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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9월 30일 민주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출범식 연설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돈 선거'를 확실하게 단절하겠습니다. 법정 선거비용을 준수하고, 모든 경비는 지지자 헌금을 통해 조달하고,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겠습니다."

노 후보는 또 출범식 마지막에 이렇게 호소했다.

"힘을 주십시오. 많은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의 힘 앞에 굴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힘있게 갑시다!"

노무현은 몽상가인가 개혁가인가. 노 후보의 '돈을 향한 도전'은 시작됐다.

법정 선거비용 준수를 향한 도전

노 후보측은 수차례 이번 대선에서부터 정치개혁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노 후보측에서 밝힌 '이번 대선에서부터의 정치개혁' 즉 '선거개혁'의 핵심은 바로 돈이다. 돈으로 사람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조직선거·동원선거·돈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것. 노 후보측은 수차례 "법정 선거비용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올 대선의 법정 선거비용은 300억이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의 법정 선거비용이 약 300억 정도였으므로 5년간의 선거인수 증가와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할 때 더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식적인 법정선거비용을 11월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정치권은 대략 350억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50억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역대 선거에서 후보들이 법정 선거비용 한도 내에서 선거를 치렀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선거전문가들은 보통 한 후보자당 법정선거비용의 수십배는 기본이고 많게는 100배까지 썼을 거라고 지적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97년 대선에서 법정선거비용(300억)의 10배면 3000억이다. 한 후보자당 그랬으니 모든 후보를 합하면 전체 선거 때 풀리는 돈은 1조가 넘는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노 후보의 '법정선거비용 준수' 주장에 대해 당내에서조차 코웃음을 치는 분위기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그 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발상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노 후보는 정말로 법정선거비용 내에서 선거를 치를 의지가 있는가. 단순한 이미지 제고 차원의 선언은 아닐까. 둘째, 과연 그렇게 해서 선거에 이길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선거는 당락이 가장 중요한 냉혹한 현실이다. 350억만으로 경쟁력 있는 선거운동을 펼 수 있을 것인가.

두가지 의문, 진짤까? 가능할까?

첫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의지가 있다'가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노 후보측의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법정 선거비용을 준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쓰고 싶어도 더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1) 노 후보가 실제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점 (2) 정치 역정에서 계속 변방을 돌았다는 점 (3) 부산상고 졸업이 최종학력으로서 특별히 몫 돈이 될 만한 학맥과 인맥 확보에 불리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권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당의 자금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여의치 않은 것이 현재 민주당의 재정을 장악하고 있는 구(舊)당파는 노 후보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 지난 10월 4일 일어났다. 당초 선대위 중하위 당직자에 대한 인선이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날 오전 유용태 사무총장은 사무처 국장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발표될 인선은 모두 무효다. 당의 재정권과 인사권은 모두 한화갑 대표에게 있다." 유 총장은 "이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5분 이내에 8층 선대위 귀에도 들어간다, 말을 가려가면서 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결국 이날 중하위 당직자에 대한 인선은 발표되지 못했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노 후보는 오히려 선거풍토 전반을 개혁하는 기회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시사평론가 이재경씨는 "노 후보는 오히려 돈선거를 안하는 것으로 확실한 차별화를 시킨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선거비용 수입·지출시 단일계좌 사용 △10만원 이상 지출내역에 대해서는 영수증 첨부 △선거비용 지출시 카드사용 또는 예금계좌입금 의무화 △100만원 이상 기부시 수표사용 의무화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회계전문가에게 선거관련 회계장부와 증빙서류 공개 △인터넷을 통한 수입·지출 내역 공개 등 시민단체와 선관위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핵심사항들을 모두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시민단체의 대선 연대기구인 '2002 대선유권자연대' 김기현 공동사무처장(YMCA 정책기획부장)은 "지난 4일 민주당 선관위 정치개혁추진위원회가 개최한 '돈 안드는 선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다"면서 "돈선거를 안하겠다는 노 후보의 의지는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대선유권자연대는 노 후보측과 조만간 대선 자금에 대한 검증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며,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할 계획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재래식 무기 vs 신무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선거 풍토에서 법정선거비용 내에서 선거를 치렀을 때 경쟁력 있는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는가이다. 노 후보측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재래식 무기와 신무기 대결론'을 펼쳤다.

"재래식 무기 업자는 재래식 무기만이 최고이고 그것이 없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무기 업자가 보기에는 우스울 뿐이다." 여기서 '재래식 무기'는 물론 돈선거를 가르킨다. 그렇다면 '신무기'는? 노 후보는 (1)국민참여선거 (2)정책선거 (3)미디어선거 (4)인터넷 선거를 내세우고 있다.

기존 선거에서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갔던 가장 큰 요인은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선거 때 조직을 유지하고 동원하기 위해 각 지구당에 1억씩만 내려보낸다고 해도 총 242억(226개 지구당 + 16개 시도지부)이다. 여기에 각종 사조직과 직능조직 등을 동원하기 위한 돈을 합하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불어난다.

