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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를 준비하는 은애와 가족
추석 차례를 준비하는 은애와 가족 ⓒ 김문호
"아직도 10시간 근무하는 곳이 있느냐"고 묻겠지만 일주일 순번으로 10시간 주야 교대근무는 기본이고 주문이 밀리는 날이면 특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모처럼 일이 없어 8시간 근무 날이면 은애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기쁘지만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나 언니들은 '특별히 할 일도 없다'면서 시간외 근무를 더 하고싶어 한답니다. 일하는 것에 이골이 난 모양입니다. 얇은 월급봉투에 조금이라도 더 돈을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다 돈 때문이겠죠.

이렇게 해서 은애가 받는 한 달 월급은 기본급 50만원에 매일 2시간씩 연장근무수당에 다른 직원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수당까지 합해서 겨우 70만원을 넘습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월급을 쪼개 적금을 넣고 대입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생 '지혜'의 학자금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자녀 학비 등 이것저것 쓸 것이 많은 아줌마들은 일요일도 없이 한 달을 꼬박 일해야 겨우 100만원을 손에 쥔다고 합니다. 주5일 근무제는 월 소득을 떨어뜨리고 시간이 남아 소비지출만 늘 것으로 예상하여 아줌마들은 반대한다고 귀뜸해 줍니다. 5일 근무를 해도 급여에 변함이 없다면 반대할 이유가 굳이 없겠지만 300여명 되는 직원들에게 그런 은전(?)을 베풀 회사도 아닐 듯싶습니다.

은애는 열 아홉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하여 올해로 두 번째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에 온 사회 햇병아리입니다. 도시생활이 처음인 은애가 경기도 수원시의 한 제과회사에서 빵 굽는 일을 지금까지 열심히 해내고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직접 몸으로 감내하는 '갓난이'를 본 느낌이지요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는 가정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동생 지혜와 인의를 다 챙기니 말입니다. 새 엄마의 특별한 성격이 조금은 마음에 걸립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인의가 이런 가정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밖으로 나돌며 사고(?)를 친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건강하여 일할 때는 매일 늦게 귀가했습니다. 은애와 동생들의 바램은 아빠가 일찍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아빠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는 은애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는 은애 ⓒ 김문호
은애는 1989년 초등학교 1학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충격을 참지 못해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던 아버지… 동생들의 뒷바라지는 어린 은애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애들은 아주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은애는 맏이라서 낳은 편이었습니다. 고3인 여동생과 중 2년인 남동생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암이 온 장기에 퍼져 6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은애 가족의 불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술을 좋아하던 아빠는 지난해 6월말일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여 도시의 병원에 입원 한 후 뱃속에서 종양 2개를 떼어내며 이와 같은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후 곧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에 있는 병원 암센터에서 2차 수술을 받은 후 5개월 동안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람 좋은 아빠는 투병생활로 말미암아 소득이 없자 자신이 쓴 빚과 보증으로 보듬은 원금 5000만원에 대한 이자를 은행에 지불하지 못하게 되어 총 재산인 집이 강제경매 처분되어 남의 손으로 넘어가 올해 초 아픈 몸을 이끌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해야했습니다.

"전에 살던 2층 슬라브 집보다 달팽이와 여러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이 집이 더 좋다"는 아빠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은애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돈이 없어 이사온 이 집은 공짜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도시로 이사해 비어있던 집을 주인의 도움으로 그냥 들어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은 비록 날고 허름하지만 마당 앞의 20여평 남짓한 텃밭에서 비료나 농약을 일체 쓰지 않고 각종 야채를 직접 가꾸어 그것들을 생식을 한 후부터 지금까지 아빠의 건강은 점점 회복되어 갑니다.

연휴 첫날인 오늘도 동생 지혜는 새벽시간에 학교에 갔습니다. 인의는 방에서 TV를 보고 엄마와 나는 장에 가서 생선이며 햇과일을 준비한 후 차례에 쓸 음식을 함께 준비합니다.

"아빠의 건강을 회복케 하시고 엄마에게 자비의 마음을 베풀며 동생들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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