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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0월 10일자 사설
역시 조선일보다. 한철용 소장의 폭로가 한갓 해프닝으로 끝나자, 조선일보는 이런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軍을 이 지경으로 만든 政權." 정상적인 안면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얼굴을 붉히거나, 최소한 계면쩍어 하는 흉내라도 낼 텐데, 보라, 조선일보는 다르다.

속된 말로 쪽팔려 하는 것도 이렇게 공격적으로 한다. 이런 맹구같은 측면이 바로 조선일보의 매력(?)이고, 이 매력 때문에 겉으로는 조선일보를 보지 말자고 외치는 나도 실은 매일 조선일보를 들여다 보곤 하는 것이다.

이번에 한 소장이 폭로한 것은 군에 대한 정권의 외압이 아니었다. 본인 자신이 스스로 이상 징후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누락된 보고 때문에 경계태세가 해이해진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 군의 경계 태세는 외려 격상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소장은 무엇을 폭로했을까? 한 소장은 우리 군이 북한군의 교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군이 북한군의 교신내용을 감청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용감하게 폭로한 것이다. 한 마디로 '주적' 좋아하는 저들의 표현으로 말하면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듣자 하니 이번에 군사기밀이 누설됨으로써 우리 군이 입을 손실은 막대하다고 한다. 우리 군의 감청사실 및 그 수준이 노출된 것도 문제지만, 북한군이 암호체계를 바꿈으로써 그것의 해독을 위해 새로이 막대한 시간과 재정을 투입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여튼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군기 빠진 소장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근간인 오성장군들(=병장들) 밑에서 얼차려를 받는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를 이제라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정말 안보를 생각하는 신문이라면, 한 소장이 국감장에서 난데 없이 군의 기밀을 누설했을 때, 그 말의 진위에 관계없이 일단 그를 비난했어야 한다. 군이 무슨 콩가루 집단인가? 한 소장이 군의 원칙을 모르는 훈련소의 이등병인가?

군대라는 조직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현역 장성이 정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기초적인 안보의 원칙을 사정없이 무시해 버렸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다들 한 소장처럼 행동하면 도대체 군이라는 조직이 유지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떻게 했는가? 이것을 문제삼기보다는 한 소장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 행복한(?) 경우를 기대하는 기사나 올리며 마냥 즐거워만 했다. 그러다가 정작 한 소장의 발언이 허위로 드러나자, 반성은커녕 부랴부랴 '안보 모드'로 스위치해서 누구보다 앞장 서서 더 설레발을 떤다.

"대한민국 국군이 창군(創軍) 이래 이토록 지리멸렬해버린 적이 또 있었던가."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정작 한 소장이 국회에서 홀딱쇼를 시작했을 때 이미 했어야 하는 말이다. 그때는 마냥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웬 안보 원맨쇼?

▲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은 어떤가? 아무리 정권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는 것이다. 가령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외교와 안보와 통일만큼은 정략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어떻게 했는가? 자기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안보 자체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정략적 관점에서 임했다. 요즘 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한 마디로 대통령병 환자들의 발작증세를 보는 듯하다.

한 소장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대체로 두 가지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한 소장의 이번 해프닝은 진급에서 누락된 개인적 원한에서 홧김에 저지른 짓이라고도 한다. 이보다 더 그럴 듯하게 들리는 주장에 따르면 정권 말기의 누수 현상, 말하자면 정권 교체기를 맞아 미리 야당에 줄대기를 하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경향신문이 전하는 요즘 군의 분위기이다. 진급에서 떨어진 이들은 자기들이 진급에서 누락된 게 현정권의 햇볕정책에 반대한 데에 따른 보복인사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툭하면 모든 문제를 햇볕정책의 탓으로 돌리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한심한 행태가 군 내부를 분열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저들이 좋아하는 표현대로 명백한 '이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군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정권"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평소에 보이는 그런 행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개인적 불만이 있더라도 한 소장이 감히 군의 원칙을 저버리는 만용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다 일단 터뜨리면 뒤를 봐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행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 "군은 심기일전해야 한다. 정권도 군을 더 이상 흔들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은 한 소장이 한 폭로가 사실로 드러났을 때에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지금 정작 군을 흔들고 있는 것은 군인들로 하여금 줄대기를 하게끔 동기를 제공하고 있는 한나라당이고, 이들의 이런 태도를 부추겨 온 것이 조선일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일보는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한 마디로 '한 소장의 말이 사실이면 정권의 책임이고, 한 소장의 거짓이면 정권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맹구 같은 측면이 조선일보의 매력이다.

"이런 지휘부에 충성하느니 전역하겠다." 조선일보 사설을 보니 한 소장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실은 하나뿐입니다. 정의와 진실이 불의에 위협받으면 더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조선일보 기사를 보니 한 소장은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의에 위협받는다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 한 소장은 기어이 섹시한 포즈로 입고 있던 군복을 벗으며 '홀딱 쇼'를 벌이고 말았고, 이로써 국감장은 졸지에 뼈와 살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끈한 정치 포르노의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관객 없는 쇼란 있을 수 없다. 이 관능적인 쇼를 침을 질질 흘리며 바라보고 있던 것은 한나라당이다. 광고 안 하는 나이트 클럽 없다. 이 홀딱 쇼를 총천연색 기사로 도배하여 전단을 돌린 것이 조선일보다. 이 홀딱 쇼를 다 보고 나오며 주제에 안보 설교를 잊지 않는다. "군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권."

내 참, 남들 다 눈살 찌푸리는데 혼자서 그 수준낮은 포르노를 열심히 감상해 놓고, 이 분들이 지금 우리한테 안보를 설교한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간단하다. 원래 밤무대에서 뱀쇼 같은 거 즐기는 분들이 가정에 돌아가서는 딸들에게 도덕을 훈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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