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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경제나 (대중)문화적인 면에서 국경이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해 버린 시대에 리얼리즘은 가능한 것이기나 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론의 차원에서 볼 때, 그런 시대에서 '전형'을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황석영의 근작 <오래된 정원>을 읽은 까닭이다.

작중 인물 오현우의 수감 생활에 대한 말 그대로 '핍진한' 묘사, 그를 향한 그리고 그와 관련한 한윤희의 애틋한 심정에 대한 세심하고도 서정적인 묘사, 검거 전 오현우의 행적이나 한윤희의 외국 경험, 송영태 그룹의 활동 등에 대한 선이 굵은 서사다. 이 세 측면으로 해서 이 작품은 매우 '현실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열려' 있다. 총체로서 닫혀 있지도 않고, 전망에 의해 초점화되어 있지도 않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지난날의 황석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 이 작품을 쓰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작품 서두에 놓인 브레히트의 시처럼) 출발도 한 적 없이 도착하게 된 목적지로서, 박은결이 작품 말미에 놓여 있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상징인가. 물리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착하다'는 것외에는 아무런 외피도 갖지 않은 채로 그녀가 비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자기 어머니에 대한 정리와 아버지에 대한 태도에서 보이듯, 그녀에게는 아직 틀 잡힌 인간 관계로서의 사회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열려 있는 공동일 뿐이어서, 애초부터 작품의 의미를 모아 내는 짐을 지지 않고 있다.

작품이 하나의 통일체라면, <오래된 정원>을 묶어 주는 것은, (다시, 작품 말미에 놓인 브레히트의 시가 말하듯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와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날아가는 과정의 '잠시 동안', 서로의 몸놀림을 함께 하(고 기억하)는 짧은 멈춤으로서의 사랑, 이런 사랑일 뿐이다. 그 빛깔은 여러 가지이다. 오현우와 한윤희 사이나 한윤희와 송영태 혹은 이희수의 관계뿐 아니라, 송영태와 최미경 그리고 더 나아가 오현우와 그의 주변 인물들(운동가와 노동자)의 사이는 모두 '하나의 짧은 멈춤',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무엇인가. 그 역시 비어 있다. 한윤희가 잡아 내었던 '대중에 대한 모성적 사랑'은 실현되지 않은 채 던져져만 있고, 오현우가 정리하는 '일상과의 싸움' 역시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는 낡아 버렸거나 불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하권, 309쪽)는 작가의 언어에 의해서, 관념의 윤곽이 지워져 버린 탓이다. 이 '선언'은 너무도 또렷한 까닭에 아무런 반성도 동반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바 "민주적 원칙의 관철과 대중에 의한 주권의 회복은 수백 년 이래로 가장 생명력 있는 유산으로 확인되었다"(같은 곳)는 진술도 아무런 중심 역할을 부여받지 않는다/못한다. 실상 이 작품에서 '불탄 자리에서 골라낸 살림도구 같은 것'(같은 곳)으로 그려지는 것은 앞서 말한 사랑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주의적인 객관 묘사와 치밀한 심리 묘사, 그리고 1980년대 노동문학에서보다 더 절박하면서도 이야기성을 잘 구비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정원>은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들과는 매우 다른 자리에 놓여 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서 과거가 있고 추상적이나마 소중한 지향은 있지만, 중심도 지향점도 없는 까닭이다. 이것이, 21세기에 걸맞은 리얼리즘 정신의 성과인가.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리얼리즘은 하나의 정전으로 남고자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추상화함으로써, 어떤 현실이든 맞추어 내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돌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리얼리즘이 불가능한 시대에, 우리들의 사회를, 지나온 과거 역사를, 그 속의 아픈 삶들을 규명함으로써, 문제가 없는 시대의 문제를 각자의 마음속에 던져 놓은 것만으로도, 새로운 리얼리즘의 정신을 보인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반성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열려진 텍스트, 미완의 리얼리즘은 그 자체로서 가장 적절한 세상의 거울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창비(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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