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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주
사람의 몸을 단시간동안 마비시킬 수 있는 것들이 무얼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단순한 발상으론 의료용 마취제가 있을 것이고 사방을 날아다니며 귀찮게 하다가 팔 위에 앉은 모기를 가격하기 바로 직전에도 자의적으로 몸을 마비시킨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순간을 마비가 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신적 마비의 순간은 아마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난 아이들에게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라면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요즘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입으로 짓는 미소가 아닌 마음의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장가를 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이리저리 차표를 구해 보았으나 역시 거드름을 피운 나에게 남아 있는 차표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터미널로 가서 막무가내로 기다리기로 했는데 어디선가 반가운 아저씨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주, 광주 이 만원" 차표가 없는 나는 가릴 것 없이 "아저씨 저요!" 하고 광주로 가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는 차표를 구하지 못한 귀성객들로 붐볐고 나도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도의 한숨을 한번 쉰 후 버스는 출발했고 그제야 버스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오른쪽에 아가씨 한 분 왼쪽에 신문보시는 아저씨 두 분, 앞쪽에 할머니 품에 안겨 시선을 뒤쪽으로 향하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 대충 파악을 하고 신문을 보기 위해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앞쪽에 여자아이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들어 "안녕"하고 말한 후 신문을 보려 했지만 계속 말을 건네는 아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름이 초윤이라는 이 아이는 나에게 나이도 물어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또 과자를 건네기도 했다. 하여튼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다른 승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소곤소곤 말하는 초윤이를 두고 딴 짓을 할 수가 없어서 광주까지 가는 동안 내내 필름에 초윤이 얼굴을 담으며 초윤이와 놀아주기로 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수월한 고향 길이였다고는 하나 아직 어린 초윤이에겐 역시 지루한 여정이었나 보다. 할머니 품에 안겨 한참을 자더니 어느덧 일어나 과자봉지를 들고 승객들에게 과자를 하나씩 나눠주기도 하고 할머니 품에 숨어 나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또 바닥에 신문을 깔고 올라가 예쁜 표정을 지으며 주변 아저씨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초윤이를 보며 얼마 전 지하철에 올랐을 때 엄마와 함께 노약자 및 장애인 보호석에 앉아 있던 5살 남짓한 꼬마 형제가 문득 떠올랐다. 문이 닫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꼬마 둘은 지하철 안을 축구장 삼아 떠들며 뛰어 다녔고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그냥 놔두고 있었다. 급기야 동생으로 보이는 꼬마가 오줌을 싸 버렸고, 그때서야 문제를 느낀 어머니는 꼬마를 불렀다. 엉망이 된 지하철 안을 보며 아이를 꾸짖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바지를 벗기고 다시 뛰어 놀게 하는걸 보고 마음이 찹찹했다.

하지만 초윤이는 달랐다. 평범한 외모에 예쁜 옷을 입고 있지도 엄마와 같이 있지도 않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른들에게 미소를 선물할 줄 아는 그런 아이였다. 난 초윤이 때문에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몇 시간동안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었고 초윤이의 해맑은 미소 때문에 몇 번이나 내 마음은 마비가 되었다.
ⓒ 안현주

▲ 고향 가는 초윤이
ⓒ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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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통신 기자를 거쳐 오마이뉴스 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사 제보와 제휴·광고 문의는 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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