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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의 영웅 노지심을 소재로한 조각상.
수호지의 영웅 노지심을 소재로한 조각상. ⓒ 조창완
중국을 여행 다니면서 끊임없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우리는 흔히 삼국지라고 호칭)다. 난징, 쑤저우, 지우지앙(九江), 창사, 허저(荷澤), 징저우(荊州), 이저우(翼州), 웨양(岳陽), 청두(成都) 등 중국 중남부에 위치한 대부분의 도시는 삼국지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지명들이다. 물론 상당수는 지명이 바뀌었지만 몇 개의 도시는 이름도 같아서 그런 느낌을 더욱 깊게 한다.

물론 유비를 중심으로 모시다가 일반인들이 제갈량을 더욱 사랑해 제갈량의 호를 딴 청두의 무후스(武候祠), 유비가 숨을 거둔 산샤의 바이티청(白帝城), 헤게모니 쟁탈의 판도를 바꾼 ‘적벽대전’의 현장인 치비(赤碧) 등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여행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마라. 삼국지를 세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더불어 세상을 논하지 마라” 등 격언이 있다. 즉 삼국지가 야망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지략을 키우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삼국지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자주 만들어진다. 물론 거대한 스케일로 인해 최근에 촬영된 적은 없지만 중국 드라마를 VCD로 판매하는 가게에 가면 다양한 삼국지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

저우싱치가 주연한 영화 대화서유. 중국 영화계의 고전으로 자리했다
저우싱치가 주연한 영화 대화서유. 중국 영화계의 고전으로 자리했다 ⓒ 조창완
삼국지의 인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인물은 당연히 제갈량이다. 조조를 섬기다가 후에 배반하고 진(晉)을 세운 사마의와 달리 유비의 아들 유선을 끝까지 모신 제갈량을 충신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가장 숭앙받는 인물을 꼽으라면 관우다. 하지만 관우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좀 특수한 데가 있다. 관우는 유비가 익주(益州)를 공략 때 형주(荊州)에 머물면서 동쪽에 있는 위와 오의 침입을 막다가 조조와 손권의 협격(挾擊)을 받아 죽음을 당하였다. 하지만 관우는 죽은 후 강한 혼령의 힘으로 조조군 등을 괴롭히는 등 사후에도 염력이 인정되어 중국인들의 숭앙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송나라 이후에는 그를 황제의 반열에서 모신 관제묘(關帝廟)를 세우는 문화가 중국 전반에 퍼졌다. 그후 더욱 특이한 것은 그가 초기에 무신(武神)에서 재신(財神)으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음식점에는 대부분 계산대의 뒤쪽이나 입구에 관우를 재신으로 모시고 있다.

삼국지가 거대한 스케일과 기기묘묘한 이야기로 독자를 유혹한다면 수호지는 108 영웅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수령인 송강(宋江)을 중심으로 양산박(梁山泊)을 만들어, 조정의 부패를 비판하고, 관료의 비행에 대항해 민중의 갈채를 받는 이야기다. 역시 원말명초의 인물인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나관중이 손질한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중앙정부의 부패에 대항하는 민초들의 삶을 박진감있게 다룬 만큼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가 죽은 바이티청(백제성). 산샤댐의 건설로 섬으로 바뀐다
삼국지의 영웅 유비가 죽은 바이티청(백제성). 산샤댐의 건설로 섬으로 바뀐다 ⓒ 조창완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황실에 대항하는 만큼 약간의 금기가 있었지만 공산화 이후에는 갑작스레 중국의 최대 고전으로 추앙 받기도 했다. 노지심(魯智深)이나 이규(李逵), 무송(武松)처럼 낮은 신분의 호걸과 임충(林忠),, 양지(楊志), 송강(宋江)처럼 지주 출신이나 선비 등이 어울리는 만큼 다양한 계층의 통합을 원하고, 사회혁명을 추동하는 데는 수호지 만한 것이 없었다.

