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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은 권정생 선생의 <마루 밑 센둥이>란 동화책에서 따온 것이다. 부르주아의 집에서 자라는 강아지와 연애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강아지 센둥이의 이야기는 그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그는 센둥이를 굳이 ‘사회주의 강아지’라 불렀다
그가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은 권정생 선생의 <마루 밑 센둥이>란 동화책에서 따온 것이다. 부르주아의 집에서 자라는 강아지와 연애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강아지 센둥이의 이야기는 그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그는 센둥이를 굳이 ‘사회주의 강아지’라 불렀다 ⓒ 김조영혜
서동진, 동성애자 대표선수?

97년 그가 “나는 동성애자”라고 커밍 아웃을 했을 때, 그는 ‘스타’가 되어 버렸다.

“그 때 난 별스럽게, 새롭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동성애자란 사실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으니까. 그런데 온 나라가 법석을 떨더라구. 가만히 보자 하니, 가소롭기도 하고 유치하고 방정맞기도 하고. 한편으론 내가 스타가 되다니 ‘큰 일 났네’싶었어.”그가 ‘동성애자 대표선수’가 되면서 그를 향한 비판도 가해졌다.

“그 때 오해를 받았던 것이 엘리트주의예요. 공부 많이 한 대학원생이 어려운 말로 동성애 얘기를 하니까,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게이, 레즈비언은 소외된다는 거야, 맞는 얘기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언어를 만들고 있는 집단, 진보적 지식인을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거예요.” 그는 당시를 ‘동성애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동성애자들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커뮤니티에서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가 된 자신들의 인간적 불행을 서로 다독일 뿐이었다. 정치적으로 동성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란 물음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적 게이”

서동진씨는 단순히 팔자가 나빠서 동성애자가 됐다고 여기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나는 왜 동성애자가 되었을까, 나는 동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와 성정체성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라고 묻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타락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지, 동성애자로 불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동성애자란 말이 생기고 동성애자를 특수한 인구집단으로 분류할까.” 그의 답은, “이성애를 유일하게 지배적이고 합법적인, 바람직한 성 관계, 성 정체성으로 규정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남자몸 남자, 여자몸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몸 여자인 성별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며 사회에 따라 성 정체성의 문제가 성별로 드러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타일랜드의 카토이, 필리핀의 바클라, 인도의 히드라는 남성의 몸을 가진 채 여성으로 살아가는 성별을 뜻하는 말이다.

서동진씨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지금과 같은 성의 분류가 생겨난 걸까’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때 병을 앓아 체형이 엽기적으로 변했다는 서동진씨. 그의 표현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만기였는데, 골병든 폐병쟁이로 변했다”고 한다.
대학 때 병을 앓아 체형이 엽기적으로 변했다는 서동진씨. 그의 표현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만기였는데, 골병든 폐병쟁이로 변했다”고 한다. ⓒ 김조영혜
동성애자를 생산해내는 자본주의 체제

그가 동성애 운동을 동성애자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규정짓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동성애자가 시민으로서 권리, 고용의 기회 평등, 사회보장의 권리, 결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너머의 정치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운동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생산해내는 사회체제를 바꾸어내는 운동인 것처럼, 게이 레즈비언이란 소수화된 성정체성을 만드는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게이 레즈비언이란 말보다 ‘기묘한’이란 뜻을 가진 ‘퀴어’란 말을 좋아한다.

“퀴어는 변태들, 성매매 피해여성, 마사지사, 미혼모, 사드마조이스트, 물론 게이, 레즈비언도 포함돼. 기존 성체계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타자들이라는 거지.”

그는“자본론 백 번 읽어봐, 동성애자의 ‘동’자도 안 나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성정체성은 왜 차별을 받는가가 아니라, 왜 이러한 정체성이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하면 우리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성 정체성이란 개념을 타파하지 않은 채, 자기 성 정체성을 긍정하고 맘만 바꿔먹고 사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덧붙여 그는 “우릴 범죄자로 보지 마세요, 하면 뭐해? 우리 중엔 범죄자 없나? 정상적 시민으로 자신을 규정하려는 그‘정상성’에 저항해야 해.‘그래, 나 변태다. 이 인간들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공화당 게이, 민주당 게이, 공산당 게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동성애자가 존재하고 동성애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을 “급진적 게이, 사회주의적 게이”라고 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동성애자에게도 가족은 있다
“형수님, 잘 지내세요?”
“어머, 삼촌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언제 결혼하실 거예요?”
“그럼요, 해야죠. 좋은 남자있으면 소개시켜주세요.”

그와 형수의 전화 통화는 늘 이런 식이다.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커밍 아웃 후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다. 그도 예외는 아니라서, 작은 부딪힘은 일상이 되어 있다.

“나는 운이 나빴어.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학원 다닐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 동성애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오히려 가족갈등이 줄어들었으니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지 못한 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가족은 있다. 7년 째 동거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동네 가게 아줌마가 버린다고 해서 데려온 강아지 ‘센둥이’도 있다. 그는 7년째 같이 살다 보니 열정이고 뭐고 다 식어버렸다면서도 “난 내가 바람둥이인 줄 알았는데, 보수적인가봐. 하긴 그 친구가 나 바람날까봐 군대에서도 하루에 열 번씩 전화를 했다니까”하며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친구’가 아직 학생이어서 자신이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며 “나한테도 안식년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 친구가 졸업하면 자기가 돈 벌테니 그러라고 하는데, 제발 그랬으면…”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 가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없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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