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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한 몬스터의 표지삽화
1999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한 몬스터의 표지삽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일까. 귀신, 외계인, 괴물? 수많은 것들이 나열되겠지만, 가장 섬찟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상이, 가장 믿었던 대상이 배신할 때가 아닐까. 한때 인기를 끌었던 '무서운 이야기'중에서 백미는 역시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였다.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지켜주고, 가장 믿음직스러운 존재인 엄마의 배신이야말로 얼마나 섬찟한가.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엄마조차도 타인이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배신을 할 때. 자신 안에 악마가 숨어있을 때의 공포는 그 이상이 아닐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는 인간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성을 다룬 스릴러물이다. 구동독 치하에서는 우수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작업이 이뤄졌고, 그 작업을 위해 인간들이 양성됐다. 그 작업중 선택된 최고의 인간이 요한이며, 그의 쌍둥이 형제가 니나이다. 쌍둥이 형제이지만, 요한은 절대악, 니나는 절대선의 성격을 드러낸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Dr.덴마이다. 최고의 외과수술의인 Dr.덴마는 뛰어난 처세능력을 가진 병원장 밑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병원장은 뉴스가치가 있는 수술을 고를 줄 알고, 덴마의 성공적인 수술을 효과적으로 언론에 활용하며, 독일의학계를 좌지우지한다.

유럽 최고의 성악가를 무사히 살려낸 덴마의 수술 이후, 병원의 주가는 올라가지만, 덴마는 성악가 이전에 올라온 이름없는 환자의 수술이 뒤로 돌려져,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자의 목숨이 평등한가'라는 물음에 시달리던, 그는 얼마 뒤 시술에서 뒤늦게 들어온 환자의 수술에 참여하라는 병원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먼저 들어온 소년을 치료한다.

그런데 늦게 들어온 환자는 시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시장이고, 자신이 살려낸 소년이 희대의 살인범일 줄이야. 게다가 고아인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준 양부모를 살해한 악질범이다.

만화는 구동독이 멸망한 뒤에도 우수한 인종을 길러내려는 작업을 계속하는 신나치주의자들과 이후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하며 이유없는 범행을 저지르는 요한, 그의 살해음모를 저지하려는 쌍둥이 동생 니나, 요한을 쫓는 Dr.덴마와 관련인물들이 줄거리를 형성한다.

요한의 계속되는 살인동기를 추적하다, 그의 살인에는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게 발견된다. 그는 인간의 감정이 거세된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정체가 무엇이고, 몬스터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게 핵심이다.

몬스터는 개성있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빛을 발한다.
몬스터는 개성있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빛을 발한다. ⓒ 김대홍
<몬스터>가 가진 큰 매력은 극중 캐릭터가 가진 개성이다. 완벽한 외모를 지닌 요한은 교양과 지식, 감정 등에서 빈틈이 없다. 살인은 완전범죄로 이뤄지며, 아무런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고민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가 가진 고귀함은 어떤 영화나 만화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살인마 캐릭터다.

그를 쫓는 Dr.덴마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희대의 살인마를 살려낸 이후, 그를 살려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 이로 인해 그를 죽이려는 결심을 하게 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진한 휴머니즘으로 가득하다. 그의 고집스런 선행은 악마적인 요한과 대비돼 큰 감동을 선사한다.

끝까지 요한의 존재를 믿지 않는 독일 최고의 경찰로서 연방경찰 BKA 경부인 랑게(나중에는 룽게로 명칭이 바뀌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그에게 있어 유일한 변화는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는 것뿐이다. 까딱까딱하는 행위는 표정의 변화를 손으로 대신하는 것이면서, 데이터를 기억 속에 입력하는 작업이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그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들 외에도 매 권마다 나오는 인물들은 애정이 담뿍 담긴, 오히려 주인공들보다 더 감동을 주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극중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면 '보석같은' 캐릭터들로 넘친다. '니키타'를 만든 뤽 베송이 극중 킬러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 '레옹'을 따로 만든 것처럼, <몬스터>에 나오는 조연급 캐릭터들 또한 다른 만화의 주인공감으로 손색이 없다.

또 다른 매력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빼어난 연출력이다. 극중 공포를 가중시키는 반복되는 대사, 반복되면 화면, 반복되는 장면들이다.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난 뒤 장면과 음악이 기억나는 것처럼, <몬스터>에도 기억나는 장면과 대사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물론 이 장면과 대사들은 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코드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동화, 아버지, 선배 등 친근한 캐릭터들이 몬스터에선 공포의 도구가 된다
동화, 아버지, 선배 등 친근한 캐릭터들이 몬스터에선 공포의 도구가 된다 ⓒ 김대홍
캐릭터와 연출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스토리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의 결론을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게 다가서게 만드는 스토리가 짜임새가 있다. 스릴러물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들은 <몬스터>를 훌륭한 '드라마'로 만드는 데 손색이 없다. 이는 오라사와 나오키가 초창기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미 전체적인 스토리를 충분히 짜놓고서 극을 전개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결국 '몬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믿음'에 관한 부분이다.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따라서 캐릭터들의 성격과 행동이 변화한다. 가장 믿어야 하는 아버지가 스파이이고, 가족 이상으로 믿고 따랐던 고참 형사가 적과 내통하고 있었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밝고 희망으로 가득찬 소재인 '동화'가 사실은 아이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아가는 도구라는 점은 독특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온 당신에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던지는 한 마디 '어서 와', 그런데 안도의 단어로써 쓰여야 할 이 단어가 이 만화에서는 반대의 뜻으로 사용된다.

화면과 음악을 통해 한 장면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영화에 비해, 만화는 스토리의 치밀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깜짝' 화면은 통용되지 않는다. 정지된 화면이 주는 공포감은 완결된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상상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몬스터>는 1995년부터 시작돼 최근에서야 단행본으로 완간된 장편으로 1999년 '테스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는 <미스터 키튼> <20세기 소년> 등 인기장르를 여러 편 만들어낸 인기만화가로서 <몬스터>는 이전에 그가 그린 만화와는 달리 '공포장르'를 선택해 주목을 받았다.

몬스터 특별판 1~9권 (완결) 세트 - 전9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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