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부터 13년 전 1989년 10월 13일 '전대협 반미구국결사대'의 일원으로 그레그 미 대사 관저 점거농성을 했던 대학생 6명 중 한 사람입니다.
오늘(1일) 후배들은 그때 아마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겁니다. 오늘 <한겨레> 사회면에 '반미의 횃불'을 낚싯대에 매달아 성조기를 불태우려 시도하는 후배들의 투쟁을 보았습니다.
문화관광부 청사 담을 넘어 대사관에 진입한 그 '수법'은 저희 결사대가 대사관저 담벼락에 차를 대고 차량 지붕을 딛고 담을 타넘어 들어갔으니 선배들의 담타기 전법을 계승한 것입니다.
보아하니 후배들도 저에게 적용됐던 법률로 조사를 받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검찰이 '농수산물 수입개방 반대와 불평등한 한미 관계개선 및 노태우의 매국적 방미 반대'를 외쳤던 저에게 적용해 기소한 법률은 국가보안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법률 위반, 화염병 처벌법 위반, 건조물 침입 및 방화 미수, 폭력 및 특수공무집행 방해 및 치상, 총포 도검 및 화약법 위반이고 운전면허 없이 차를 몰았던 한 동지는 무면허에 도로교통법 위반까지 적용되었습니다. 담타기 수법도, 외쳤던 구호도, 적용될 법률도 13년 전과 대체로 닮은꼴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이 대체로 후배들의 투쟁이 있은 지 24시간이 지났으니 후배들이 어떤 고초를 겪고 있을지도 대략 상상이 갑니다. 기사에 의하면 "당시 현장 곳곳에서 '카메라 뺏어', '못찍게 해'하는 등의 다급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하는데 저희 때도 똑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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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압 과정에서 머리를 방패에 찍혀 열 바늘을 꿰매야 했던 것처럼 후배들 10명 중 몇 명은 진압과정 중 다쳤을 것이고 연행이 되고 나서는 경찰의 신분확인 작업이 진행됐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 부모 잘 만나 세상물정 모르고 날뛴다'느니 '너희가 이런다고 바뀌지 않는다' 등의 인격 모독을 당하기도 하고 몇 대 구타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유치장에 수감됐을 것이고 지루한 알리바이 경찰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이송될 것이고 구치소에 수감되겠지요. 제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동거했던 사람들이 전두환 처남 이창석씨 장세동씨 뭐 이런 류였습니다. 후배들이 가게 될 그곳도 아마 무슨 무슨 게이트 관계자들로 득실거릴 겁니다. 감옥 밖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던 흑과 백의 동거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저는 이날 올림픽 성화 점화식 같은 모습의 '반미횃불' 투쟁을 보면서 13년 전의 오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건국대를 출발해 비장한 각오로 죽음을 무릅쓰고(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개 낀 군자교를 넘으며 두려움을 달래고자 불렀던 '애국의 길'이란 노래를 떠올리며 읊조렸습니다. 콩닥거리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은박지로 감싼 쇠파이프에 전해지던 그 싸늘한 긴장감. 그 긴장감은 남대문 경찰서에 유치되고서야 사라졌습니다.
후배님들! 앞서 말했듯이 13년 전에 외쳤던 구호나 적용 법률과 절차는 지금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만큼 이 땅 한반도는 미국의 지배 내지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그 불이익과 피해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선이와 효순이의 참극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자 비극입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관계는 1950년 7월 대전협정 이후 크게 변한 게 없고 한미행정협정개정 또한 지지부진합니다. 주한미군 기지로 무상 임대해준 것이 인천광역시 넓이의 1.5배나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치고 들어갔던 그 미국 '총독부(?)'의 오만불손함은 여전히 그 기세가 등등합니다.
전대협 시절이나 한총련 시절에도 한미간 종속의 문제는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13년 전과 오늘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동계 올림픽 때 오노의 반칙과 금메달 강탈사건으로 우리 젊은 층에서 일기 시작한 엄청난 반미 열풍과 'Fucking U.S.A' 작곡가 윤민석씨에게 답지하고 있는 성금을 보면 그 동안 보이지 않게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미선이 효선이 하늘나라 우체국에 부쳐진 3만여 통의 편지에서도 이제 반미의 금기가 아래로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미대관저 점거투쟁이 헛되지 않았듯이 여러분들의 오늘의 이 거사는 분명 외로운 투쟁은 아닙니다. 유리창을 몇 장 깼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을 박살냈다고는 이제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후배님들, 또 다른 미선이와 효순이의 불행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배들이 서른 여덟쯤 먹었을 때 오늘 초등학교 2학년생들이 또 다시 고생하며 반미운동을 하지 않겠지요. 안에서 고생이 많을텐데 의연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반미투쟁 13년선배가 한총련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