단독 회견을 가졌다. 북한 核 문제가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을 고조시켰던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제재할 뻔했다는 외교 秘話(비화)도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오버도퍼는 이 책에서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조명하고 특히 한국 동란 이후 남북한의 긴장과 대화를 중심으로 두 개의 다른 체제로 발전한 남북한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월간조선> 2001. 9.

오버도퍼에 따르면, 그들은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를 지나 평양으로 가고자 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이들의 통과를 허용했으나 부시행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오버도퍼에 따르면, 북한의 핵발언 뒤에는 켈리 특사와의 갈등과 더불어 미국의 호전적 대북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평화적 대화에 나선다면 북한도 우라늄 농축 계획을 포기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글에서 오버도퍼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시 북한의 발언을 둘러싼 북한의 대내외 상황이다. 1994년 북한이 영변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조건으로, 남한과 미국 그리고 일본은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건설해주기로 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미국은 경수로 발전소가 완공되기 전까지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북한에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이 경수로 완공계획이 5년 이상 지연되고 있고, 이로써 북한은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오버도퍼는 밝히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악의 축" 발언이 터져나왔고, 이에 따라 북한은 실제로 미국의 위협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오버도퍼는 북한의 핵발언을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 1994년 핵논란 당시 북한이 경협을 포함한 여러 조건을 요구해온 것과는 달리, 이번에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북-미의 평화조약 체결이라는 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오버도퍼의 저서 <두 개의 한국>
오버도퍼의 저서 <두 개의 한국> ⓒ 베이직 북스
현재 한국 보수언론들이 북핵 문제 해결을 "압박"과 "경협 중단"으로 맞서야한다고 밝히고 있고, 이것이 한국에서 지배적인 입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미국과 북한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지켜보아온 한반도 전문가의 견해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압박정책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를 반목과 대립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일부 인용해 보기로 하자.

"내가 평양회담을 통해 분명히 느낀 점은 한반도의 새로운 핵위기는 대화가 시작될 때 해결될 것이라는 점이며, 만일 부시 행정부가 압박정책과 험악한 수사학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핵위기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만난 북한의 관리들은 이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으며, 비록 간혹 미국의 발언과 태도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시종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들은 우라늄 농축계획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은 그럴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다른 우방들이 보여준 태도를 보인다면 말이다. 북한은 평화적 문제해결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만일 이 평화적 문제해결의 길이 미 정부에 의해서 거부된다면,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 경우, 짐 켈리가 한 달 전 터뜨린 폭탄선언은 한반도의 새롭고 더욱 위험한 대립의 전조가 될 것이다."

- 단 오버도퍼, "개인자격으로 동석한 평양회담 참관기," <워싱턴포스트> 11. 10.


오버도퍼가 밝힌 이야기들은 한국언론 특파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명백한 "특종감"이었다. 워싱턴에 포진하고 있는 한국의 특파원들이 이 좋은 기사를 놓칠 리 없었다. <조선일보>의 주용중 특파원은 오버도퍼의 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도했다. 기사 전문을 인용한다.

"北, 美서 체면 살려주면 核폐기할 듯" <조선일보> 2002.11. 10.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돈 오버도퍼(Oberdorfer) 국제대학원 교수는 10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체면을 살릴 수 있도록 조정이 이뤄진다면 미국과의 갈등을 끝내기를 원하며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도 포기할 것이라는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도널드 그레그(Gregg) 전 주한미국대사와 함께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은 미·북 간 제네바 합의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몇 주 전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 파기' 선언을 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고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주장했다. (朱庸中 특파원 midway@chosun.com)


그는 오버도퍼의 글의 요점 대부분을 생략하는 대신 "우라늄 생산계획을 포기할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would give up its uranium program)"라는 부분에 "...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삽입해 넣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북한이 현재 핵무기 개발을 진행중인 것처럼 오해할 여지를 제공했다.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용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 <동아일보>의 11월 11일자 기사에도 의도적인 축소와 왜곡 행태는 그대로 드러난다. 기사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월초 訪北 오버도퍼 "北 체면 살려주면 核포기" <동아일보> 2002. 11. 11.