특히 고전을 탐독하기 좋아한 마오쩌둥은 게릴라 전술 등 상당 부분의 전술을 수호지를 통해 개발하고, 주변에도 수호지를 권했다. 수호지의 전반에 깔려있는 동고동락의 정신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한 소비에트 운동과 대장정(大長征)은 물론이고 문화대혁명 때까지도 주요한 사상적, 문학적 자산으로 자리했다. 특히 마오쩌둥은 무차별한 사상 폭력이 자행된 문화대혁명기에 수호지에 나온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항거에는 무릇 정당한 이유가 있다)’라는 말로 홍위병들의 행동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공산당이 혁명이 완성된 후에도 수호지를 계속해서 내세우기는 좀 껄끄러운 면이 있다. 이미 공산당 역시 서서히 권력의 기본적인 속성에 젖어들고, 이런 타성을 비판하는 민중들의 힘도 서서히 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최근에 수호지가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송된 것을 본 적이 없기도 하다.

서유기, 금병매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창작소설 탄생

원명의 교체기에 탄생한 삼국지와 수호지가 역사속에서 영웅 호걸의 이야기를 빌려와서 만들어졌다면 명대에 만들어진 ‘서유기’와 ‘금병매’는 역사보다는 문학적 감수성이 산문에 본격적으로 투영된 소설들이다.

삼국지에서 헤게모니 쟁탈의 분수령이 된 치비(적벽)
삼국지에서 헤게모니 쟁탈의 분수령이 된 치비(적벽) ⓒ 조창완
수호지는 여전히 중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재다. 올해도 대만에서 씨에팅펑(사정봉), 쩡수이웬(정수문), 위안용이(원영의), 장웨이지엔(장위건) 등 중화권 스타들이 총 출동해 수호지에 바탕을 둔 ‘지천대성 손오공’(齊天大聖 ?悟空)을 만들었는데, 중국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또 1995년 홍콩에서 만든 저우싱치(주성치) 주연의 ‘대화서유’(大話西游)는 중국인들에게 소설 서유기에 못지 않은 영화판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 인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자신이 손오공인 것을 인식하는데 주력한 이 영화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이 영화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재현하는 이를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중국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유기는 629년 30세의 젊은 승려 현장이 혼자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천축(인도)으로 불경을 구하러 갔다가 17년 만에 범문으로 된 불경 657부를 가지고 돌아와 중국 불교사에 획을 그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도 신비한 문화가 남아있는 신장을 시작으로해서 인도까지 펼쳐진 그 길에 대한 환상은 다양한 이야기를 꾸몄고, 이 이야기는 확대 재생산되다가 명나라 중엽 오승은(1500~1582)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풍부한 상상과 허구, 그리고 천재적인 창조성을 가미해 깊이있는 사회주제를 표현해낸 이 걸작으로 인해 중국 소설사에서 문학이 역사보다 약간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 특히 환상세계를 즐기는 중국인들에게 신과 마귀 등을 통해 인간사회의 여러 모습을 담은 이 소설은 큰 즐거움을 주었다.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훼옌산(화염산)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훼옌산(화염산) ⓒ 조창완
우리에게도 익숙한 3대 소설은 여전히 역사와 문학이 결합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명대 후기 소소생(笑笑生)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금병매’는 ‘수호지’의 한 부분인 반금련과 서문경의 간통이야기에서 따왔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창작적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중국 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가정 생활의 풍류와 방종에 가까울 만한 정사를 소재로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속에서 세태의 냉정함과 인간성의 추악함을 동시에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에는 조정의 간악한 세태는 물론이고 중간 관료층의 부패, 또 한량 등 하층민들의 악마적인 세계까지 잘 갈파하고 있기도 하다.

또 금병매는 소설의 대상을 개인까지 미세화 시키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대 이후 중국 소설사에는 ‘인정소설’(人情小說)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고, 현재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홍루몽이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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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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