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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새벽 4시 30분 제주 한라병원 파업현장에 용역경비 투입, 8월 29일 경제 5단체는 "불법파업에 대해 즉각적이고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한다"는 성명서 발표, 정부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공권력 투입등 가능한 모든 수단 동원해 단호히 대처"하겠다 결의, 조선일보는 "급기야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해 파업을 강제 해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병원 노사는 더 늦기 전에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에 당장 나서야 한다"(8.30)고 협박, 9월 11일 오전 6시 강남 성모병원과 경희의료원에 2500명의 병력 투입 조합원 등 500여명 연행.

진행되는 과정은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제주도에서는 경찰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 용역 경비들을 보내, 이후의 여론 추이를 관망한다. 경제 5단체라는 자본가들은 "엄정한 법 집행"을 정부에 촉구하고 정부는 잠시 지켜본 후 9월 11일(미국에서 쌍둥이 빌딩 테러가 있던 바로 그날) 경찰을 투입한다. 김대중정권은 자본가를 보호하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된 병원노조의 파업에 대해, 행동하는 당사자이자, 가장 눈에 띄는 노조를 "환자들의.. 정상진료를 어렵게 하는 위법적 투쟁방법"(조선일보 8.30)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손 쉽게 환자들이나 당사자 아닌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방법이다. 공익성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고유한 수법 중 하나다.

자본가들의 선전에 현혹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태를 보자. 이미 우리나라의 의료계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게 적응해왔다. 의료자본가들뿐 아니라 의사들까지 약육강식의 경쟁적 자본원리를 의료계에 전면 도입할 것을 온 몸으로 주장해오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공익성은 없다. 심지어 보건소까지 줄여야 개인병원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외치던 의사들에겐 병이 걸려도 돈이 없어 손 놓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민중들의 신음소리는 들리질 않는다.

사립 종합병원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외자도입을 시도해왔고, 이미 다국적 제약 재벌들은 지방 곳곳에 대리점을 차리고 약값올리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윤추구가 모두인 곳에 무슨 공익성이 있단 말인가. 그런 자들이 공익성을 외치며, 보건노동자들에게 환자들의 건강을 걱정하라 한다.

김대중정권은 스스로 "40년 노동자 친구"라고 떠들다가, 바로 그 노동자들의 표를 등에 없고 집권한 뒤엔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켜 노동자와 사측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정부는 중재자로 참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정부는 중재자가 아니었다. 노사정 3자가 모인다. 투표를 한다. 정부는 힘있는 강자인 사측에 '너무 심하게 착취하지 말라'고 나무라기도 하고, 약자인 노측에는 '너무 투쟁만 앞세우지 말라'고 얼르고 달래다가 결정적인 표는 사측에 몰아준다. 2:1의 게임이 된다. 하나마나 한 투표인 것이다.

정부는 노조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으니, 서로 합의를 본 것이라며 '고통분담'이란 말을 앞세워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주식부양을 외치고 외자도입만이 살 길이라 외친다. 온 나라는 도박판에 빠진다. 주식투기, 땅 투기, 빠찡코판까지 도박사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유혹해 뻐빠지게 번 돈을 빼앗고, 파산한 폐인들은 늘어만 간다. 구조조정은 수많은 실업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회사에 남은 노동자들은 줄어든 수 만큼 뼈빠지게 일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때론 망하는 자들도 있으나(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김우중이 봐라! 외국에서 떵떵거리며 산다), 도박판이란 밑천 두둑한 놈이 벌기 마련, 있는 놈들은 주식이다 채권이다 부동산이다 하며 떼돈을 모으고, 그것도 모잘라 눈 먼 돈이라는 공적 자금도 홀랑 홀랑 집어삼켰다. 그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이 낸 세금이다. 그럴 듯한 '고통분담'의 결론은 노동자들의 '고통 전담'이었다.

고통을 전담해온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고통을 진정으로 분담할 것을 요구하자,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자들을 속여 고통을 전담시키는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노사정위원회는 유명무실해진다. 노동자들을 안정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남은 것은 국가의 폭력적 본질, 경찰, 용역폭력배, 감옥, 군대이다. 법은 그것을 합리화시킨다.

병원진압에 동원된 법률이,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조항'이란다. 직권중재란 '병원을 비롯 철도, 통신 등 필수 공익사업장'에서 노사간 교섭이 결렬돼 노동쟁의 조정기간이 끝나더라도 중재에 회부될 경우 향후 15일간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직권중재 기간 중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무조건 불법파업이란다.

