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정치용어가 있다. 바로 '철새 정치인'이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상황을 환유적으로 드러내는 용어가 아닐 수 없다.

두 개의 정당이란 같은 시장을 나누어 먹는 동종의 기업이 아니다. 기업이야 이윤추구를 위해 연합하기도하고 합병을 꾀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엄격한 규칙에 의한 통제를 받는다) 정당은 다른 정치적 이념과 신념, 그리고 정책을 달리하는 정치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 민주당 전용학(왼쪽) 의원과 악수를 나누는 서청원 대표. 두 사람 사이에서 웃고있는 사람은 이날 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완구 자민련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어떤 정당이 힘이 세졌다고 해서 그와 대결하는 정당에 속한 정치인의 이념과 신념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다면, 힘의 비례에 따라 이리 저리 정당을 옮겨다닐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자신과 정치적 철학및 노선을 달리하는 정당으로 언제든지 바꾸어탈 수 있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런 신념과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이들은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당적을 이리 저리 바꾸는 정치인들을 '철새'로 부르는 것은 여러 모로 부당하다. 철새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거처를 옮기지만, 이들은 탐욕을 위해 순리를 거스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이회창 집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기회주의자 훔쳐도 민심까진 못훔쳐"

▲ 민주당 전용학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니 이제는 '철새 정치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기로 하자. 혹시 아직 남쪽을 향해 날개를 펴지 못한 철새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불러주기를 원하는 이름은 따로 있다.

각기 다른 정당의 대변인이었던 전용학과 이완구가 '적진'으로 용맹하게 달려가 투항하고 고개를 조아리며 환하게 웃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하다.

국민들이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은 그들이 잘 생겼거나 인품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표방한 정치적 이념과 정책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의 선택을 조롱하면서 국민이 고르지 않은 옷으로 날씬하게 갈아입었다.

그들은 온갖 수사학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있으나, 그들의 결정이 집권욕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용학은 자신이 민주당 대변인으로 있던 작년 말,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김용환과 강창희를 이렇게 비난했었다.

▲ 자민련 이완구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용환, 강창희 의원이 그 동안 주장해 온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한나라당에 안긴 것은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추악한 배신과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배신과 야합." 전용학은 이렇게 서슬 퍼렇게 일갈한 후 일 년도 채 못되어 스스로 그 "추악한 배신과 야합"의 보따리를 쌌다.

이미 전부터 "야합"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이완구는 자민련이 "대선후보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당에 속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잡종교배를 난잡하게 되풀이하는 정치인들을 위해서 족보나 계보도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몰상식한 행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파행을 묵과하는 것은 어렵게 일구어낸 민주정당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더욱이 정치인들의 이런 반정치적이고 탈법적인 행위를 비판하고 올바른 여론을 조성해야 할 언론이 도리어 이를 감싸고 나서는 판이다.

▲ 신경무의 10월 15일자 <조선만평>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의원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어도 이렇게 '애정어린' 만평을 내보냈을까? 자신들의 탐욕에 따라 특정 정치적 행위를 비난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하는 권력놀음이 정치후진국에서는 '언론'으로 통용되는 법이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여포는 기술과 용맹을 겸비한 유능한 자로, 모든 주군들이 탐내는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두 명의 의부를 배신하고 살해한 뒤 상대편의 주군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파렴치한이기도 했다. 그는 또 다시 자신의 몸을 의탁했던 원술과 원소, 그리고 유비를 차례로 배신한다.

결국 조조 앞에 무릎꿇은 여포. 삼국통일의 열망에 타오르던 조조가 여포의 재주를 탐하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나, 조조는 그 투항한 적장을 융숭한 대접으로 맞이하기는커녕 단칼에 목을 베어버렸다. 만일 이회창이 현명한 수장이었다면, 몇 번의 배신을 거듭하고 조아리는 그 비굴한 머리를 베었어야 마땅하다. 이미 배신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전용학과 이완구가 또 다시 자신에게 칼을 겨누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전용학과 이완구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여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처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