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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다음 날 짱아(오른쪽, 왼쪽은 인형)는 떠나갔다.
이 사진을 찍은 다음 날 짱아(오른쪽, 왼쪽은 인형)는 떠나갔다. ⓒ 황종원
병든 짱아를 허벅다리 위에 놓고 두 팔로 껴안았다. 숨이 거칠다. 아내는 눈 가득 눈물을 담은 채 짱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짱아야, 잘 가. 좋은 데 태어나. 병들지 말고. 잘 가. 잘 가거라."
짱아는 듣는지 마는지 꼬리조차 흔들 기운이 없다.

학교에 가다 말고 딸아이는 두 번이나 집에 들어왔었다.
"짱아가 아픈 것이 체해서 아픈 건지 몰라. 정말 죽을 지경으로 아파서 어떻게 할 수 없는지 확실하게 알아서 해야 해요."

간절한 그 맘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그런 상태라면 내가 최후를 생각하며 병원으로 나설 채비를 안 했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몹시 나빠지더니 간밤에는 물도 못 찾아 먹고 먹이도 먹지 않았다.

한 주먹 먹이를 먹고도 게걸스럽게 또 보채던 녀석이 먹거리를 거들 떠보지 않았다. 내가 먹이를 조금씩 먹여주니 마지못해 먹었다. '아빠가 먹여주니 그 정성으로 먹겠어요'하는 듯이.

밤새 힘들어하는 녀석을 보다 못한 아내는 짱아 옆에 자리를 깔고 간병을 했다. 녀석은 오줌 싸고 똥싸며 토하다가 온몸을 떨었다. 혈당이 높아지면 오는 증세라지만 행여 추울까하여 밍크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나를 깨웠다. 나는 걸레를 들고 휴지를 챙기며 녀석의 뒤처리를 했다. 거실과 방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밤새 짱아를 지켰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었다. 짱아는 제 몸을 더 가누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버린다. 이제 고비가 왔다.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녀석이 너무 힘들어 한다.

8년 세월 동안 짱아는 우리 가족의 막내였다. 외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부모 자식간에 함께 할 대화를 만들어주었고 집안에 웃음을 선사했다. 긴 밤, 쓸쓸한 시간을 지켜주던 동무였다.

짱아에게 가끔 손이 물리면서도 잠자리에 끼고 자던 아들에게, 병들어 마르고 털까지 흉하여 도저히 보아주지 못할 몰골의 짱아를 "너는 왜 이렇게 예쁘니"하던 딸에게 아내는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짱아를 보는 시간은 아침까지'라고 말했다.

집안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아이들은 이다지 서러워하지 않았다. 딸아이는 제방을 드나들며 몇 번을 울었는지. 아들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있었지만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겨우 8kg이 나가는 짱아를 나는 품에 안고 집을 나섰다. 짱아가 우리 집에 온 지 8년이 되었다. 무슨 운명의 손길인지 짱아는 내 품에 안겨 함께 살려고 들어오던 날에, 다시 내 품에 안겨 멀리 떠나려 밖으로 나가게 되다니. 불과 10일 전만 하여도 녀석이 활기차게 걸었던 길을 이제는 제 발로 한 발자국도 걷지를 못한다.

가축병원에는 먼저 온 개 환자들이 있다. 다 큰 개를 끌어안고 있는 나를 보고 아줌마들이 궁금하다. 안락사를 시키려 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마치 자기 개가 죽어가는 것처럼 눈시울을 붉힌다.

한참을 기다려 짱아는 진정제를 맞았다. 다시 혈관에 다른 주사약이 들어갔다. 짱아와 우리가 이별을 맞는 주사다. 짱아는 눈을 뜨고 혀를 빼고 누웠다. 눈을 감기려 해도 감기지 않는다. 혀를 넣으려 해도 넣어지지 않는다.

죽은 개를 처리하는 데는 kg당 8천원이 든다. 짱아는 8kg으로 6만4000원과 안락사 주사 비용 1만원이 든다. 처리는 허가업체가 수거해서 일정량 주검들이 모이면 한데 모아 소각을 한다고 했다. 이대로 어디에 가서 한줌 연기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기르던 녀석, 내가 알아서 녀석을 가지고 가마 했다. 체온이 아직 따뜻하다. 들고 간 배낭에 짱아를 넣고 둘러멨다. 묵직한 녀석의 존재가 내게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내가 매일 가는 동산으로 갔다. 미리 보아두었던 양지바른 자리에 땅을 팠다. 나무 뿌리는 톱으로 자르고, 흙을 파고 돌을 고른다. 묻을 만큼 구멍을 팠다. 신문지 여러 장을 두텁게 깔고 백지 전지로 짱아를 싸고 다시 신문지를 얹고 흙을 덮었다. 발로 밟는다. 뭉글 뭉글한 느낌이 짱아 맨몸을 밟는 느낌이다.

꼭꼭 밟아야 하는데... 나 혼자 한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슬프다. 녀석이 가족과 함께 했던 많은 날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방금 한 시간 전까지 살았던 녀석을 죽여서 땅에 묻는 기분이 처참했다. 작은 무덤이 만들어졌다. 나는 무덤을 떠났다. 다시 돌아보며,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 또 오마. 내일 또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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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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