2∼5일 북한을 방문한 돈 오버도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0일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을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체면을 살릴 수 있도록 조정이 이뤄진다면 미국과의 갈등을 끝내기를 원하며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는 분명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와 함께 그는 9시간 이상 진행된 평양 회담에서 북한의 고위 외교관과 군장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옹호하고 동시에 미국의 개입을 호소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합)


그러나 실제로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북한 핵폐기 용의있는 듯"이었으며,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켈리 특사와 북한대표부와의 갈등 등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 계획"이라는 원문에 없는 문구를 삽입해 넣은 것은 <연합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미국 내에서조차 폭넓게 확산되어가고 있는 이런 온건한 입장을 보도하지 않은 채, 핵문제의 평화해결과 중유공급을 제안했던 정세현 통일부 장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압박" 이외에는 어느 것도 허용되지 않는 '신매카시즘'의 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대중지에도 실리는 이런 온건한 주장마저 용인되지 않는 억압적 담론 상황에서 독자 나름의 판단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비록 오버도퍼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언론이 의도적으로 배제해온 다른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아래에 <워싱턴 포스트>에 실렸던 기고문의 전문을 번역해 수록한다.

개인자격으로 동석한 평양회담 <참관기>
돈 오버도퍼의 <워싱턴포트스> 11월10일자 기고 전문

평양, 북한

북한 외무성의 제 2회의실에는 번쩍이는 티크목 탁자가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고, 그 위의 벽에는 북한을 건설한 김일성의 사진과 그의 아들인 현 지도자 김정일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10월 3일 오후, 바로 이곳에서 미 국무부 차관보인 제임스 켈리가 폭탄선언을 했고, 이 충격은 아직도 동북아 전체를 흔들고 있다.

이 방문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부시행정부의 첫 공식회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켈리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맞아 의례적인 인사대신 비난으로써 회담을 시작했다. 켈리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비밀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고농축 우라늄은 특정 종류의 핵무기를 제조하는데 있어 핵심적 재료이므로, 이를 생산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과 남한, 그리고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와 맺은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지난 주 내가 북한에서 참여했던 특별회의에서 김계관 부상은 내게 켈리의 발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켈리의 주장을 첫 휴식시간에 상부에 보고했으며, 이는 북한외교부를 분노시켜 자체 내부회의를 소집케 했다. 북한 고위관리들의 철야 회의가 끝나자 이번에는 북한측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북한 외교부의 최고실력자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켈리와 미국 대표단에게 고립된 국가인 북한은 미국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 대표단은 자체적으로 논의를 한 끝에 북한측의 발언을 켈리의 추궁을 사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제는 북한의 예정치 못한 발언에 미국이 소스라치게 놀랄 차례였고,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는 문제도 미국의 몫으로 남았다.

이로부터 한 달 후, 양국 모두는 교착상태에 머물고있는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 핵계획을 철회해야만 미국과 평화적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북한이 그러지 않을 경우 압박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의 적대감이 북한 핵계획의 원인이라고 강조하며 대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양국의 반목의 골이 깊어질 경우 이제까지 통제해온 핵프로그램의 끈을 하나 더 늦출 준비를 하고 있다.

켈리의 방북 후 며칠이 지났지만, 미국의 어느 누구도 북한 외교부의 제2회의실에 앉아 이 교착상태의 해결을 논하려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 나는 도날드 그레그를 대동하고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레그는 전 부시 대통령 하에서 남한 대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뉴욕에 있는 한국학회의 회장으로 있다.

아홉 시간이 넘는 회담을 통해 우리들은 북한 외교관들과 군 관계자들이 자국의 대응을 변호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이 새로운 자세로 대북관계에 임해줄 것을 간청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받은 분명한 인상은, 북한이 갈등을 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북한을 궁지에 몰지 않는 한에서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이 우라늄 생산계획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이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유지되어온 군사력의 균형을 깨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한에 3만 7천 명에 가까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다면 동북아의 다른 나라들, 예컨대 남한, 일본, 대만도 이에따라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동북아시아를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의 원자폭탄은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보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더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켈리의 대표단과는 달리 그레그와 나는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우리들의 참가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우리들이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를 통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는 미국이 이끄는 유엔사령부에 의해 감시되고 있고, 심지어 북한마저 이례적으로 비무장지대 통과를 허용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우리들은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고, 그곳에서 다시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는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번으로 나의 평양 방문은 세번째가 되었다. 이전보다 교통량은 더 늘어났는데, 이들 대부분이 구식 전차와 일제 초기모델 승용차, 그리고 자전거들이었다. 내가 1991년 <워싱턴포스트>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자전거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텐트 모양의 가판대에서는 사탕과 과자, 그리고 그밖의 다른 상품들을 팔고 있었고, 이로써 북한이 지난 7월 발표한 경제개혁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광차 둘러본 평양 외곽의 들판은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버드나무가 심어진 강둑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상주외교관 말에 따르면, 하루에도 여남은차례씩 전기가 나가곤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공관들은 전력난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북한의 핵무기 논란 이후, 미국의 후원하에 남한과 일본이 비용을 조달해서 경수로 핵발전소를 2003년까지 건설한다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그에 대한 대가로 영변 핵발전소를 폐쇄했다. 영변 핵발전소는 발전시 플루토늄이 부산물로 생산되는 발전양식으로, 플루토늄은 또 다른 핵무기의 원재료이기도 하다. 미국은 경수로 원자로가 건설되는 동안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북한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경수로 계획은 예정보다 5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완공여부도 불분명한 상태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이 합의를 미국이 북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면서도 미의회는 매달 중유수송에 쓰일 비용책정에는 반대하지 않았는데,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풀루토늄 생산시설을 재가동할 구실을 제공해서 또다시 핵논란이 야기된다면 결국 비난받는 건 미국의 입법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할당된 재정은 내년 1월까지의 수송분 뿐이다.