경희의료원이나 강남성모병원의 경우, 병원측은 이렇게 했다. 노조가 교섭을 요구한다. 병원은 교섭에 응하지 않고, '법대로 해, 법대로 하라니까?'하고 비아냥댄다. 법대로 노조는 파업을 한다. 조정기간이 끝나자마자 병원은 '직권중재'를 요청한다. 합법적이었던 파업은 불법이 되었다. 합법적으로 진압해버린다. 김대중 정권은 4년 8개월여 동안 일주일에 세 명 꼴로 828명의 노동자를 구속하였다. 법도 자본가의 이윤추구, 노동자 착취와 탄압을 합리화시키는 방편에 다름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외친 주장이 무엇인가? △의료 공공성 강화 △산별교섭 쟁취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학연금 제도 개선이 핵심적 주장이다. 의사들이 내팽개친 의료공공성을 의료노조는 가장 선두에 내세웠다. 그것은 돈이 없는 환자들에게도 의료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불안감에 떨고 있는 환자들의 눈물어린 호소를.. 외면"(조선일보 8.30)하는 것은 이윤추구에 눈이 멀어 의료 공공성을 내팽개치고 있는 병원이 아닌가. 당장 죽음에 이를 환자를 돈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는 병원 아닌가.

'산별교섭 쟁취!' 우리나라에는 기업별 노조가 대다수다. 그로 인해 기업별 노조협상이 이루어져왔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은 개별기업의 자본가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고, 기업은 기업대로 비용을 들여야 했다. 그것을 산업별 노조대표와 각 기업 대표자가 모여 교섭을 단일화하자는 거다. 싸움하는데 여기저기서 일대일로 맞붙어 투닥대지 말고, 각각 대표자 뽑아서 신사적으로 싸우자는 거다. 뭐가 문젠데?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정규직이 뭔가? 1년 또는 6개월로 한시적으로 고용되거나, 시간당으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한시적이란 이유로 정규직과 동일하게 일을 해도, 임금이 정규직보다 적고, 6개월, 1년 뒤에 잘릴지 모른다는 항시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하라는 것은, 일한 만큼 달라는 것이고, 고용불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58%에 이른다 한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을 이용해 저렴한 임금으로 실컷 일 시켜먹고, 언제든지 맘에 안들면 갈아치울 수 있도록 노동자들을 부속품화시켰다. 게다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이간질시켜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함께 일하면서도 정규직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앞에서 비참함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런 노동자들이 자본의 술책에 맞써 함께 싸우겠다는 단결의 구호이다.

'사학연금제도 개선!' "일반기업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처럼 사립대병원을 포함해 사립 교육기관 노동자들은 사학연금에 가입토록 돼 있다. 그러나 사학연금에 가입한 사립대병원 직원은 남들은 다 들어 있는 고용보험·산재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고 퇴직금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특히 고용보험 미가입에 따라, 지난해 개정된 모성보호법의 출산휴가급여(월 최고 135만원) 및 육아휴직 급여(월 20만원)를 못 받는 처지였다."(한겨레 21 9.4) 직장인이라면 이런 처지가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용보험과과 산재보험은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4대보험이다. 그런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사학연금을 고치자는 것이다. 직장인으로 퇴직금도 받자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요구 아닌가?

이런 정당한 요구사항을 정부는 국가의 폭력을 동원 압살했다. 국회는 '직권중재'조항을 법으로 만들고, 병원은 교섭에 응하지 않고,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어 파업을 장기화시키고, 자본가들의 경제단체들은 '공익성' 운운하며 '엄정한 법집행'을 촉구하고 경찰은 힘으로 제압해버린다. 이것이 현 정권과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뼈골까지 빼먹기 위해 착취하고 탄압하는 종합작전이다.

지금 분노하는 것은 단순히 당한 대상이 여성들이기 때문도 아니고, 진압과정에 성추행이 있었다는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과 국가권력이 한 몸이 되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짓밟는 현실, 환자들의 이익이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이, 환자들의 이익 운운하며, 언론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내몰고 있는 이 추잡한 현실 때문이다.

지금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원 등 많은 민중들이 명동성당으로 합류해 있고, 9워 12일에는 국회앞 집회와 경희의료원앞 집회를 가졌다. 9월 14일에는 종묘공원집회가 예정되어 있는 상태이고, 10월 16일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이 장소에 이제는 정치인들이 가야 한다. 이회창이나 정몽준, 최소한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한다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노동자들도 자본가와 함께 잘 살게 해보겠다고 큰 소리만 치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도 가봐라! 병풍인지 뭔지 뻔한 비리 가지고 국회에 앉아 씨나락까먹는 소리나 하지 말고, 수해지역에서 거들먹거리며 리어카나 끌고 있지만 말고, 경찰 방패가 날아다니고, 노동자들이 짓밟히는 바로 그곳 현장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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