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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재민도 아닌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비닐덮고 잠을 자고있는 주민들.< 대전광역시 중구청앞 인도>
ⓒ 박현주
10월 23일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기온은 절기의 이름에 충실한 탓인지 영하로 뚝 떨어졌다. 손발이 시렵고 대낮에 부는 바람에도 칼날이 돋친 듯하다. 용두동 철거민에게 바람은 더욱 매섭다. 노숙을 하는 그들에게 금세 다가온 추위보다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더 큰 고통이다.

2년간 투쟁을 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정들어버린 이웃들이 곱은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저녁 찬거리를 함께 다듬으며 서로를 위로해준다. 그렇다고 해도 노상에서 지내야하는 그들의 24시간은 너무나 힘겹다.

용두동 철거민 차세순(64 여)씨는 "70·80대 노인들이 병이 날까 가장 걱정스럽다. 철거당할 때 옷 한 벌 건진 것이 없다"며 중구청 건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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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지 하나, 가구 하나 못 건져...

▲ 아무런 대책이 정말 없는 것이냐며 울분을 터트리는 차세순씨
ⓒ 박현주
"설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술 줄 누가 알았어요? 집에 있던 가구며, 세탁기며, 컴퓨터며... 다 잃어 버렸어. 옷 한 벌 못 꺼내고 숟가락 하나 못 건졌어. 몽땅 다 부셔놓고는 그 가구손실금 못해주겠다니 원 말이 안 나와. 싸움 전에는 보험회사를 다녔는데 수입이 괜찮았어. 데모하러 다니느라 2년간이나 돈을 못 벌었지. 지금은 너무 궁색해. 가족 간에도 자주 싸우고..."

염홍철 대전시장이 주관한 지난달 '금요민원실'에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는 듯했으나, 그 후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 원인은 주공 측에서 금요민원실에서의 면담 내용과는 달리 가구훼손금과 생업손실금 보상이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수용단지 입주 주민도 42가구 중 24가구만 허용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42가구에게 주어진 가수용시설은 고작 콘테이너 박스 3개

▲ 42가족이 함께 들어가서 살라면서 놓고간 콘테이너 박스 3개.....
ⓒ 박현주
날씨가 추워짐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시위가 계속되자, 중구청 측은 가수용단지를 짓기 전에 들어갈 임시수용시설로 주거용 콘테이너 박스 3개와 부엌용 콘테이너 박스 1개, 간이화장실 1개를 용두동 사업지구 안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마저 주민들이 거부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날은 추워지는데 보일러도 없고. 우리 조야연 대표도 감옥에 아직 있고, 정주권 보장도 불확실하고... 게다가 42가구가 3칸에 어떻게 다 들어가서 살아요?"

이에 중구청 도시개발과 담당자는 "구청이 임시수용시설로서 설치한 콘테이너 박스는 현재 노숙하는 주민들만을 위한 것이며, 계속 들어갈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주민-주택공사간의 보상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노숙을 해결할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검토하겠다는 뜻이었지 약속은 아니었다...'

▲ 길거리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주민들
ⓒ 박현주
대한주택공사 대전충남지사의 '용두동 주거환경개선사업' 담당자는 금요민원실에서의 가구훼손과 생업손실금 보상에 대해 "검토를 하겠다는 뜻이었지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며 "공대위 측에서 일괄타결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소액의 보상가가 책정된 주민이 용두동에 짓는 공동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며 "법에 보장된 것 이외의 것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하여 노숙을 계속할 경우, 특별한 대책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김동중 철거민공대위 집행위원장(32 남)은 "핵심사안인 주민들의 재정착 가능성 여부가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시수용시설이나 가수용단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핵심사안만 협상된다면 나머지는 주택공사와 대전시, 중구청이 바라는 것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간 함께 노숙을 한 철거민공대위 집행위원인 임원정규(24 대전여민회 간사)씨는 "젊은이들도 하루이틀 노숙을 하면 몸이 뻐근한데,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100일 가까이 노숙하는 것은 초인적인 일"이라며 대전시, 중구청, 주택공사에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용두동 사태의 갈등의 핵심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 차이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 시각차는 2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이 이제는 정말 견디기 힘드는데....노인과 환자가 대부분인 이들에게 따뜻한 방 한 칸 주기가 이렇게 힘든 것인가?
ⓒ 박현주
대전시는 최근 건교부의 지침을 받아 이후 주거환경개선사업에서는 100% 주민동의하에 사업을 실시할 것과 용두동처럼 공동주택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엔 현물보상하고 토지는 협의 매수할 것을 방침으로 내세웠다. 이 같은 지침은 그 동안 용두동에서의 사업방식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해결은 간단하지 않은가. 용두동 주민들이 바라는 것이 현물보상이므로, 용두동부터 이 지침을 적용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주택공사는 보상이 끝난 선시행 사업이라 소급 적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분간 칼바람 부는 추위 속에서 주민들의 노숙은 계속될 듯하다. 행정상 절차를 중시할 것인지, 사람의 생존권을 중시할 것인지 21세기 대전시의 역사가 어떻게 쓰여질지 두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카페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들어오셔서 격려해 주세요...

대전지역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cafe.daum.net/life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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