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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만난 비두씨.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이보다 야윈 모습이다.
지난 4월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만난 비두씨.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이보다 야윈 모습이다. ⓒ 임경환
"안녕하세요? 방글라데시 사람, 비두입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실에서 만난 비두는 "나는 괜찮다. 좋다"고만 했지만 두꺼운 플라스틱 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오랜 단식 때문인지 약간 야윈 듯 했다.

비두씨는 동료 이주노동운동가 꼬빌씨, 보호소 내에서 만난 친구 포울씨, 몬수로프씨와 함께 11월부터 보호소 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재 포울씨는 건강 악화로 단식을 멈추었지만 남은 세 사람은 열흘 가까이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보호소에서 배급한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비두는 보호소 난방 시설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냈다.

"많이 추워요. 히터가 하나 있는데 트는 시간이 보호소 사무실 마음대로예요. 20~30분 틀다 끄기도 하고. 그래도 이주노동자 친구들과 한국인 동지들이 바깥에서 열심히 싸워주고 있어서 다행이예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보호소 안에서 투쟁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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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리 말했을 뿐, 잡혀올 줄 몰랐다 "
보호소에서도 멈추지 않는 이주노동 투쟁


같은 날 농성장에서 만난 꼬빌씨.
같은 날 농성장에서 만난 꼬빌씨. ⓒ 임경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비두씨가 '동지'인 꼬빌씨와 함께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지난 4월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했던 두 사람은 이주노동자 투쟁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9월 2일 새벽 6시쯤, 경찰은 두 사람의 집에 각각 들어가 자고있던 이주노동자 13명을 끌고온 뒤 비두씨와 꼬빌씨를 제외한 다른 이주노동자는 석방했다. 이주노동운동가들은 "경찰이 두 사람을 표적연행했다"고 입을 모았고 비두씨는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잘못이 없어요. 우리 권리를 얘기하다가 잡혀왔어요. 96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는데 월급도 못 받고 노동3권도 없었어요. 손이 잘려도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죠. 당연히 할 말을 한 건데 이렇게 잡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직 나는 바깥에서 할 일이 많은데... 나가서 투쟁해야 하는데..."

비두씨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미래보다 곧 다가올 겨울 이주노동자 단속이 못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비두씨는 보호소 내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단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꼬빌씨와 함께 보호소 내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팔박자 구호'도 가르쳐주었다.

"바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하면 많은 친구들이 이해해 줬어요. 마음도 맞았고요. 사무실에서 처음에는 안 좋아했지만 계속 투쟁하니까 이제 심하게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비두씨와 꼬빌씨가 보호소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해낸 투쟁은 '불법체류 확인서명 거부운동'이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글로 된 불법체류확인서의 내용을 잘 모르는 채로 서명을 하고 '강제퇴거명령서'를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확인서명을 거부하면서 서명을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났다.

"아, 한국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었구나.
모든 노동자는 하나, 함께 싸워야죠"


지난 4월 명동성당에 설치된 외국인노동자 추방 반대 농성장
지난 4월 명동성당에 설치된 외국인노동자 추방 반대 농성장 ⓒ 임경환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도 노동운동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비두씨지만 처음부터 투사는 아니었다. 이윤주 평등노조 이주지부장은 "비두씨와 꼬빌씨는 마석에서도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공장에서 다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이 두 사람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 투쟁을 접하게 됐다.

"마석의 '샬롬하우스센터'(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공동체)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메이데이에 나가면서 천천히 이주노동자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투쟁을 해보니까 정말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우리가 가만 있으면 자본가들의 억압은 계속되지요.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두씨는 투쟁에 나서면서 한국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할 때는 한국사람들이 나쁘게만 느껴졌었다. 일을 많이 시키고 반말에 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비두씨는 "전세계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 동지들에게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고, 그리고 이건 우리 이주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주노동자 동지들에게는 지금 우리가 투쟁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에 들어올 우리 동생과 친구들도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설움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비두씨는 "보호소에서 나가 자유롭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투쟁을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졌던 친구들을 만나 2~3일 동안 바다나 조용한 데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작고 소박한 바람이 언제 이루어질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한국인 중에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한국인에게 당하고 보호소 들어온 포울씨와 몬수로프씨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포울씨와 러시아에서 온 몬수로프씨는 모두 4개월 째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살고 있었다.

아직도 선명히 남은 상처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나요"


포울씨는 면회내내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포울씨는 한국인에게 구타를 당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가 출입국관리소에 넘겨졌고 다시 보호소로 이송됐다. 포울씨의 왼쪽 뺨에는 그 때 병으로 맞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포울씨는 아직까지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받지 못했다.

포울씨는 지난 10월 독방에 3일 동안 갇혀있었다. 조선족 이주노동자가 탈출을 기도하자 보호소 측이 동의없이 시설 내 모든 이주노동자를 비디오로 촬영했고 이에 항의하던 포울씨는 전기충격봉으로 맞았다. 포울씨의 손목에는 독방에 갇힐 때 채워진 수갑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포울씨가 "왜 내가 독방에 가야 하냐"며 목소리를 높이자 면회실을 서성이던 관리자가 "잘못을 했으니까 보내지, 잘못한 일이 없으면 왜 보내나"라고 끼어들었다. 포울씨는 "내가 뭘 잘못했냐"고 분노를 터뜨리며 면회를 마쳤다.

"동생들 보고싶다. 집에 가고 싶다"

몬수로프씨가 보호소에 들어온 사연도 포울씨와 비슷하다. 수퍼에서 나오던 몬수로프씨는 술 취한 한국인에게 지갑을 빼앗겼지만 경찰은 한국인 가해자를 돌려보내고 몬수르포씨는 출입국관리소에 넘겼다. 몬수로프씨는 그 때 빼앗긴 120여 만원을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값도 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몬수로프씨의 맘을 아프게 한 것은 지난 4개월 동안 동생들에게 돈을 부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빚이 있는 몬수로프씨는 "이번 달도 돈을 부치지 못하면 동생들이 살고 있는 집도 내줘야 할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몬수로프씨는 보호소에 들어온 뒤로는 동생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몬수로프씨는 "동생들이 굶는지 먹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루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국사람들은 나쁘다"

포울씨와 몬수로프씨는 한국사람이 싫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나빠요. 보호소 관리자는 한국사람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왜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질 않나요? 관리자는 아무 대답도 않았어요."

지난 6월 '아시아의 자존심(Pride of Asia)'을 자칭하던 '대~한민국'은 지금 이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 권박효원 기자

덧붙이는 글 | 비두, 꼬빌, 포울, 몬수로프를 만납시다!

면회신청은 오전 9시 30분~11시, 오후 1시 30분~4시까지 가능합니다. 1인 당 1 사람만 면회할 수 있으며(여러 명이 한 사람을 면회할 수는 있지만 한 명이 여러 사람을 면회할 수는 없습니다) 면회시간은 30분으로 제한됩니다. 비두씨, 꼬빌씨, 포울씨, 몬수로프씨 모두 한국말을 할 수 있지만 포울씨나 몬수로프씨의 경우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지하철 금정역이나 수원역에서 제부도행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문의전화: 02-985-9061 (평등노조 이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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