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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반세기의 신화 -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삼인/1999
리영희/반세기의 신화 -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삼인/1999 ⓒ 권기봉
"그러기에 나는, 남한의 우리들이 할 일은 북한동포들을 "공산주의 지옥"에서 구해주겠다고 중세기의 십자군을 자처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남한의 우리 사회와 인간을 자본주의의 악덕에서 구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본문 272쪽에서)

요즈음 들어 우리는 각본에도 없는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 금강산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분단 반세기만의 대대적이고도 지속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고,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됨으로써 남과 북 사이에 '비무장' 길이 뚫리는 날이 코앞에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중국 단둥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신의주를 특별구역으로 지정, 본격적인 자본주의 실험에 돌입하는 장도에 들어섰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통일이 목전에 있다고 예상하기도 한다.

끝간 데 없이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가 초봄에 얼음 녹듯 스르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통일 논의가 나오는 것은 좋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반가운 소식을 넘어 과연 우리가 바라는 통일상은 어떤 것인가에 생각이 이르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느낌이 든다.

어떤 통일을 어떻게 이루고, 어떻게 그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등 구체적인 통일 논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구나' 등의 감상적인 기대감과 흥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필자를 비롯, 5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 온갖 매체에서 뱉어내는 남북 대결적인 언사들에 의해 반공사상이 '몸에 익게' 되었다. 즉 북한은 하나의 온전한 국가가 아닌 일종의 괴뢰집단에 불과하며, 공산주의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는 '주의'라고 배워온 것이다.

글쓴이 리영희는 바로 이 부분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남한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북한이 '남한화' 되는 것을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남한과 같은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를 택할 때 비로소 통일의 앞날이 보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일까?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글쓴이도 이미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남과 북이 따로 떨어져 살아온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난 지 오래다. 그런데 남한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북한이 남한화되는 것만이 통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자만과 오만의 다른 이름일 뿐이요, 스스로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대한제국은 사상의 차이와 외부의 개입 등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나뉜 채 별다른 교류 없이 지금에 이르렀고, 특히 이와 같은 반세기의 분리 상태는 남과 북 서로를 너무나도 다르게 변화시켜 버렸다.

남한은 자본주의를 택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긴 했지만 일부에서는 천민 자본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마치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인 양 변해버렸다.

반면 북한은 계획경제를 택해 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계속되는 1인 숭배와 폐쇄적인 조치들로 인해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일이란 그저 '북한의 남한화' 그 자체인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생각이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면, 통일이 된다한들 그리 바람직한 통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브란덴부르크문을 사이에 두고 서독과 동독 양국간에 인적·물적 자원이 자유롭게 오고가던 독일만 하더라도 통일 이후 큰 혼란에 휩싸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그 혼란이란 것이 동서간의 경제적인 격차에서 연유한 바도 적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동독인들을 '오시'라 부르며 멸시하는 서독인들의 태도에서 기인한 바가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서독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대적 약자 입장에서는 작은 말 한 마디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가지 않았을까. 사람이란 것이 경제적 격차에서 오는 박탈감이나 자존감 상실보다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생기는 반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즉 서독인들이 서독과 동독이 서로 대등하다는 생각보다는 한쪽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짐으로써 졸지에 동독 국민들은 2류, 3류 국민이 되어 버린 것이었고, 동시에 동독인들은 통일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차라리 통일이 안 되었다면 경제적 풍요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나마 '인간적인 대접'은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글쓴이 말대로 베를린 장벽 동·서에는 일류도 이류도 없고, 휴전선 남·북에도 역시 천사도 악마도 없거늘, 우리는 남한만이 선(善)하다는 생각으로 자만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준비해야 할 통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남과 북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후 그 격차를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리라.

특히 북에게 먼저 이러저러한 것들을 고치고 개선하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닌 내부의 모순들을 자신 있게 진단하고 그 치부들을 과단성 있게 치료하는 넓은 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남한이 진정 '우월'하다면….

이 한 마디의 구절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50년 동안 각기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온 두 개의 사회가 다시 하나가 되자는데, 어떻게 한쪽만 변하고 다른 한쪽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가? 현실세계에서 어떤 사회는 절대 선(善)이고 어떤 사회는 절대 악(惡)일 수 있는가? (p. 58,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中)

북한 사회도 이렇게 '남한화'해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통일을 하자면서 자기의 국가·사회·체제·관습·가치관·행동양식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반성도 없을까? (p. 58,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中)

'북한의 동독화'롬에 대해서도 외로운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 입장은 언제나 편하지 않다. 통일된 서독(독일)에 가서 남한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 독일 수상에게 "북한이 동독 같으면 남·북한 관계의 평화가 가능할 텐데…"라며 북한을 비방하자, "그러면 남한은 서독만 한가?"라고 반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북한이 동독만큼 되기를 요구하려면 남한도 서독만큼 돼야 하지 않을까? 서독은 언제나 정부 예산에서 국민의 보건과 사회복지 및 보장을 위한 지출이 군사비의 거의 두 배가 됐다. 사회주의 동독보다 더 사회주의적이었던 것이다. 남한은 그 동안 거꾸로 군사비가 국민의 보건 사회보장 및 복지를 위한 지출의 세 배를 넘었다. 무슨 자격으로 북한한테만 동독처럼 되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 생각(사상)의 자유가 있나, 말 한 마디 자유롭게 할 수가 있나? 부정과 속임수는 치부의 지름길이고, 정직과 준법은 바보의 대명사인 사회를 가지고 다른 사회를 흡수해 보겠다는 생각부터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심지어 남한과 제반 정세·조건이 흡사한(했던) 중화민국(대만)조차 지난(1994년) 8월 처음으로 공산당을 법적으로 허용할 만큼 성숙했다. 거의 '질(質)적 변화'이다. 세계가 변하고, 대만조차 변하고, 북한도 변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만이 변화를 거부하면서 남한 중심의 통일과 민족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일까? (p. 59, '북한의 남한화가 통일인가?' 中)

어쩌면 바로 군사적 우열 관계를 극단까지 몰고 가서 북한의 물리적 굴복을 강요하려는 것이 '율곡' 군비증강계획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pp. 230~231, '미국 군사동맹 체제의 본질' 中)

분명한 사실이면서도 우리 나라 국민이 일반적으로 막연하게 또는 심지어 정반대로 인식하고 있는 이 군사화의 위험성… (p. 231, '미국 군사동맹 체제의 본질' 中)

나는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와의 역사적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사 사실은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패도지한 것으로 폐기되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절반은 지고 절반은 이기지 않았나 싶은 장면들을 본다. (p. 271, '통일의 도덕성' 中)

그러기에 나는, 남한의 우리들이 할 일은 북한동포들을 "공산주의 지옥"에서 구해주겠다고 중세기의 십자군을 자처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남한의 우리 사회와 인간을 자본주의의 악덕에서 구해 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 272, '통일의 도덕성' 中)

서독의 정부·국민·사회·문화·정치·경제 이 모든 국민 생활에서 남한과는 정반대로 사상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보장되어, 남한 같은 광적인 반공주의는 발을 붙일 수 없는 사회입니다. 이 같은 서독이었던 까닭에 공산주의 동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p. 310, '학생들에게 남북문제와 통일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中)
/ 권기봉


반세기의 신화 -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

리영희 지음, 삼인(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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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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