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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10월 3일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10월 3일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 오마이뉴스 남소연
부시행정부가 북한의 비밀 핵의혹 시설을 포착하고, 지난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특사 방문 때, 이러한 의혹을 북한이 시인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엄청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이번 의혹의 진행 과정에 따라 94년 전쟁위기를 수습했던 제네바 합의 자체가 파기되는 등, 심각한 위기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미국의 특사대표단에게 제네바 합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반핵 협정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는 "더 이상 북한과 협상을 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제기되고 있어 북한의 제네바 합의 파기를 전제로 한 '초강경기조'의 대북한 접근이 이뤄질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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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다음 조치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아직까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숀 매코맥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밤(한국시간 17일 오전)에 긴급 성명을 발표해 "북한이 실질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며, "한국과 일본 등 우방들과 우선적으로 협의하고 다음 조치로 미국 의회 의원들과도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ADTOP3@
북한이 정말 시인했을까?

일단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부시 행정부의 한 관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왜 북한이 시인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주장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북한이 이렇듯 핵개발 의혹에 대해 시인하면서, 제네바 합의 등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핵개발 의혹은 북한이 쉽사리 시인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뿐더러, 설사 시인했더라도 "반핵 협정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과의 관계를 대결 상태로 몰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이는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활발한 대내외적 개혁·개방 조치와는 정반대의 태도일 뿐더러, 자칫 미국의 군사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의 주장만 가지고 이번 사안을 판단하는데는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 특사단의 방북 직후 "켈리 특사가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북미간의 대화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켈리 등이 북한측이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켈리 등 방북단이 미국 측이 갖고 있다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을 압박하자,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제네바 합의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라고 말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의혹 제기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두고볼 필요가 있다.

천마산 우라늄 시설에 대한 의혹 제기한 듯

미국측에서 기존의 영변 핵시설외에 북한이 비밀리에 운영중인 핵시설로 지목하고 있는 대표적인 것은 영변으로부터 30km 떨어진 천마산의 우라늄 시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17일 "(켈리 특사의 방북시) 북한은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밝혀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북한이 천마산에 우라늄 시설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우라늄 시설의 '용도'이다. 미국측에서는 이 시설을 북한이 우라늄을 농축해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려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01년 하반기에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의 핵문제 전문기관인 과학 및 국제안보 연구소(ISIS)에서는 이 시설을 정밀 분석한 바 있다.

이 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천마산 우라늄 시설은 "우라늄 광석을 조제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시설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은 핵산업에 사용될 우라늄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북한은 황해북도 박천과 평산에 우라늄 정련 시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천마산 시설은 이 시설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천마산 시설을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우라늄 '농축' 시설로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이 시설은 원자력 발전용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우라늄을 '정련'하는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지역 내 우라늄 매장량은 약 2600만t으로 이중 가채량은 약 400만t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우라늄은 북한의 유력한 에너지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진위 여부를 떠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94년 위기, 98-99년 위기 상황가 대단히 흡사한 상황에 직면할 공산이 커졌다. 당장 국내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성토하는 보수언론과 야당의 비난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고, 부시 행정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북독자외교에 나섰던 일본 정부 역시 대북정책 수정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 미국의 북한 핵개발 의혹 제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 '의혹' 수준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를 기정사실화할 경우 모처럼 맞이하고 있는 한반도의 해빙 분위기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심각한 위기 상황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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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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