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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신약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면서 대중을 휘어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신축출이나 치유이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자를 무려 세 차례나 소생시키는가 하면,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두 번의 급식이적을 베풀었으며(오천 명과 사천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임) 바다 위를 걷기도 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예수의 기적에 관한 기사는 복음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예수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바로 이 놀라운 기적들로 인해 예수가 여느 인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로 일반에 오해되고만 것은 애석한 일이다. 예수의 기적에 과도하게 덧씌워진 권위의 무게를 덜고 예수를 구해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예수가 행한 여러 기적들에 대해 흥미로운 패러디를 가하는 소설, <기적의 시대>는 추천할 만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작가는 기적을 행한 주체인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기적의 수혜자였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 각자에게 기적이 일어난 다음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를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복음서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갖는다.

작가가 예수의 기적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는 '가나의 기적'을 회고하는 수제자 베드로의 다음 말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적도, 그분이 베푸신 수많은 기적, 가령 벙어리의 혀를 풀어 주시고, 미친 자의 정신을 돌려주신 등의 기적이 아닙니다. 왜 그런 기적이 아닌가 하면, 벙어리의 혀를 풀면 고자질하기 좋아하는, 그래서 배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생길 뿐이요,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면 호기심이 많은 자, 그래서 첩자 노릇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 생길 뿐이요, 죽은 자를 되살리면 죄인, 그래서 남의 원수 되는 자가 늘어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이여, 그런 기적은 잊어버리시오"<24쪽>

작가 소개 - 보리슬라프 페키치

유고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베오그라드 대학 재학 시절인 1948년 반정부 단체인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민주 학생회>를 결성한 죄목으로 15년 동안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6년간 복역한 뒤 1958년에야 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가 되어 소설, 희곡, 라디오 극, 시나리오 등을 왕성하게 발표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위해 1964년 영국으로 이주한 페키치는 역사의 흐름을 내밀한 갈등 구조와 독특한 문체로 형상화시킨 소설과 희곡을 통해 일약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작품으로 <아르세니에 네고반의 순례>(1970), <이카루스 구벨키얀의 비상과 추락>(1975), 4부작 <금양모피>(1978~1986), <에덴에서 동쪽으로>, <흡혈귀를 잡는 법>(1977)같은 희곡, <안녕, 동무여, 안녕> <테세우스여, 정말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는가?> 등의 라디오 극 대본이 있다. 공산당 독재와 민족주의를 다 같이 반대하는 민주당 창립자 중 한 사람인 그는, 1992년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야브넬의 기적」은 예수의 기적이 낳은 비극을 잘 묘사해 준다. 야브넬은 <정결한 성읍>인 구(舊) 야브넬과 문둥이들이 모여 사는 <부정한 성읍> 신(新) 야브넬로 나뉜 성읍이다. 에글라라는 여자는 구 야브넬에서 마을의 전령관인 여로보암과 함께 꿈같은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몸에 문둥병이 발병한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남편을 떠나 문둥이들이 모여 사는 신 야브넬로 추방당해야만 했다.

거기서 시체 씻는 일을 하는 우리야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남편 우리야는 끔찍이도 그녀를 사랑해주었으나, 에글라는 전 남편인 여로보암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길을 지나던 예수를 만났고 뜻밖에 문둥병을 고침 받게 되었다. 에글라는 그 길로 구 야브넬로 달려가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제사장에게 몸이 다시 깨끗해졌음을 확인 받고 여로보암을 찾아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인 여로보암은 대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피부의 문둥병이 나았다고 하지만, 마음에 남아 있을지 모를 문둥병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도 에글라가 완전히 고침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돌세례를 피해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신 야브넬로 쫓겨나야만 하였다. 그런데, 신 야브넬 사람들도 문둥병을 치유 받은 에글라를 받아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몸이 성한 사람과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에글라는 이곳도 저곳도 속하지 못한 외톨박이 신세가 되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예수의 기적으로 기적 수혜자가 오히려 불행에 빠진 이야기는 벙어리 메세제베일로, 맹인 바르티마에우스, 미치광이 아니아와 레기온, 창녀 막달라 마리아, 베다니 사람 라자로 등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작가는 차라리 고쳐주지나 말았으면 이토록 불행한 처지로 내몰리진 않았을 텐데 예수의 어설픈 기적이 애꿎은 사람들을 더 궁지에 몰아넣고 말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전승 외에, 한 인물에 대한 기적 전승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경우는 유례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허나, 예수와 엇비슷한 시기에 기적을 행했다는 다른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다. 먼저, 팔레스타인의 기우사(祈雨師)였던 호니(서기전1세기)를 들 수 있다. 이 사람은 마술의 원을 그려서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

이 사람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은, 갈릴리에서 서기후 1세기에 활동했던 하니나 벤도사라는 사람이다. 그는 기도할 때 뱀에 물려도 아무렇지 않았고, 기도를 해서 멀리 있는 병자를 고치기도 했으며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게다가 예수처럼 무소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서 살았고 제의(祭儀)에 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예수의 기적이 당시 사회적 정황에서 그다지 독특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내어쫓는 카리스마적 치유자들이 널리 활동하던 시대였으며, 예수의 적대자들마저도 예수가 행한 병 고치는 능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첨단 과학을 숭상하는 오늘날에도 병원에서 포기한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간혹 기적적인 방식으로 고침을 받는 경우도 있으니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기적의 수혜자들이 본의 아니게 예수의 신격화에 동원되었다는데 있으며, 복음서에 나온 기적 이야기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기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 자체부터 바꾸는 것도 중요하리라. 가령, 병을 고치는 일로만 따지자면 예수보다 요즘 일반 병원의 의사 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이 고칠 것이다.

따라서 기이한 기적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이 땅에 사는 것에 감격하고, 내 손을 펴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상의 기적들을 창조해나가는 것이 더욱 소중한 일이라 본다. 아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적의 시대

보리슬라프 페키치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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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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