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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감미로운 상념에 젖기도 하고 사색의 깊은 숲길로 들어서면서 계절의 변화와 함께 묻어오는 인생의 무상에 잠겨들기도 한다. 자신에게 조울증이 있나 더럭 겁을 내기도 하게 되는 명상과 성찰의 계절이다. 더불어 깨달음의 한 접경으로 다가서게 되는 계절 가을. 오곡이 무르익는 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불리고 결실이 계절이라고도 불리어 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수확과 결실의 주체여야 할 농민들이 울고 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벼 수매값 얘기만이 아니다. 수매 현장에서 건조기를 조작하여 농민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악덕 RPC(미곡종합처리장) 때문이다. RPC에 의한 농간 의혹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ㅎ 군에 살면서 올해 3만여 평 논에 쌀농사를 지은 ㅂ 씨는 매상을 하기 위해 자체 건조기를 밤새워 돌리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에 앞서 울화가 치민다. 수분함량 15%를 맞추고 있는데 몇 년째 그랬듯이 이번에도 정작 RPC에 가져가면 수분함량 17%나 18%로 판정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작의혹이 일고 있는 RPC의 수분측정

산물벼의 수분함량이 높게 나오면 당연히 수매가가 내려간다. 뿐만이 아니다. 이를 건조해야 한다며 건조비 수수료를 또 가마당 얼마씩 뜯어간다. ㅂ 씨처럼 수 만 평에 천여 가마씩 매상을 하는 사람은 앉은자리에서 수 백 만원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ㅇ 군의 농민회 간부 ㄱ 씨는 RPC 얘기를 꺼내자 언성부터 높인다. 개인 RPC들은 농민들도 아니라고 했다. 악독한 사업자들일 뿐이라고 했다. 자기네 면 RPC는 에쿠스(현대자동차의 최고급 대형 승용차) 타고 다니면서 거들먹댄다고 욕을 했다. 개인 RPC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노린 악덕 장사꾼들이 농민들 피땀까지 도둑질한다는 것이다.

추곡수매는 농협RPC와 개인RPC가 하는데 개인RPC에 대해서는 싸이로라든가 정미소 건조기 도정시설 추곡수매 대금 등에 초저리 융자는 물론 무상 보조금까지 정부에서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매 대행업체로 지정받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되므로 대자본을 끌어 들여 대행업체 지정을 받게 되면 여러 특혜를 받게 된다.

수분 1% 농간에 수천 수억원의 농민 피땀이 갈취된다

ㅂ 씨는 작년에 자기네 건조기에서 똑같이 수분함량 맞춰 갔는데도 농협 RPC로 가져간 옆집사람은 15% 판정 받았는데 개인 RPC로 가져간 자기는 18%를 받았다는 것이다. ㅂ 씨가 몇 년간 RPC에 대한 의혹을 눈덩이처럼 키워 온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RPC로 가져갔던 벼 일부를 후배가 운영하는 개인 정미소에 가져갔었는데 너무 말려 왔다고 이 정도면 자기들이 보관하는 기간 감안할 때 물을 뿌려둬야 할 정도라는 측정반응을 받았던 것이다.

이른바 양심적인 RPC로 가져가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면 단위마다 RPC 가 지정되어 있어 다른 RPC로 가져 갈 수도 없다. 이러한 RPC의 독점적 지위가 농간을 부채질하는지도 모른다.

ㅈ 군에 사는 역시 농민회 회원인 또 다른 ㅂ 씨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 농가의 건조기 수분함량 측정에 대한 정확도는 믿어도 된다는 것이다. 벼가 건조기에 들어가면 최소 40회 정도 순환하며 섞이는데다가 그것도 벼의 통과지점이 다른 곳 5곳에서 다섯 번씩 총 25번을 측정하여 평균값을 낸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벼의 균일성이나 측정오차의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된다.

ㅎ 군의 ㅂ 씨 얘기는 무게를 재는 저울보다 수분을 재는 습도계는 원천적으로 조작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습도계는 보정치수를 주기 때문이다. 즉, 측정오차에 대한 허용치가 0.5%나 인정되는데 RPC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벼의 수분함량은 날씨(습도)에도 영향을 받지만 기온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추워지면 당연히 벼의 밀도가 높아져 수분함량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내다 파는 벼

전형적인 소농인 시골 노인네들이 겨우겨우 날 잡아 경운기에 싣고 멀리 면소까지 가져 온 나락을 웬만해서는 다시 싣고 갈 리가 없다. 수분판정이 맘에 안 든다고 되돌아간들 달리 처분 할 데도 없다.

농가 빚은 독촉이 심하지 수매해서 준다고 돌려 쓴 사채도 만만찮은 농가에서 벼를 마냥 창고에 쌓아 둘 수도 없다. 말린 나락을 손으로 한번 잡았다 놔도 손에 있는 땀이 묻어 수분함량 1-2%는 쉽게 변동이 생긴다. 뻔히 알면서도 허공에다 삿대질 한번하고는 체념한다.

처음부터 자포자기인 상태로 죽은 자식 내다 버리듯 실어 나르는 벼 가마들이 RPC에서 농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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