현 부시행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를 포함해 1994년 합의의 반대파들은 이번에 불거진 북의 핵발언을 1994년 합의를 파기하는 황금의 기회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이 켈리에게, 그리고 이후의 후속 발언을 통해 미국의 위협이 합의를 "무효화시켰다"고 선언한 것 역시 이런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비록 부시대통령이 1994년 합의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지만, 몇 주 전에 행정부가 합의 파기를 선언하려는 것을 개인적으로 말렸다는 후문이다.

나는 강석주 부상에게 1994년 조약시 북한의 최고결정자가 누구였으며, 그 조약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 조약이 "한오라기 실에 매달린 듯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록 그 조약이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그 조약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미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한다면 그 위태로운 실은 끊어져버릴 것이고 그 조약은 무효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94년 조약에 의해 폐쇄된 영변의 플루토늄 시설은 우라늄 농축 계획보다 훨씬 빨리 핵분열성 물질을 제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 한 개의 폭탄을 제조하는 데 충분한 재료를 생산하는데에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이 1994년 조약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북한은 현재 100개 가량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추산이다.

평양에서 가진 회담에서 켈리가 만났던 북한 외교관과 이찬복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는 부시 행정부의 호전적인 수사학을 비난했다. 그들은 자신의 국가를 "악의 축"의 하나로 이름 붙인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계획하고 있는 바의 "정권교체" 작전을 북한을 상대로 강행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미국의 공격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카키색 제복 상의에 일곱 줄의 종군기장을 단 이찬복 상장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들은 노예로 무릎꿇지 않고 맞서 싸우겠습니다."

북한 대표부는 비밀시설에서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지 않느냐는 켈리의 추궁을 명백히 사실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인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취한 조처가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에 대한 대응이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북미간의 정치적 분위기가 지금보다 원만했던 클린턴 행정부시절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계획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미국 관리들의 비판이었기에 우리들은 이 사실을 북한 대표부에게 언급했다. 그러자 북한측에서는 부시가 집권하기 전까지 북한이 핵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정책을 채택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또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긍정도 부정도 않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측은 당시 회담에서도, 그리고 10월 25일 입장표명시에도 우라늄 농축계획의 폐기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바,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을 위한 북-미 평화협정을 재차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이 누차 반복해서 요구했던 것은 북한의 안보를 위한 미국과의 평화조약이었다.

북한측은 만일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미국에 대한 안보위협 역시 철회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우라늄 농축계획을 철회할 뜻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기존의 조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우라늄 농축계획을 포기해야만 새로운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켈리는 내가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의 문제이지, 어떻게 협상을 조율하거나 이미 쓰여진 조약을 다듬을까의 문제가 아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북한이 모두 교착상태를 해결하려는 "상호동시적 형태의 조처"라고 말했다.

내가 평양회담을 통해 분명히 느낀 점은 한반도의 새로운 핵위기는 대화가 시작될 때 해결될 것이라는 점이며, 만일 부시 행정부가 압박정책과 험악한 수사학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핵위기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만난 북한의 관리들은 이 상황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비록 간혹 미국의 발언과 태도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시종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들은 우라늄 농축계획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은 그럴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다른 우방들이 보여준 태도를 보인다면 말이다. 북한은 평화적 문제해결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만일 이 평화적 문제해결의 길이 미 정부에 의해서 거부된다면,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 경우, 짐 켈리가 한 달 전 터뜨린 폭탄선언은 한반도의 새롭고 더욱 위험한 대립의 전조가 될 것이다. / 번역 강인규 기자

덧붙이는 글 | 돈 오버도퍼는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특파원을 지냈으며,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의 폴 니체 고급 국제학 대학원(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교수로 있다. 한국 관련 저서로는 <두 개의 한국: 현대사> ("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 Basic Books, 199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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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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