이런 '돈먹는 하마'식 동원 선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는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기형적인 정당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선언은 기존 정당 사람들의 기대를 미래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봄의 참여 열기를 다시 한번…"
국민참여운동본부 공식 출범

ⓒ오마이뉴스 이종호


7일 노무현 선대위의 핵심 조직중 하나인 국민참여운동본부가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이 자리에는 노무현 후보와 정동영·추미애 본부장을 비롯해 임종석 사무총장, 김희선·이미경·이상수·이종걸·정동채·천정배 의원과 명계남씨 등이 참석했다.

추미애 공동본부장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염원을 받들어 온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중심의 선거운동을 펼쳐나가고자 한다"며 "국민참여운동본부는 이번 대통령선거를 온 국민의 축제로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운동본부는 (1)온라인의 각종 동호회를 네트워크로 묶는 '1만 동호회 네트워크 운동' (2)샐러리맨, 자영업자, 주부, 전문가, 대학생 등 20∼40대 청년들을 조직하는 '10만 청년특보단 Leading Korea 운동' (3)지난 국민경선 당시 참여했던 190여만명의 민주당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100만 서포터즈 운동'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발적 참여, 자발적 회비 납부, 인터넷 적극 활용이라는 점이다.

특히 영화배우 명계남씨가 주도하고 있는 100만 서포터즈 운동은 지난 9월 30일 선대위 발족식에 맞춰 노사모가 실시했던 '희망돼지 분양사업'을 좀더 확대하고 '(가칭) 100만 필승티켓'을 발행하는 등 '100만 참여 100억 국민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명씨는 국민참여운동본부의 부본부장으로 선임됐다.

노무현 후보는 인사말을 통해 "오랫동안, 오랫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저는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과거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방향으로 결심했습니다.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로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 이병한 기자
즉, 돈이 내려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기대하지 마라. 돈은 내려가지 않는다! 자생성에 기초하는 자발적인 갹출이 아닌 한 조직적인 보장은 없다!"

이렇게 '돈먹는 하마' 조직을 모두 자발적인 조직으로 대체한다는 것이 노 후보의 '국민참여선거' 구상의 핵심이다. 만약 이것이 실제 잘 된다면 정당 내부 주류의 교체도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이런 구상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은 바로 지난 국민경선 당시 모두를 놀라게 했던 '노사모'다. 노사모는 동원된 운동원들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노 후보측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각 지구당에 선거 때 동원되는 열성 당원이 100명씩만 있다고 치자. 전체로 치면 약 25000명. 그 정도면 선거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는다. 그런데 노사모가 몇 명인가? 약 5만이다."

그는 "돈선거를 안하겠다는 것이 조직선거 포기와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우리는 이미 조직으로 볼 때 절대 약세이지 않을 만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원선거를 하지 않으면 법정선거비용 350억 가지고 충분히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며 "그러면서도 오히려 우리가 가장 강력한 조직선거를 펼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조직이 밑에서 떠받치면서 바닥을 훑는 동안 노 후보는 미디어를 통해 차별성 있는 정책 발표로 고공전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이는 국민참여를 활성화시키는 '혈관'과 같다.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토론과 논쟁, 의견, 정책이 오가고 노 후보는 지지자 및 대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높인다. 결국 인터넷을 통해 심적·지적으로 무장한 수많은 지지자들이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오게 한다는 전략이다.

다섯 개의 선거 핵심 기구

노 후보측은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선대위를 구성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대위와 비교할 때 민주당 노 후보 선대위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국민참여운동본부·정치개혁추진위원회·정책선거특별본부·미디어선거특별본부·인터넷선거특별본부의 설치다. 이 다섯 조직이 노무현 선대위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만명의 국민참여'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있는 국민참여운동본부는 국민참여선거의 구현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젊고 개혁적이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진 정동영 의원과 추미애 최고위원이 공동본부장을, 임종석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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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운동본부는 10월 6일 20∼30대 젊은층들을 모을 '청년 특보단 리딩 코리아(Leading Korea)' 발대식을 회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고 다음날인 7일 여의도에서 사무실을 개소하고 자원봉사자 모집 작업에 들어가는 등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

선거운동의 내용을 채워나갈 정책선거특별본부는 임채정 의원이 본부장을 맡았고, 미디어선거특별본부는 미디어 전문가로 알려진 김한길 전 의원이 책임지고 있다. 인터넷선거특별본부는 국회 IT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허운나 의원이 본부장을 맡았다. 선대위는 정책·미디어·인터넷 세 개 특별본부의 활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해찬 기획본부장과 김경재 홍보본부장까지 모두 다섯명이 참여하는 PMI(Policy·Media·Internet) 회의를 신설했다.

정치개혁추진위원회는 신기남 최고위원과 조순형 의원이 공동 위원장, 천정배 의원이 총간사로 포진했다. 정개추위는 중요 현안에 대해 개혁적인 관점에서의 발빠른 대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슈 파이팅'을 하는 곳이다.

"최초로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통령"

돈 안드는 선거를 위한 노 후보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성패여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재래식 무기'에 대항하는 '신무기'의 성능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 충분하게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노 후보가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이 도전을 끝까지 밀고나가 성공한다면, 선대위 공동위원장이자 정개추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순형 의원의 말처럼 "우리 정치 사상 처음으로 대선자금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대통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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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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