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울진과 영주 사이에 있는 '옥방'
울진과 영주 사이에 있는 '옥방' ⓒ 홍성호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에 자리잡은 '옥방'이라는 마을. 이곳은 도심에 찌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이 필요치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곳이다. 그만큼 가슴을 뚫는 차가운 공기와 천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옥수(玉水)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또 그만큼 소외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포항-울진-봉화-영주를 잇는 도로의 옆에 자리잡은 곳. '골짜기 촌'이라고 불릴 만한 이곳은 나름대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그리고 바로 그 품안에 160-1번지가 자리잡고 있다.

작지만 큰 정이 있는 이곳, 이웃집 숟가락 갯수까지도 헤아릴 만큼 가까운 정이 있는 이곳에 명물은 따로 있다. 바로 마을 청소년들의 체력증진과 정신수양을 위해 만들어진 '옥방체육관' 태권도 도장이 그것이다.

약 6년 전에 설립된 이 도장은 이응창 사범의 지도 아래 운영되고 있다. 필자인 나도 중학교 때까지 이 도장에서 운동을 했었다. 그러기에 더욱 자랑스럽게 느낀다. 확실히 '옥방체육관'은 다르다. 여타 체육관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처음 설립할 당시, 마땅한 부지나, 건물이 없어서 초등학교 빈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분교로 격하된 후 몇 년간 사용하지 않은 건물을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수리했다. 거미줄을 걷고, 창문을 갈았다. 샌드백을 달고, 운동 기구를 설치했다.

처음 개관 당시 관원은 약 60~70명. 이웃 촌락 등에서도 호응이 대단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 20여명이 수련을 하고 있다.

폐교 위기에도 놓였던 초등학교
폐교 위기에도 놓였던 초등학교 ⓒ 홍성호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옥방체육관' 마크가 찍힌 봉고차가 학교 운동장으로 올라간다. 지금과 같은 겨울이면 아이들은 매트리스 없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시린 발을 디뎌야 한다.

난방장치나 다른 호사스런(?) 기구는 전혀 없다. 오로지 몇 십년 된 마룻바닥에 샌드백 하나 덩그러니 매여져 있다. 그러기에 더욱 소중한 한 시간이다. 각종 운동 기구들은 이응창 사범이 직접 사비를 들여 설치했다. 관원들로부터 걷은 돈은 일체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이면 여타 체육관과 달리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바로 이응창 사범이 무료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옥방교회에서 집사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일요일엔 봉고차를 몰고 몇 십킬로미터씩 떨어진 마을을 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한 가득 싣고 체육관 문을 연다. 그리고는 곳곳에 유리창이 깨어져 뼈 속까지 바람이 에이는 체육관에서 힘찬 기합으로 순수한 열정을 태운다.

이응창 사범의 노력은 과히 초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체육관을 다닐 때, 사범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내 차로 태워와서 내 시간 쪼개서 가르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때문입니다. 우리 마을을 사랑하고, 우리 마을의 새싹들인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눈물에 잠긴 그 목소리가 예전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나서 돌이켜보니 사범님과 같은 분은 정말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가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면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오른쪽 살짝 보이는 노란색이 체육관 건물
오른쪽 살짝 보이는 노란색이 체육관 건물 ⓒ 옥방홈페이지
이런 도장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소식을 접한 사람들도 '에이, 일주일에 한 번 공짜면 대강해대고 치울걸... 뭐 그리 생색을 내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태 배출해낸 유단자만 해도 약 20명이 되며 승단심사를 보러가서도 여타 도장에 뒤지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여러 심사위원들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웃 동네에서는 사범님 덕분에 대학에 붙었다면서 찾아온 분도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오후 2시다. 어김없이 집 앞으로 봉고차 한 대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는 산 아래 푸근하게 앉혀진 도장에서 힘찬 아이들의 기합소리가 들릴 것이다.

도시에서는 돈주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운동을 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100퍼센트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내일을 꿈꾸고 연마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이응창 사범이 애정을 숨긴 서슬퍼런 목청을 돋우고 있다. 미래는 청소년들에게 있기에 그의 노력은 모든 것을 잊고 혼을 태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