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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정
'또기로딱' 1초에 15개의 프레임이 지나가는 소리예요

'또기로딱'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교복을 입고 싱그럽게 웃는 친구들을 보니 다시 여고생이 된 기분이다.

고 2, 3학년 19명이 모여 만들어 낸 영화 제목은 'Babytopia'. 모두 모이지는 못했지만 감독인 고3 두란, 캐릭터 제작과 소품을 맡았던 고2 은아, 주영, 정민, 효진을 만날 수 있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 생기발랄 여고생들은 오직 '애니메이션이 좋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팀 이름은 '또기로딱'이다. "똑딱하는 1초에 15개의 프레임이 지나가는 걸 소리나는 대로 발음해 또기로딱이 된 거예요"라고 두란이 천천히 설명해준다. 미술부 안에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하는 팀과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하는 팀이 있는데, 또기로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하는 팀이고 새 학년이 들어올 때마다 학생들을 뽑아 구성된 것이란다.

영화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또기로딱'이 국제청소년영화제에 출품해 대상을 받은 'Babytopia'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아기 백화점에 로봇 유모와 한 부부가 들어선다. 그들은 아기를 아기백화점에서 골라 사온다. 아기에게는 꼭 들려줘야 할 말이 있다. "아기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해줘야 하는 데 아기를 사온 부모는 한 번도 아기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로봇인 유모는 항상 아기에게 "아가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해준다. 아기는 로봇유모를 엄마로 알게 된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난다. 소화장치가 고장나 자동적으로 폐쇄되고 로봇유모는 불 속에 갇히게 된다. 아기는 인간 엄마에게 가지 않고 불 속의 로봇 유모에게 간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은 "영화를 통해서 상실해가는 인간미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라고 다소 진지한 표정이다.

"1년 동안 준비했거든요. 기간이 길어서 많이 지쳤었어요. 도망 다니기도 하고 인원이 많으니까 슬그머니 빠졌죠. 그래도 나중에는 사과편지도 썼어요."

주영이는 얼굴이 불거지며 멋쩍게 웃는다. 인형 제작을 맡았던 효진이는 인형들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세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은아는 "이런 게 어딨어"라며 선생님 말투를 흉내낸다. 은아가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라며 다시 해야 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고3인 두란이에게는 1년이란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어릴 때부터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일 하는 거니까 그리 힘들지도 않았고, 학업에도 영향은 없었어요"라며 얼굴에 여유가 가득하다.

'또기로딱' 친구들은 'Babytopia'를 만들던 중 우연히 대회가 있어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시상할 때 같은 학교 친구들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작이 먼저 호명되어 상은 기대도 안 했는데 'Babytopia'가 대상으로 뽑히게 되었을 땐 정말 기뻤다며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한지 말하면서도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뭉쳤다는 친구들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노력한게 눈에 확연하게 보여요. 그래서 만들고 나면 더 뿌듯하고요", "무한함. 현실이 아니니까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잖아요, 그게 매력같은 데요"라고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몇 마디로 확연히 느끼게 해주었다.

한마디해야겠어... 하고 싶은 일은

"아무래도 학생이니까 교육제도에 대해 말하고 싶은 데요. 대입이 정말 사람 질리게 만들어요. 안 미치는 게 다행이예요.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해주는게 옳은 방향같아요."

이제 수능 5일을 남겨 둔 두란이가 그동안 버텨온 날들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씁쓸했다.

"자유로운 사고보다는 일관된 목표만을 가르치고 있잖아요. 가끔은 학교 나오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어요. 정작 깨지고 변화하지 않아 더 안타까워요."

고등학생 때는 '대학만 가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친구들이 대학에 가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은아는 여유를 가지고 싶고 경영, 마케팅 쪽에서 일하고 싶단다. 조용한 효진이는 "여행을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다시 한번 클레이 애니매이션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아꼈던 대답을 해준다.

정민이는 "한 달씩 전국을 돌며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한다. 주영이는 영상과 관계 되는 일을 하면서 영화를 찍고 싶어했다. 두란이는 "수능 끝나고 영화 시사회에 많이 가고 싶고, 애니메이션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년이라는 긴 준비기간, 학업과 병행하기도 힘들었을텐데도 결국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또기로딱' 친구들의 열정이 최고상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는지.

비밀이라며 살짝 흘려주기만 한 다음 작품의 줄거리. 제목은 '별빛상자'로 한 로봇이 사람은 키가 모두 자라는데 자기는 자라지 않아 실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순수한 친구들의 웃음만큼 예쁜 작품이 나올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신문 1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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